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은경 Nov 02. 2023

만난 지 2주 된 외국인과 결혼했다(1/2)

제29화

자극적이다. 제목이.

생각만으로 아찔하다.

저런 결혼.



하여 오늘 전할 이야기는 무엇인가 하면? 국제부부로서 우리의 결혼 썰을 풀까 한다. 사실 그동안 결혼과 국제결혼과 튀르키예 결혼에 관한 칼럼은 제법 썼더란다. 보신 분은 알 것이다. 때문에 외국인과의 결혼에 갖던 로망이 절망으로 변해버린 분도 있을 수 있겠다. 외국인과의 결혼이라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환상을 내 글로 인해 지극한 현실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 행복이 훨씬 크다. 사랑과 행복 앞에 장애물은 껌이 된다.     



아무튼 그만큼 다양한 썰을 풀기는 했다. 그러나 오늘도 여지없이 ‘국제결혼’ 이야기를 터는 것은 아무렴. 이 칼럼은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의 아내로서 사는 ‘나’에게, 그런 ‘나’라서 청탁한 글이기 때문이다(돈 받고 하는 일엔 충실한 편).     



다만 이번엔 좀 서울특별시 같은 ‘특별한’ 칼럼을 쓰고 싶었다. 그동안도 국제부부로서 우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과감 없이(독자를 웃기고 싶을 땐 좀 오버하기는 함) 써왔지만 아직 뭔가 부족해. #펍에서 만난 6살 차이 연상연하 국제커플, #코로나로 급하게 질러버린 법적 혼인관계 즉 결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자취집에서 시작한 신혼생활, #직장인이던 나와 대학원 준비 중인 학생 훈, #외국인 남편을 양육하는 한국인 아내, …. 이슈성은 많은데 실은 이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여 튀르키예에서 온 남편 훈과 나의 결혼에 차별성은 뭘까. 그런 것을 떠올리다 마침내 우리 커플만의 특별함을 발견했으니!     



‘사귄 지 2주 된 외국인과 결혼을 결심하다.’     



고백하건데 우리는 미쳤었다. 안전장치 없이 번지점프에서 뛰어내린 것만큼 미쳤었다. 미친 결혼이었다. 과감해서 미쳤다고 밖에는 더 형언할 길 없고, 무모해서 돌았다고 밖에는, 용감함이 행동을 만들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결혼생활 3년이 지난 지금도, 훈도 말하고 나도 말한다.    


 

“It was crazy, isn't it?"

(미친 거지, 그렇지 않아?)     



우리의 미친 결혼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바야흐로 2019년 12월로 돌아가야 한다. 때는 이불을 둘러 말은 듯한 롱패딩이 유행하던 2019년의 겨울 어느 토요일이었다.     





당시 남편 훈은 서울 왕십리에 위치한 H대학에 유학을 왔었다. 학교에서 교환학생 할 기회가 있어 왔고 오로지 공부와 경험 위한 한국행이었다. 그런 그는 학기를 마쳐 곧 본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토요일 저녁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날, 이태원 모 펍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 나도 그날 이태원 그 펍에 간 것이었다. 하늘에서 점지한 날과 장소가 그때, 그곳이지 않았나 생각하며 여하튼 그날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알게 된다.     



그날 나는 이태원에서 절친과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당일 오전 굉장히 빡치는 사건을 겪었고, 분을 삭히지 못한 채로 그녀와 만나야 했다. 우느라, 두 눈이 붉어진 채로 핑크색 롱패딩을 입고 이태원으로 향했다. 그녀와 한 펍에 들어갔다. 빡침은 무자비 노개념 드링킹으로 이어졌다. 생각 없이 많이도 마셨다. 그러다 보면 화가 좀 풀릴 것 같아 그랬는데, 만취&꽐라. 그날 나였다. 그 상태로 펍에 있었는데….     



(이쯤부터 빨리 감기)



그러다 잠에 들었다. 정확히는 선 채로 졸았다. 그렇게 한참을 졸고 있는 줄도 모르다가 잠에 깼는데, 웬 외국인 남자가 그의 몸뚱어리를 바쳐 나를 기대게 해준 것 아니겠는가. 뭔 일인가 싶어 놀라서 고개 들어보니(훈은 키가 큰 편이고 나는 키가 작은 편이다) 측은지심 가득, 자비로운 얼굴을 한 웬 남자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는 거다. “Are you OK?(괜차나요?)” 순간 나는 부처가 등장한 줄 알았다. 중동아시아에서 온 부처. 눈이 짙고 쌍커풀이 크며, 얼굴 반이 수염인 부처. 마음결이 부처 같아서 부처.     



