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다음은 실화다.
처음, 남편 훈의 나라인 튀르키예에 갔을 때 아연실색한 기억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실색이 아니라 ‘질색’이었는지도 모를. 때는 2021년 6월, 사건은 이스탄불 에미뇨뇨에서 시작한다.
에미뇨뇨는 골든 혼을 가르는 긴 다리인 ‘갈라타 브릿지’ 부근에 위치한 지역이다. 미디어를 통해 비춰진 이스탄불 상징적 모습과 같은 이슬람 사원 위 사방팔방 날아다니는 갈매기, 그 중심에 갈라타 브릿지가 있고 그 근처가 바로 에미뇨뇨다. 갈라타 브릿지를 상상하려면 낚시하는 아저씨를 떠올리면 쉽다. 침범이라고 느끼지 못할 적당한 간격으로, 쪼르르 다리 난간에 기대 낚시하는 수염 수북한 아저씨들. 그들 다리 맡에 놓인 커다란 요거트 통에는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하지만 몸통이 작은 어류가 헤엄친다. 365일 어느 날에 가도 보이는 갈라타 브릿지만의 정경, 그 근방이 에미뇨뇨다.
에미뇨뇨엔 광장이 크게 나있다. 여의도 한강과 비슷한 모습이다. 시원하게 터진 물길 옆에 난 커다란 광장이라 그런데, 이곳엔 튀르키예 대중교통에 해당하는 버스와 페리(일종의 배) 정거장뿐 아니라 지하상가가 있기도 하여 인파로 붐빈다. 여기 인구 밀도는 출퇴근 시간 2호선을 상상하면 된다. 다만 평일 낮 시간도 사람으로 북적인다는 점이 다르다.
혹여나 이 많은 인파 사이 남편이라도 잃을까, 국제 미아가 될까, 훈의 손 꼭 붙잡고 인간 무더기를 헤치며 나아가는 중이었다. 우리가 에미뇨뇨에 온 목적은 이스탄불 외곽에 살고 계신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에미뇨뇨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광장 한참을 비집고 다녔나보다. 틈을 찾아, 틈이 없으면 손으로 화살표 모양을 만들어 한 걸음, 한 걸음 버스 정거장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나아갔지만, 일부는 우리 쪽으로 오고 있기도 했다.
반대편을 보니 한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온다. 그들이 다가오고 우리가 다가갈수록 서로의 정체를 뚜렷이 할 수 있게 된다. 3살쯤으로 추정 가능한 아이가 유모차에 앉아 목반쯤 꺾은 채 잠들어 있고, 아내로 추정되는 자는 유모차 옆에 딱 붙어 남편과 걸어온다. 유모차는 남편으로 짐작 가는 자에 의해 끌리어진다. 그는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고 한 손으로, 그것을 하고 있다. 유모차 손잡이를 잡지 않고 있는 그의 손에서 한 줄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른다. 그들이 가까이 오고 우리가 가까이 갈수록 연기의 실체는 민낯을 드러낸다. 설마, 하고 ‘아니겠거니’ 하고 싶던 나는 그의 손을 쳐다본다. 설마가 ‘헉’이 된다. 그의 손에 분필처럼 생긴 담배 한 자루 꽂혀 있다. 목을 축이듯 이따금 분필대 같은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 뻐끔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연기를 내뿜는다. 반복한다. 우리는 걸어가고 그들은 걸어온다. 마침내, 우리는 교차한다. 그때 나는 그것이 고약한 담배 냄새임을 맡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미친 거 아니냐는 소심한 욕을 한국어로 해본다. 아마 유모차에 자고 있던 아이는 알아도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자주 있는 일이라 알아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 뒤로 이러한 장면은 튀르키예에서 꽤나 자주 연출되는 장면이란 걸 새삼 알게 된다. 부모는 아이 앞에서 담배를 피고 왠지 모르지만 아이는 콜록 대지 않는다. 오히려 콜록대는 쪽은 한국에서 온 성인인 나다. 가느다랗게 피어나는 아버지의 담배 연기 속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아버지와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 건강이 염려스러운 건 오직 나뿐인 듯하다. 담배 연기를 맡는 어린이는 나의 상식엔 없었다.
그것과는 달리, 나는, 무려 다섯 살 무렵 첫 소주를 마셨다. 비슷한 또래의 여러 식구가 모여 간 여름 계곡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어 엄마들은 거나한 한 상차림을 만들어냈는데, 상에는 스티로폼 위에 대충 썰어 담은 광어회와 산 오징어 회, 그 옆에 초장과 기타 등등이 있었다. 기타 등등에는 소주도 포함 되었다. 어른들 각자의 자리 앞에는 차갑게 이슬 맺힌 소주잔이 하나 둘 셋 넷, 놓였다. 두꺼비 그려진 빨간 뚜껑 소주는 상의 가장자리에 서 부름만 기다리고 있었다.
