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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18. 2023

결혼 하고 싶어

제27화

“결혼 하고 싶어.”



올해 1월, 시댁이 있는 튀르키예에 지내는 동안 친척 집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바로 남편 훈의 외삼촌댁. 이른 아침 안탈리아에서 출발한 우리는 오후가 되어야 이즈미르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했다. 산처럼 우뚝 쌓인 집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이곳엔 쉬르반(여/28)이 산다. 쉬르반은 외삼촌의 큰딸이다. 동시에 훈에겐 흙 파먹던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친척이자, 나와는 친구가 된 여성이다. 쉬르반은 2021년 훈의 인턴십 일정으로 잠시 앙카라에 거주해 있는 동안 만났다. 온통 좋았던 기억뿐이다.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리면서 오히려 (어설픈 튀르키예어 시전하던)나를 더 귀여워했던, 언니 같은 친구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튀르키예 어느 바다에서 이뤄진 비치웨딩


장장 6시간을 달려왔다. 외삼촌댁을 들어선다. “와! 이게 누구야. 잘 지냈어?” 오랜만에 만난 쉬르반. 따스함은 앙카라에서나 이즈미르에서나 한결같다. 포옹하고 있던 두 팔을 금세 풀더니 한겨울, 추워 할 나를 위해 자기가 신고 있던 털신을 벗어 건넨다. 강아지 얼굴을 한 앞코가 둥글고 큰 실내화다. 묵직함과 동시에 그의 발 온기가 느껴진다.     



잠시 튀르키예 차이(차)와 로쿰(젤리 디저트)를 먹으며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차례 쏟았는지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 쉬르반이 보여줄 게 있다며 내게 손짓한다.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따라오라며 “Gel!(와봐!)” 말한다. 또 다시 동생이 된 듯 쫄래쫄래 그녀를 따라간다.     



쉬르반이 데려간 곳은 안방이었다. 두리번거리니, 안방 한편 층층이 쌓아둔 택배박스를 가리키며 웃는다. 꽤나 높이 쌓였다. 곧 천장까지 닿을 듯 쌓인 택배더미에 짧은 튀르키예어로 이게 뭐냐 물으니 쉬르반 왈. 결혼할 때 쓸 혼수란다. 꽁냥꽁냥한 신혼 생활을 꿈꾸며 그동안 하나둘 혼수 장만해온 것이었다. 한 벽면 가득 냄비 세트, 밥솥, 티 팟, 신혼침구, 앞치마까지. 얼마나 멋진 아내가 되려는지, 기세 좋게 쌓아 올려 진 신혼살림을 보며 그녀가 결혼을 바라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너도 곧 가겠구나.’     



하늘에 의지를 쏘아 올릴 때, 악을 품은 의지가 아니라면 대개 하늘은 우리 뜻을 들어주기 마련이다. 쉬르반의 결혼의지는 머지않아 따뜻한 신랑이라는 선물을 내려줄 터, 안방에 서서 “네 결혼 때 나도 멋진 선물을 할게!” 말한 게 불과 올해 1월이었다. 잘 지내라며 또 보자고 인사한 뒤 우리는 생계 연장을 위해 한국에 오게 된다. 한국에서의 바쁜 삶이 이어진다. 꺼지지 않을 전광판 같은 하루가 숭덩숭덩 지나간다.     


비치 웨딩


그로부터 4개월 후, 2023년 5월. 쉬르반에게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그녀가 결혼을 알려왔다. 메신저 프로필은 실시간으로 번쩍였는데, 사진에 담긴 그녀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엔 다이아로 짐작 가능한 알 박힌 은반지가, 반지 낀 쉬르반 왼손 아래로 투박한 한 손이 포개어 있었다. 한 페이지 넘기니 다음 사진에는 예비신랑과 얼굴 부비고 찍은 셀피가 떡하니 프로필을 장식하고 있다. 지지배, 결혼하고 싶다더니 진짜 가는 구나. 흐뭇한 엄마미소를 짓다, 격한 축하 인사와 함께 남편 훈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자기야! 쉬르반 결혼한데요! (사진 보내며)이 남자랑이요. 아는 사람이에요?”     



몇 분 뒤 남편으로부터 「너무 잘 됐다」는 답장이 왔고 이어 온 그의 말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그를 알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외숙모 쪽 친척인 듯 하다고 말이다. 


     



조금 알고는 있었다. 튀르키예 결혼 문화에 대해, 아직 미혼인 훈의 형이자 내겐 아주버니인 그의 혼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 떨어진 과자조각을 주워 먹듯 주섬주섬 주워듣기는 했었다. 한국과 튀르키예 첨예하게 다른 결혼문화를. 때로는 근친혼도 이루어진다고 하더니 그 대상이 쉬르반 일 줄은 몰랐다만.     



튀르키예는 결혼이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이는 한국과 다를 바 없다. 첫째로 중매, 둘째로 부모의 소개 이에 당사자 동의하는 형식의 결혼, 셋째로 당사자 선택에 따른 부모의 동의로 이뤄지는 결혼.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은 비율이다. 현재까지 튀르키예에서 가장 많이 거행되고 있는 결혼은 첫째와 둘째 방식이라고 했다. 여전히 가족 중심(부모 의견과 집안과 집안의 만남을 중요시)으로 결혼이 이루어진다는 점, 종교적 이유로 여자의 연애가 한국처럼 활활발발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점 등등 이유에서 결혼을 목적으로 한 소개가 있고 그 뒤 남녀 둘이 서로를 끌어당기면 결혼하는 비율이 높다. 반면 2023년 한국 대부분 남녀는 연애결혼을 한다. 결혼이 빠진 연애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부모 소개로 예비결혼 상대를 만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부모 추천으로 만난 청춘 남녀는 몇 차례 데이트 후, ‘빠밤’ 결혼 한다고 그랬다. 결혼에 이르는 혼인의식은 한국보다 많고(한 예로 튀르키예에서는 약혼식도 올린다), 과정은 초스피드인 셈이다. 잘 상상이 안 간다면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네 어른들 중매 결혼할 적만 떠올려도 단숨에 이해할 수 있다. 둘은 결혼을 바라며 소개를 받았고, 만났다. 서로 간봄은 오직 배우자로서 나와 잘 맞는가겠다. 탐색을 위한 시간, 대화를 나누다 보니 찾았구나 싶다. 그 뒤론 물러섬이 없다. 결혼 직행열차에 오른다.