부처 hansd up



여하튼 이 모두는 하늘의 계획이었겠다. 하늘이 점지한 인연이라고나 할까. 그날로 훈과 나는 사랑에 빠진다. 다만 하늘은 하나의 시련을 주었으니, 훈이 곧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것. 그의 출국까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날은 대충 20일(미만) 정도였다. 3주가 채 안 되는 날이 우리에게 허락됨. 하여 매일 바싹한 데이트를 하게 된다. 매일 바싹 붙어 놀았다. 퇴근이 무섭게 훈을 만났고, 헤어지기는 싫은데 또 추워 걷기는 힘들어서 커피숍만 하루에 3군데 가기도 했다. 그렇게 마지막 잎새를 기다리며 생명이 줄어드는 느낌으로, 우리는 매일을 바싹 붙어 지냈다.     



결국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은 오고야 만다. 출국 날이 되었다. 훈이 떠났다. 인천공항에서 그의 멱살을 잡으며 한국에 “꼭” 다시 오라고, 아니, 3월에 내가 가겠다며 울고 불다가 그를 보낸다. 그렇게 3월 튀르키예 행 비행기를 사고 훈과 만날 날만 기다리는데….   



망할.     



즉시 코로나가 터진다. 중국에서 시작해 한국으로 번진 바이러스로, 온 나라는 한국을 거부하게 된다. 튀르키예도 마찬가지라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더니 끝내 오지 말란다. 그렇게 예매한 비행기표는 취소요, 우리의 만남은 불시착한다. 그러다 곧 튀르키예에도 바이러스가 번진다. 그곳은 아예 외출 금지령을 내리기도 한다. 바이러스 생지옥이 전 세계에 퍼졌다. 감염이라는 이유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저지당한다. 만날 수 없고 만질 수 없다.     



I miss you too much



당시 우리가 연락할 유일한 방법은 메신저를 이용한 영상통화와 톡이었다. 보고 싶은 남자친구, 그리운 여자친구였다. 우리 둘은 한국시간 새벽 3시까지 영상통화를 하다 잠에 들었다. 뭐하냐고 묻고 뭐 먹었냐고 묻다가 웃긴 이야기를 하고 코로나 욕을 했다. 그러면 새벽 3시가 되어 있었다. 다음날이면 아침 9시 출근을 해야 했지만 ‘라떼는’ 그리 살았더랬다. 그런 생활이 약 5개월간 이어졌다. 매일 코로나가 꺼져주기를 바라며, 누구라도 백신을 발명하기만을 바라며 정말 하루하루 견뎠다.     



그렇게 영상통화만 수 천 시간 했을까. 6월이 되었다. 날이 좀 따뜻해지면 사그라질까 했던 바이러스는 그럴 의지가 없었다(무려 2년 뒤에나 종식되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빠른 판단이었다). 종종 전문가들이 티비에 나와 “아직 멀었다”며 겁을 줄 땐, “네가 뭘 아냐고!” 항의하고 싶었다. 그러며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간다.



훈을 못 만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석유라도 갖다 부은 듯 마음이 활활 타는 것이었다. 자다 일어나 가슴을 퍽퍽 치다 잠에 드는 날이 늘었다. 북한사람과 연애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라, 나는 <사랑의 불시착>에서 선 보인 손예진과 현빈의 연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남과 북에 삼팔선을 그어둔 것만 같은, 이것은 미칠 지경.     



이 기분 마치



그래도 이전보다는 시스템이 나아져, 이제 비자만 있으면 입국은 가능하게 해준다 했는데 훈은 비자가 없었다. 대사관에선 웬만한 비자는 발급 중지라고 했다. 그러나 한 줄기 희망, 유일하게(?) 발급하고 있는 비자가 있었으니. F-6(내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비자)였다. ‘그냥 확 질러버려?’ 그때 나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한다. 훈에게 결혼을 제안한다.     



“나랑 결혼할래?”

“당연하지!”     



이게 정말 거짓 하나 없이 우리가 결혼을 약속한 날 영상통화로 나눈 대화다. 훈은 0.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쳤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그때는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유선으로 결정한 결혼은 예비 신랑신부에게 초특급 감동이었다.     



그 뒤 일사천리로 결혼이 진행된다. ‘식’ 말고 ‘결혼’이. 양국에 혼인 신고를 마친다. 그 즉시 비자 신청에 들어간다. 결혼했으니까 이제 비자 내놔! 하고 대사관에 당당히 서류를 들이민다. 그렇게 F-6 비자가 발급된다. 훈에게 비행기 티켓을 사 보낸다. 그렇게 2020년 8월 어느 날, 마침내 훈과 조우한다. 주륵. 그날 공항에 준비 된 방역택시 타고 오던 길은 아직도 생생하다. 마스크 낀 두 남녀의 애잔함은 서로의 허벅지를 쓸고 있다. 기사님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영종도를 빠져나와 인천대교를 달려 나갔다.     



그렇게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데이트 2주 만에 결혼을 결심한 (서로에게 있어)외국인 둘은, 연애 같은 생활을 해나간다.      



그렇다면 무엇이 만난 지 2주 된 외국인이랑 결혼을 결심하게 했던 것인가? 그것에 관하여는.     



(다음 편에…)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947032&memberNo=38753951&navigationType=push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 앞에 담배 피기 vs 아이 앞에 술 마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