제26화
국제결혼은 비현실적이다. 현실 너머 ‘비현실’ 같은 일을 해낸 사람이 나와 튀르키예인 남편 훈이고, 그런 우리 부부임을 아는 친구 신은 말한다.
‘너희 부부 이야기는 동화와 같다. 현실세계에선 존재하지 않아 그렇다.’
그러나 누워 있을 적에 한 명이 방구 뿡 끼면 다른 하나가 뿡 하고 복수를 날리기도, 어떤 날은 변기 레버 내리기를 깜빡해 서로의 장 상태를 확인하게 하는 날도 있을 정도로 지극한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는 눈치다. 동화란 이런 것인가? 하며 서로를 응시하다 깜빡깜빡, 두 눈만 깜빡이다 아↗어↘음→ 하고 마는 것이다. 현실 기반으로 창작한 동화가 있다면 아마 이런 것이겠지. 동화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을 테니까. 그러나 실은 친구 신의 문장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었고, 그것이 어쩜 국제결혼의 로망 아닐까 생각하며 오늘 칼럼을 써내려 간다.
국제결혼은 비현실적이다.
하여 뭇 청춘남녀의 로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현실이 로망이 되기는 힘들 테니까.
국가도 훌쩍 뛰어넘는 사랑
일단 ‘국제결혼’이라 하면 극도의 현실주의자인 경우, 일궈내기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왜 그런고, 묻는다면 결혼 방해물들과 틈틈이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따지고 보면 결혼이라는 결심 자체가 그러하다. 넘사벽, 넘어야 할 벽이 많아 오죽 포기까지 하겠는가. 그런데다가 결혼 앞에 ‘국제’가 붙으면 200% 더 까다로워짐은 경험자로서 말할 수 있는 증언이 된다. 그냥 결혼이었다면 불필요했을 절차를, 기어코 국제적 결혼 하겠노라며 거치고 거쳐야 하고 때문에 누군가는 이를 ‘현실’이라 부를 테다.
까다로운 절차는 이것과 같다. (비자 발급과 같은 까다로운 행정 업무는 차치더라도)우선 국제결혼 하겠노라면 어느 ‘국가’에 살지 먼저 정해야 한다. 지역 단위가 아니라 나라 단위로 터전이 결정이 된다. 이는 삶의 토대가 바뀌는 일이라 할 수 있는데, 때문에 무겁고 벅차기 그지없다. 게다가 해당 국가에 가 ‘뭘 해먹고 살지’, ‘언어’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가 문제로 잔재한다. 생계와 언어는 삶과 직결한 문제. 고로 결정의 규모란 마치 집 한 채 구매하는 수준이 된다. 만원 단위 소비가 아니라 억 단위 투자와 같다.
그렇게 하나하나 거대한 결정들을 해나가다 보면 종국엔 어떻게 되느냐? 배우자 중 하나는 통째로 자기 삶을 바꾸어야 하기도 한다. 말인 즉, 부부 중 하나는 오직 사랑으로 자기 커리어를 버려야 할 때가 오기도 한다는 뜻이다. 다시 한 번, 누군가는 이를 비현실적이라 생각할 테다.
우리 경우는 훈이 양보한 케이스에 속한다. 회사 다니며 벌이 유지하던 나로 인해 대학원 진학 준비 중이던 훈이 한국에 온다. 그 결과 훈은 터키에서 삶(높은 확률로 자신 그 자체) 90% 이상을 창고에 쌓아두게 된다. 대신 갓난아기가 언어를 배우듯 새롭게 한국어를 익히기 시작한다. 어학당 다니는 동안 한국어가 늘어 내게 ‘뀌다’와 ‘끼다’의 차이를 묻기도 하는데, 때때로 나는 아들을 키우는 기분이 든다. 성인 양육이이란 호락호락한 일이 못 된다. 한편 훈은 유럽 대학원 진학을 제쳐두고 한국에 있는 대학원 연구실을 알아본다. 지원과 반려의 반복 속, 바들바들 몸 떨리는 고독과 불안에 어떤 날은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는 건 부모에게 말하지 못한 우리만의 비밀이다. 이 모두가 그에겐 국제결혼을 대가로 한 모험이었다.
그래서 무엇이 현실을 뛰어넘게 만든 요인이었냐, 묻는다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두 음절 밖에는 읊을 수 없다. 사랑하니까, 네가 아니면 나는 안 되고 내가 없는 너는 상상하기 싫다니까. 사랑의 감정은 광선이 가슴에 내리 꽂힌 듯 강렬하여 사랑이 아니라면 내게 죽음을 달라던 외침과도 같은 것. 하여튼 뜨거웠고 그렇게 사랑만으로 국제적 결혼을 일구어낸 우리는 동화 같은 커플이 된다. 때문에 로망이 되기도 한다.
