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립 도서관 8주차 일기쓰기 수업 기록
"선생님, 혹시 10월부터 11월까지 8주간 초등 글쓰기 수업 가능할까요?"
구립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초등 저학년 대상, 일기쓰기 수업인데 선생님이 해주셨으면 한단다. 매주 목요일 수업이란다. 주마다 다른 주제의 일기를 썼으면 좋겠다 한다.
그동안 아이들과 꽤나 수업해왔던 터였다. 허나 당시는 한동안 쉬고 있던 상황. 특정 시스템에 속박 된 글쓰기 수업이 아닌, 나만의 플랫폼 만들어 내가 지향하는 바대로 아이들과 쓰기 하고 싶어서였다.
쉼과 도약을 동시에 준비하던 찰나 온 도서관측 연락.
그러나 흔쾌히 하겠다 했다.
무구한 아이들과 만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열 두 제자와 8주간 글쓰기 수업이 시작된다.
협의를 마치고는 8주짜리 수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행일기, 감정일기, 스티커 그림일기, 만화일기···. 다양한 주제로 열린 쓰기의 향연.
9월 중, 수업 준비하며 나는 8주를 미리 살았다.
8주라는 짧은 시간, 아이들에게 무얼 전하면 좋을까로 시작한 생각은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지 못할 그것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기 위해 난 뭘 해야 할까. 무엇을 준비해 8주를 꾸려야 할까.
그런 생각이 이어지다
역시나 '관계'적 측면에 집중하기로 한다. 글쓰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 글쓰기와 나의 관계 가르치는 이와 가르침 받는 이의 관계.
단단히 다지고 나면 저절로 크는 것이 뿌리다. 그것은 아이들과 나의 관계, 아이들과 글쓰기 관계라는 믿음이 바탕됐다.
그렇게 10월. 일기쓰기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은 내 믿음과 같이 흘러갔다. 관계가 깊이 뿌리내린 글쓰기. 다만 욕을 먹기도 했다.
"선생님, 수업 시끄럽다고 도서관 이용자한테 민원 들어와서요···.
아이들 조금만 조용히 시켜주실 수 있을까요?"
수업엔 열 두 아이가 참여했는데, 열 두 아이 거의 대부분이 수업 시간 발표하고 싶어 소위 난리가 났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선생님 저요! 저요!"하며 벌떡 일어서 소리 치는 아이가 있는 한편, (어디서 발견했는지) 마이크를 빼앗아 자기 발표하겠다며 소리 키우는 아이도 있었고, 아이들 자기 표현에 목이 말랐던지 보통 흥분한 상태가 수업 내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 측에 민원 들어올 수밖에.
그럼에도 강행한 들썩들썩한 글쓰기 수업.
도서관 주인은 아이들과 성인 전부이지만 수업의 주인은 아이들이었기에 욕 먹더라도 감행할 수밖에 없던 것.
역시나 성과도 있었으니.
수업 하다 보면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을 본다. 한참 생각하고 답 하는 아이, 마음 열기에 시간이 필요한 아이인데 이 친구들 내게 마음 여는 게 서서히 느껴진다.
첫 날, 둘째 날, 셋째 날까지 말 걸어도 잘 대답이 없고, 하물며 "기억 안나요", "쓸 게 없어요" 하고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낙서만 하던 아이가 네 번째 만남부터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 이거 써도 되요?"
"그럼! 우와 되게 재미있는 글이 되겠다."
"그때 이거 먹었어요. 엄청 매웠어요."
"하하. 그랬구나. 좋아, ㅇㅇ이 쓰고 싶은 거 써. 다 쓸 때까지 선생님 기다리고 있을게."
도서관 측도 이 아이를 염려섞인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었는데 끝내 마음 열고 잘 따라와준 아이 보더니, 내게 감사하다고 하더라. 아이들 수업 끝나고 집에 가 "일기쓰기 너무 재미있다"며 엄마에게 소리소리 치는 까닭에 그 소식 건네 받은 도서관 사서님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도.
자랑 같아 더 말할 것은 없다.
여하튼 아이들은 내가 뿌린 사랑을 그대로 거두어주었다. 매주 목요일 있던 글쓰기 시간을 무진 사랑했다.
"선생님 수업 또 올 거죠?
도서관 선생님, 선생님이랑 또 수업하게 해주세요!"
"오늘 다 못 쓴 일기는 다음주에 다시 쓸게요!"
"선생님 일기쓰기 숙제 또 해올까요? 언제 하면 되요?"
- 손은경 선생님표 글쓰기의 기적
그렇게 마지막 날.
8주 전부터 8주 후를 내다보던 나였던지라 오늘을 예견하고 있었다. 11월 30일, 나의 영국 런던행을 앞두고 열 두 제자와 기약없는 마지막 만남.
제법 추워져 포근한 패딩을 걸쳐 입고는 우리, "잘가렴. 또 만날 것이야"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기고 각자 집으로 흩어져 가겠지. 헤어짐 있어 만남이 있고 만났기에 헤어짐 있는 것처럼,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만 괜히 찡하던 9월, 수업 준비하던 어느날처럼.
정말로 그렇게
눈물나게 진심이던 아이들에 감동해, 그들과 못 만날 생각을 하니 뜨거운 무언가가 목울대까지 왈칵 올라왔다. 반드시 다시 만나겠거니 하고 다독여야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열 둘 중, 남자 아이 아홉 자제 시키느라 대단히 고된 매주였다. 수업 후 집에 가는 길, 급 당기는 빨간 떡복이에 몇 번 시켜 먹기도 할 만큼 당이 필요한 8주였지만, 적어도 감정만큼은 충만한 채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수업 지속하는 것 아니겠냐며.
*
곧 방학이라던데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너희 중 열 한 명은 겨울을 좋아한다던 기억이 나는데, 이 겨울. 펑펑 즐겼으면.
그럼에도 따뜻한 하루를 보냈으면 하고 선생님은 바란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기를!
앞으로 어린이 글방은 별도 운영 할 계획입니다.
초등 글쓰기 수업 신청, 초등 글쓰기 방향 등에 관한 전부를 여기 담아두었으니 이웃 추가해 주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