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최근 여자 넷이 모여 수다 떠는 한 영상을 보다 흥미로운 대화 소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너네는 외국인이랑 사귈 수 있어?”
“음.”
“나는 사귈 수 있어!”
“나는 머리랑 눈동자 색이 나랑 같으면 사귈 수 있어.”
“엥?”
“그러니까 검정색 머리카락이랑 검정색 눈동자를 가진 외국인이면. 금빛 머리랑 파란 눈동자를 가진 외국인은 못 사귈 거 같아.”
영상 속 대화는 여기서 종료 되었다. 말인 즉, 본인과 생김이 같은 동양인과는 연애가 가능하다는 결론. 반대로 애석하게도 서양인은 그녀와 연애 불가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무리 잘생긴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남자인들 그녀에겐 이질적 존재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 모양. 외국인 남편을, 그것도 짙은 눈썹에 움푹 파인 두 눈, 그 위로 자리 잡은 두꺼운 쌍커풀과 잘 빠진 콧날 아래 수북이 가득한 턱수염을 가진, 중동계 얼굴을 한 그(그는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에서 왔다)와 살고 있는 내겐 적잖이 의아스러운 답변이었다. 허나 비단 그녀만의 견해는 아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 이전, 다른 외모로 외국인과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그들을 더러 봐왔다.
실제 나의 지인도 비슷한 고백 털어놓은 적 있다. 그는 현생의 80%를 외국에서 생활한 자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일로 중동에 살았고, 중학생이 된 후로는 미국에서 유학 했다. 대학교까지 거기서 졸업했으니 족히 10년은 미국에 살았으리. 그런 그가 한 말이 있었다.
“나도 서양인은 이성으로서 좋아지지는 않더라.”
그런 까닭에 한국, 일본, 중국, 태국 … 아시아인과만 사귀었다던 그였다. 그리고 그것은 종과 종의 문제, 다른 종이라 할 수 없는 일종의 불가피 연애 룰처럼 들렸다. 나와 판이하게 다른 외모를 가진 그는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라는 것. 사랑의 스파크는 첫 인상, 그러니까 외모에서 튀기어져 산소와 만나고 바람이 불면서 불이 붙고 점점 커져 퐈이아 ‘이 불은 활화산처럼 커져 더 이상 꺼질 수 없소’ 하는 것. 어디까지나 외모는 연애에 있어 통과해야 할 제1의 관문임을 안다. 그들에게 이국적 외모의 외국인은 어쩐지 이성으로 다가가기엔 너무 먼 당신인 것이다.
영상 본 후로 한동안 다음의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이국적 외모는 어째서 일부 사람에게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하물며 데이트 할 수 없다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반대로 일부는 이국적 외모의 외국인과 잘도 사랑에 빠지지. 그 일부 사람은 어째서 그럴 수 있던 걸까. 어째서 나는 중동인과 이탈리아인을 섞어 놓은 외모의 남편을 사랑할 수 있던 것인가. 누가 봐도 나는 토종 한국인인데. 나와 눈썹부터 입매까지 판이하게 다른 이질적 그인데.
흠.
나도 그것은 잘 알고 있다. 처음 남편과(그땐 남자친구) 잠을 잘 때, ‘아 이러한 인간의 종도 있구나’ 하며 흠칫 놀라던 날을 떠올리니 그렇다. 첫 그의 알몸과 마주한 날이었다. 우리는 추운 겨울에 탄생한 커플이다. 매일 목부터 정강이 감싸는 롱 패딩을 입고 만났다. 때문에 서로의 살결을 볼 기회는 없었다. 라운드 티셔츠 위로 빼꼼 올라온 몇 가닥의 터래기까지(‘털’의 경상도 방언) 보기는 했으나 이토록 거대한 놈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을 줄은, 상상할 수 없던 것이다. 인간계에 이런 몸이 있을 줄이야. 발가벗은 그는 짐승이었다. 롱 패딩에 감춰진 그의 몸이 온통 털로 가득하다. 듬성듬성도 아닌 빽빽하게, 많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털이 많죠?”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의 질문에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가슴팍뿐만 아니라 하물며 어깨에도 털이 난 그를 보며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등에도 듬성듬성 난 털을 어쩌다 발견했음에도, 허벅지 가득 잔디처럼 난 털을 보면서도. 털이 많아서 너랑 헤어지는 없을 거라는 일종의 “괜찮아.” 그러나 진짜 놀라지 않고 괜찮았던가. 생에 나를 스쳐간 한국 남자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몸이었다. 개털 같은 그의 몸 털이 자취방 군데군데 휘날렸다. 털이 많으면 빠지는 털도 많음을, 그날 배웠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인간 그를 사랑했다. 데이트 초창기 신비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매일 그의 눈썹과 콧날을 쓰다듬었다.
“와, 신기해요. 콧대가 높고 뾰족해요!”
(코끝에 보형물이 있지 않은 지 그의 코를 지긋이 눌러본다)
“나는 베이비의 얼굴이 신기해요. 코가 어떻게 이렇게 조그매요? 헤이즐 넛 같아요ㅋㅋㅋㅋ 귀여워요.”
(누르면 이그러질까, 그는 내 코를 살짝 터치해 본다)
대조적인 서로의 얼굴. 나의 낮은 코는 오뚝한 그의 코앞에 귀여울 수 있다. 데이트 할 때는 다른 인간 종에 대하여 살피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우리와는 다른 그들을 생각한다. 이질적 외모가 사랑에 미치는 영향이 무얼까. 이성을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게 하는 원인이 뭘까. 그들 말에 따르면 멋지게와 예쁘게 생기고 아니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단순히 이성(異性)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 뿐이었다.
그러나 ‘에라이 모르겠다.’ 이게 지금껏 잠정내린 답이다. 어떤 이유로 이국적 외모를 가진 그 외국인을 이성으로 느낄 수 없는가? 당사자에게 질문한들 그들조차 시원하게 답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 그저 나와 다른 외모를 한 외국인 볼 때, ‘저 제상 남’으로서 느끼기 때문 아닐까 한다. 동류감의 문제일 것이다. 외모가 다른 외국인에게선 느껴지지 않는 동류감일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이에게 사랑은 동류감에서 비롯되기에 그럴 테다. 그들에게 이러한 감정은 사랑의 핵을 이룬다. 그렇기에 몹시 낯선 대상은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사랑의 씨앗은 뿌리내려지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외모가 사랑에 미치는 영향은 다분히 존재한다고. 그게 아니고서야 ‘나와 다른 외모’를 지닌 그와 연애 시작할 수 없다 말할 순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외적인 모습은 사랑을 유발하는 시발. 그래서 나는 엑스들을 사랑할 수 있던 것인가. 생각한다. 외모란 대체 뭘까.
답 없는 질문으로 시작해 다시 질문으로 맺는 이 글을 본 당신도 한 번쯤 궁금해 했으려나.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