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ning!
근 일주일만에 쓰는 칼럼입니다.
안녕하세요.
영국 런던에서 돌아온
저는 손은경이고요, 손은경이고 손은경입니다.^_^
그래서 런던행 어땠냐 물으신다면
한국 전부를 잊고 지냈다, 라고 대신해 말하겠습니다. 사방에 들리는 영어 속 나 홀로 한국어 하는 이방인이었지마는, 거기 녹아 없어진 것처럼 스르르 흡수되어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박물관도 가고요 도서관도 가고요 클럽만 안 갔군요. 큭큭.
시간 중엔 갤러리 두 곳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The National Gallery"와 "Tate Modern"이었습니다. 초기 르네상스부터 19세기 후반 그려진 작품과 현대 미술 전부를 감상할 기회가 있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지요.
아아,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미술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흠뻑 빠져들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수 시간쯤 작품과 독대하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흘렀습니다.
"한 면, 한 곳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작가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작가는 편집을 잘 해야겠구나."
캔버스 사이즈는 각기 달랐습니다. 허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한 작품은 한 면에 전부 담겨 있다는 것. 작가는 자기 말(語)을 캔버스 한 면을 빌려 전하고 있었고, 조형물의 경우 한 공간을 빌려 전하고 있었습니다.
극도로 제한 된 면과 공간
이 한계는 작가에게 특별한 미션을 제시했습니다.
작가에게 주어진 특별한 미션?
그래서 특별한 미션이 무어냐면 바로 '편집력'입니다.
면과 공간의 한계는 작가에게 편집력을 요구합니다. 작가는 하고픈 말이 꽤나 많았을 테지만 '제한'을 역으로 편집력 쓸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글이라는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집 잘 하는 사람은 글도 잘 씁니다." 적확히 말하면 편집 잘 하는 사람이 쓴 글은 좋은 글이 됩니다.
이해 쉽게 상상해 봅시다.
여러분이 일기를 씁니다. 일기란 일일의 기록이지요. 그리고 하루는 24시간. 꽤나 깁니다. 24시간 동안 벌어진 모든 일을 백지에 옮기자니 손은 아프고 지면은 좁고 누구도 재미있게 읽어줄 것 같지 않습니다.
때문에 편집은 중요해집니다. 하루의 모든 서사를 기록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대신 길어올리고 싶은 하루 메시지를 끄집어, 그것에 맞추어 정해진 지면에 사건의 편집을 합니다.
그렇기에 작가에게 편집력은 반드시 키워야만 하는 능력이 됩니다.
면(面)이라는 필연적 제약으로 인해 말입니다.
메이지 대학 교수이자 <혼자있는 시간의 힘> 포함 133권을 집필한 작가 사이토 다카시는 '편집력'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편집력이란 하나의 정보와 또 다른 정보를 어떻게 연결해 조합하느냐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상대방 이해도가 달라지고, 단어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설득의 정도가 판가름 난다."
글쓰기에서 편집력이란 1) 무엇을 넣고 뺄까의 문제, 2) 무엇을 어떻게 연결해 조합 할까의 문제, 3) 직접이나 간접으로 다룰 것인가의 문제, ··· 이런 것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잘 하면, 글은 절로 잘 생긴 글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편집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편집력은 쓰며 재구성하는 훈련도 중요하지만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진짜 아닐까, 합니다. 왜냐고요? 편집을 잘 하려면 편집에 구애받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무슨 말인가, 하면 편집을 잘 하기 위해 편집 빼고 모조리 붕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기꺼이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 편집을 잘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 면'이라는 제약에도 오로지 작가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편집념' 하나 빼고 전부 파괴하는 겁니다.
예술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도저히 단 번에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이면서 형이상적인 어떤 실체가 한 면에 그려져 등장합니다. 작가는 자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캔버스 한 면에 편집'이라는 의무 빼고 전부를 붕괴했습니다.
아래 작품이 한 예시입니다.
두 갤러리에서 정말 큰 영감을 얻어 왔습니다. 우리는 '예술'이라는 장르로 한데 속해 있지만 언어와 비언어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비언어, 그러니까 그림과 조형물에서 얻은 이 깨달음은 우리가 글을 씀에 있어 반드시 글만이 유일한 참고는 아닐 것이라고
모두는 연결되어 있어 그럴 것이라고
오늘은 여러분에게 편집력과, 편집념, 추상적 사고에 대한 열린 결말을 남김으로 글을 마치렵니다.
Ps. 금주 목요일부터 칼럼 재연재합니다.
- 첫 책을 쓸 거라면 : 책쓰기 멘토쉽 안내
- [일월일권] 잘 쓰고픈 지성을 위한 독서모임 12월 19일(화) 밤 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