*다만 요즘은 소개로 만나더라도 결혼 결심까지 둘의 만남 회수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가는 추세라 한다. 시간 들여 충분히 서로를 알아가고 싶은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다. 

**튀르키예 MZ는 연애결혼을 추구한다고 한다. 특히 서쪽 도시, 이스탄불이나 이즈미르에 사는 친구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그들도 한국과 다름없이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교 활동에서 만나 사귀기 시작한 이성과 연애 끝 결혼을 한다.     



“연애 기간 쌓아 온 친밀감 없이

불쑥 결혼 해 평생 같이 산다고?”     



언젠가 훈에게 들은 튀르키예 결혼 문화가 내게는 그 두 사실이 충격이었다. 슬러시 한 입에 때려 넣은 것처럼 상상만으로 오싹해 지는 것이다. 넘치게 상상한 나머지 공상 영화를 한 편 찍기도 하는데….     



안 친하다 못해 대화 물꼬를 어떻게 터야 할지조차 모르겠는, 어색한 사이인 한 남자가 내 옆에 누워있다. 뻣뻣하게 굳어 있는 그는 천장만 바라본다. 사교성이 나보다 없어 보인다. 나는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어색함을 참지 못한 나는, 두 손으로 이불을 부여잡은 채 대화거리를 리스트하기 시작한다. 음식 뭘 좋아하냐고 물을까, 내일 아침엔 뭘 먹고 싶냐고 물을까, 아니아니. 미래에 태어날 아이 이름을 지어보자고 할까.     



휴.     



「그나저나 방구 끼고 싶어 미치겠음. 부글부글 이러다 속 방구 낄지도 모름」 허공에 감도는 정숙한 분위기가 오죽 답답해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님과 하루빨리 친해지고 싶다.     



하물며 쉬르반의 경우는 근친혼이다. 친척과 하는 결혼. 예비 신랑은 엄마쪽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사실 튀르키예에 근친혼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러나 존재한다고 한다. 궁금했다. 근친혼이 후대에 좋은 유전자를 남기지 못한다고 생물 시간에 배운 듯한데, 그럼에도 근친혼 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지. 이 또한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지. 남편 가라사대, 그렇지는 않단다. 대부분 중매나 부모 소개로 젊은 두 남녀의 결혼이 성사되기는 하나, 배우자로 친척을 소개시켜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튀르키예에 근친혼은 잘 없다고도 했다.     



다만 튀르키예 남동쪽은 예외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서쪽 지역과 달리 뚜렷한 종교 색을 가지고 있으며 폐쇄적(보수적)이다.

*참고로 튀르키예는 서쪽으로 갈수록(이스탄불, 이즈미르) 개방되었고 동쪽(심지어 여행자는 듣지 못한 도시)으로 갈수록 폐쇄되었다.     





보수적인 그들은 안전한 결혼을 바란다. 어떤 성품을 한 자인지, 어떤 집안인지 잘 알고 있어 안심할 수 있는 이에게 아들딸 장가시집 보내는 건 그런 이유에서 라고 한다. 그럴 제, 근친혼은 최고의 선택이 된다. 두 남녀의 가족은 오랜 시간 알아오며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공감이 형성된 터겠다. 믿고 거르는 게 아니라 ‘믿고 택할 수’ 있겠다. 때문에 튀르키예 남동쪽 지역의 경우 소수지만 여전히 근친혼이 거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남편의 설명을 듣자 바로 고개를 끄덕인 건, 쉬르반은 남동쪽에서 태어나 어릴 때까지 살던 친구였다.     


“너희 부부도 내 결혼식에 꼬옥 왔으면 좋겠어!”     



약혼 후 1년이 지나기 전인 2024년 4월, 쉬르반은 결혼을 한다. 튀르키예에 지내는 동안, 그녀에게 요즘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사골처럼 깊이 우러난 진심을 듬뿍 받았더랬다. 이보다 더한 진심이 있을까, 싶도록 진한 농도로. 그런 그녀 결혼에 직접 참석해 격한 축하를 해주고 싶을 뿐이다. 여건을 허락한다면 내년 봄, 반드시 그곳에 가 쉬르반 목에 축의금 둘러주리(튀르키예 결혼식에선 축의 할 적에, 축의금 목걸이처럼 길게 만들어 신부 목에 두른다. 당해보니 꽤 힙합가수 같고 좋더라).     



하물며 튀르키예 결혼식에 빠질 수 없는 댄스 타임. 흥겨운 튀르키예 노래에 맞춰 신랑신부와 하객 다 같이 들썩이는, 그 한 장에 우리 부부 또한 담기고 싶노라.     



“꼭 갈수 있도록 할게!”     



하늘에 의지를 쏘아본다.     

- 멋진 아내이자 엄마가 될 쉬르반에게, 넌 꼭 그렇게 될 거라며.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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