‘한여름 밤의 꿈’을 꿈꾸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본 적 있는가. 이는 1996년 개봉한 서스펜션 판타스틱 여행지 로맨스 영화로, 파리로 돌아가는 여 주인공 셀린과 비엔나로 향하는 남 주인공 제시의 소위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다)적 호감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짧은 시간 서로에게 빠져드는데…. 단 하루.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 낭만적인 로맨스가 피어오른다. - 네이버 영화소개 중)
줄거리만 봐도 쫄깃한 사랑이겠다. 갈 길이 다른 남녀, 주어진 단 하루의 시간. ‘해 뜨기 전’ 까지만 데이트할 수 있다는 시공간 제약이 둘을 쫀쫀하게 묶는다. 이는 마치 다음 날 부대로 돌아갈 남자친구와 보내는 해 뜨기 전 24시간과 같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포인트는 정작 여기에 있지 않다. 1996년 개봉한 이 영화가 여태 잊히지 않고 청춘남녀 입에서 회자되는 데는 사랑의 시공간 제약 때문이 아니라 비현실적 로맨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운명 같은 사랑이었다. 하필 그 시간, 그 장소에, 낯선 남녀가 만났다. 그렇게 하나에서 둘이 된 발화지에서 사랑의 성립 요소는 오직 사랑뿐이었다. 서로에 대한 호감 그 이상은 중요하지 않다. 철저히 현존하는 사랑을 한다. 현존한다면 누구나 사랑만으로 사랑할 것이다. 해외여행은 곧 현존이기에 가능하다.
한편 현실에선 비현실적인 사랑이 된다. 이쯤 사랑이 밥 먹여주느냐는 물음이 등장한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반박은 곤란하다. 그렇게 현실적인 것은 따지고 들 거리가 몹시 많다. 하여 사랑만으로 눈 감고 러브 다이브 하기 쉽지 않다고들 하지. 그렇게 여행을 마친 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그들은 현존하지 못하고 결국 현실을 따지기 시작한다. 앞날을 생각하며 걸러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떠올린다. 사랑으로 가득 찬 본심은 아니지만 어쩐지 현실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점차 사랑은 줄어들고 문제는 커지더니, 현실판 한여름 밤의 꿈은 정녕 존재하지 않는 게 된다.
비현실은 현실 너머 있는 것
사람들은 종종 국제결혼을 해외여행 비슷한 것으로 여기는 눈치다. 현존, 그러니까 사랑뿐인 사랑을 국제커플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내비췬다. 어쩐지 우리 둘 보는 눈빛엔 초롱초롱 물방울이 맺혀있고 생애 현존하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에 고개를 떨군다. 어쩐지 현실은 해외여행이 아니라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현존하기란 좀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하나가 있다. 현존은 해외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사랑도, 꼭 국제적 연애나 국제적 결혼이 솔루션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국제적 결혼이란 지극한 현실이다. 단지 어떤 사랑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저 현실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사랑이 없다면 현실 건너 비현실로 갈 수 없었을 터다. 우리는 그저 사랑을 믿었을 뿐이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은 본인은 현실세계에 산다는 착각 속 친구 신이 만든 선(line)이지만, 어쨌거나 인간의 본성은 다르지 않다는 믿음이 있다. 누구나 순도 100% 현존하는 사랑을 꿈꾸고 있음을 안다. 친구 신이 우리부부더러 동화 같은 비현실적인 커플이라 말하며 나지막이 ‘부럽다’ 중얼거린 이유도 같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현실 너머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사랑’에만 풍덩 빠지고 싶은 욕구도 본성에 비롯했으리.
본성은 타고난 성품 같은 거라 무시하려 할수록 더 큰 부작용으로 되돌아올 뿐이라는 것을 믿는다. 다만 인생이란 것이 호락호락 하지 않아 사랑에 미움과 증오와 질투, 경쟁이 끼어 사랑이 가려져 있을 뿐이라고. 저 밑바닥 껌처럼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을 사랑의 마음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우리 가슴에 살아 있다.
만약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사랑뿐인 사랑에 후회가 도사릴까 망설이는 그들이, 내게 현실 너머 사랑을 택해 후회하느냐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호쾌하게 말하련다. 그 이상의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랑의 힘은 현실을 넘어선다. 누군가에겐 비현실적인 조언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사랑의 힘은 우주 통틀어 가장 거대하고 따뜻하며 힘이 센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유일하게 사랑이 우리를 현실에서 꺼내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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