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분량 못 채우겠다는 분을 위해 쓴 칼럼입니다.
대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 배운 [4배 권법]이 담겨 있습니다.
글 분량 채우기 외에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건 덤!
그럼 가보자고!
늘 그랬듯, 소개부터.
5권 출간 작가이자 글방지기 손은경입니다.
글쓰기를 어려워만 했던 이들에게 쓰기에 관한 제 모든 통찰을 이해쉽게 전달함으로 글쓰기 자신감을 심어, 뭇 쓰고 싶은 모든 것을 글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글과 책 쓰기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얻어낸 저의 통찰을 여러분과 나누기 위해 글방을 운영하고 있고, 현재는 오마이뉴스와 네이버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루키 글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일단 재미는 차치하고)
‘으 아니, 굉장히 풀어 말하잖아? 어디 보자. 한 문장이면 될 것을 몇 문장에 걸쳐 썼는가. 음… 보통 x4네. 네 줄을 더 썼어.'
‘역시. 그래서 하루키인가.’
동시에 내 뇌는 멘티씨를 떠올립니다.
‘한편 멘티씨는 글 분량 채우기 어렵다고 했었지. 아무리 써도 몇 줄을 못 넘기겠다고 말이야. 이럴 땐 하루키식 글쓰기가 도움 되겠는 걸? 적어도 분량이 4배는 늘겠어!’
하여, 준비했습니다.
글 분량이 도저히 안 채워진다고요? 그럼 무라카미 하루키식으로 써보세요. 1줄은 4줄로, 10줄은 40줄로, 25줄은 100줄이 되어 있을 거예요.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건 덤입니다!
그럼 바로 예시 데려옵니다.
(중략) 햇볕은 점점 기세를 더해갔다. 고지대인 탓에 자외선이 강해서, 코스 옆에 서서 구경만 하는 데도 살갗이 제대로 탄다. 주위에는 햇볕을 가릴 만한 나무도 건물도 전혀 없다. 그저 잔디밭만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가만히 있어도 목이 탄다.
그런 가운데 선수들은 묵묵히-뭐, 새삼스럽게 말해봐야 소용없겠지만-계속 달린다.
- 무라카미 하루키, 『시드니』, 비채 출판
무라카미 하루키 저 『시드니』 일부입니다. 2000년 올림픽 당시 한 매거진 요청으로 졸지에 특파원이 된 하루키가, 경기 관전 후 쓴 소감을 실은 책인데요. 위는 개중 한 부분입니다. ①부터 ⑤까지 숫자는 제가 문장 하나마다 매긴 거고요. 전부 쭉 이어진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글 다시 볼까요.
잘 보시면, 하루키는 마지막 한 마디-“그런 가운데 선수들은 묵묵히-뭐, 새삼스럽게 말해봐야 소용없겠지만-계속 달린다.”-전하려 이 얘기, 저 얘기 끌고 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엔 총 5문장을 데려왔네요. 바로 이겁니다.
① 햇볕은 점점 기세를 더해갔다.
② 고지대인 탓에 자외선이 강해서, 코스 옆에 서서 구경만 하는 데도 살갗이 제대로 탄다.
③ 주위에는 햇볕을 가릴 만한 나무도 건물도 전혀 없다.
④ 그저 잔디밭만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⑤ 가만히 있어도 목이 탄다.
그렇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러니까 ‘날이 뜨겁다’를 설명하기 위해서 하루키는 ① 햇볕, ② 고지대 자외선, ③ 나무도 건물도 없음, ④ 그저 잔디밭, ⑤ 가만히 있어도 목이 탐, 을 데리고 왔습니다. 다섯 번에 걸쳐 한 마디씩 거들게 한 거예요. 햇볕아 거들어라, 고지대 자외선아 거들어라, 그늘 하나 만들지 않은 나무야 건물아 거들어라….
반대로 보통은 이렇게 쓰고 맙니다.
- 초보가 쓴 압축 글
대단히 단출합니다. 굉장히 간결해요. 그리고 보통은 여기까지 쓰고 말아요. 초보가 쓴 글 특징입니다. 압축해 쓰기. 앞뒤 싹뚝 잘라 한 문장으로 퉁 치려는 경향이 큽니다.
언젠가 그 이유가 궁금해 골몰한 적 있었는데요. 한 가지 추측은 ‘기억이 안 나서’, 그러니까 글쓰기 위한 관찰 이에 따른 기억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쓰는 사람은 쓰기 위해서라도 만물을 관찰하는 습관이 배었기에 쓸 수 있는 것.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이따 하도록 하고요.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앞서 ‘글쓰기 경제성’을 논한 적이 있는데 경제성은 ‘문장’에서 발휘되는 거예요. ‘글(내용)’이 아니라. 잘 이해가 안 된다 싶으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 문장을 경제적으로 쓰는 노하우 알아 가시면 됩니다.
https://blog.naver.com/bestjasmineever/223227671758
비슷하지만 다른 예시. 조금만 자세하게 묘사해도 문장이 길어집니다.
비행기가 (드디어 바다를 지나 크게 한 바퀴 돌아서) 시드니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시드니』, 비채 출판
그런데 보통은 이렇게 쓰죠.
"비행기가 시드니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 초보가 쓴 압축 글2
끝.
반면 하루키는 (드디어 바다를 지나 크게 한 바퀴 돌아서)라고 조금 더 보태주었어요.
어찌 보면 ‘수식이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글의 분량-을 생각하면 수식은 때로 귀엽게 받아들여줄 수 있어요. 특히 대상이나 상황을 묘사할 때는 더욱이요. 어쩔 수 없는 수식이니까요.
*글쓰기 조언에 ‘수식을 줄여라’가 많아서 쓴 내용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글의 구성은 글 쓰는 작가 판단에 기합니다. 필요하면 넣고, 불필요하면 제거하면 그뿐이지요. 글의 감은 오롯이 작가에게 있다는 것 잊지 마세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하루키식으로 4배 늘려 쓰고 싶다 이말이다!
아까 힌트를 흘렸습니다만. 맞습니다. 어느 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본 것을 고춧가루 날리듯 허투루 날려 버리면 안 됩니다. 전부 낚아채 글로 쓰라는 말입니다. 상공에서 본 바다, 크게 한 바퀴 돈 비행기 움직임, 전부를 글로 써주어야죠.
그러려면 한 가지 굳건한 정신이 필요합니다.
쓰겠다 마음먹으면, 쓰기 위해 세상을 허투루 보지 않게 됩니다. 뭐든 글로 남기겠다는 견고한 다짐에 세상만사 맹탕 흘려보낼 일은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글 쓰는 이에게 세상은 온통 글감인 겁니다. 하루키가 4배나 늘려 쓸 수 있는 건, 하루키=글쓰기=세상만사가 자신에 체화된 까닭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도 하루키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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