상 주위를 둥그렇게 둘러앉은 어른 틈 사이로, 각 가정에서 낳은 아이들이 끼어 앉았다. 나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앉았고, 때문에 내 자리 엄마 자리, 아빠 자리 할 것 없이 우리는 흐트러진 경계 틈 저녁 식사를 했다. 산 오징어 회 한 줄에 초장 듬뿍 찍어 잘 씹히지 않는 그것을 백 번이나 씹었을까. 목이 말랐다. “엄마 물 어디 있어?” 두리번거리며 마실 물을 찾던 나는 마침내 눈앞에 놓인 차가운 잔에 담긴 투명한 물을 발견한다. 이거다 싶어 단숨에 잔을 쥔 채 들이켜는데…(Cause you are my girl♬) 그게 바로 인생 첫 소주 샷이다.
허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생사 다섯 살에 첫 술을 시작했다는 게 아니라, 입에 술 가져다 댈만한 여건을 어른이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그날 그 자리에 어린이들 대거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술을 자제했더라면 소주를 마실 수 없었을 것이다. 뭐라도, 술이 아닌 액체를 마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내가 에미뇨뇨에서 담배 피는 아이 아빠를 보며 불편했듯 튀르키예 부모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한 태도가 된다. 절대, 튀르키예에서는 어린이 앞에서 술 마시지 않는다. 이슬람 경전에 해당하는 ‘코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음주는 악마나 하는 짓이다.”
대신 종교적으로도 담배는 허락한다. 담배에 대한 금언은 없다. 때문인지 술 마시지 않는 튀르키예 국민은 꽤 많아도 담배하지 않는 국민은 제법 적은 편. 요즘 한국과는 반대다. 담배피지 않는 한국인은 많아도 술 않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때문인지 튀르키예에서는 아이 앞에서 어른이 담배를 핀다면, 한국에서는 아이 앞에서 어른은 술을 마신다.
한여름, 시원한 생맥주가 마시고 싶어 동네 맥주 집만 가도 아이를 대동하고 온 부모를 왕왕 본다. 아이는 치킨을 먹고 옆에 앉은 부모는 치킨과 소주를 탄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아이들은 이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익숙한 눈치다. “아빠 그만 마셔어~” 하고 30년 뒤, 고스란히 자기도 들을 잔소리를 제 아빠에게 퍼붓는다. 그러나 저러나 부모는 동요하지 않는다. 태어나 34년간 자라온 나의 나라, 한국은 술 문화라 할 수 있다. 어른은 단지 아이는 마시지 않을 것이므로 아이 앞에서 ‘나만’ 마시되 아이는 지켜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들에게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순간, 부어라 마셔라 술로 성인식을 치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것임을 의례 알고 있어 부모가 주도를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게 한국이다. 적당한 음주는 사회생활에 필수라 말하기도 한다.
- 튀르키예는 어린아이 앞에서 담배는 피지만 술은 절대 금지
- 한국은 어린아이 앞에서 술은 마시지만 담배는 절대 노노
그래서 술이 더 나쁠까, 담배가 더 나쁠까. 튀르키예 어른이 나쁠까 한국 어른이 나쁠까. 엄밀히 말하면 둘 다 어른과 아이 건강에는 나쁘지만, 더와 덜을 가리는 판단 기준은 없다. 오직 관점에 관한 ‘입장’만 존재할 뿐이라 다름을 향한 우리의 논쟁은 쓸모가 없다. 하여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에미뇨뇨에서 찌푸린 내 인상은 그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는지 모른다. 한편 내 표정은 무례했을 수도 있다.
그저 관념에 입혀진 관점에 따라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같은 ‘나’라도 튀르키예에 태어나 오랜 시간 그곳에 살았더라면 술을 대하는 태도가, 1일 1깡하던 과거의 나완 전혀 달랐을 테고, 반대로 “오줌처럼 생긴 맥주를 어떻게 마시냐”며 한숨 푸욱 내쉬던 시엄마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의심할 필요도 없이 여기 술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였을 테다. 그녀는 매일 소주 한 잔을 반주삼아 들이켰을 수도 있다.
오묘한 인간. 자라난 환경과 환경을 떠받치는 문화와 인간과 관념이 뒤섞여 결국 ‘내’가 된 나. 그것을 진정한 나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환경에 지배받은 나의 믿음체계가 진짜 나인 것일까. 술은 나쁘고 담배는 나쁘다는, 이러한 믿음의 근거는 무엇이던가.
담배와 술로 시작한 이야기는 이 밤의 끝을 잡지 못하고 철학으로 마무리 짓는다. 아이가 없는 우리니, 편히 맥주나 한 잔 하러 가야지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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