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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24. 2020

마스카라 바른 날


화장하는 여자는 저마다의 화룡점정을 가진다.

효정이에겐 짙게 바른 립스틱이 그것이고, 미정이에겐 주근깨 가려 줄 컨실러가 그렇다. 화장의 최종, 립스틱과 컨실러가 그 대미를 장식하는 거다.


마스크 쓰고부터 외모에 홀대다. 쟤들도 아마 그럴 것이다. 흰 천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데 워따 써먹어.

눈만 드러내고 다니면 되는 것을, 두드려 펴 발라봐야 어차피 지워지는 것을, 굳이 시간들여 공들여 화장품까지 들이고 싶지 않다. 덕분에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 익숙하다. 여드름 자국 마스크 뒤에 숨긴 채 눈만 뻐끔뻐끔 뜨고 다니는 요즘이지만, 오늘. 마스카라 칠을 했다.


파우치를 뒤적였다. 그리고 묵혀둔 뷰러를 주섬주섬 집어 든다. 왜 인지 알 수 없으나 마스카라 바르기 전엔 입이 먼저 마중한다. 너무도 자연스레 입이 벌어져 있다. 뷰러 오른 손에 껴 왼쪽, 오른쪽 순서대로 눈썹을 집어 준다. 그러면 아래로 45도 향해 있던 속눈썹 위로 45도 향하게 되는데, 그때로 눈망울 한결 또렷하고 커 진다. 포인트는 지금이다. 중력을 거슬러 치솟은 속눈썹 고사이 못참아 가라앉지 않도록 마스카라로 고정하기. 지체할 틈 없이 브러쉬 꺼내 한번, 두번, 세번 더욱 풍성히 치솟길 바라며 덧칠 한다. 그리고 짜잔. 깜빡이는 두 눈에 초롱초롱 내가 되었다. 나의 화룡점정인 마스카라.

오늘은 마스카라까지 바르고 싶었다.



어제 저녁, 점심 약속을 잡았다. 경미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설레였다. 경미랑 보내는 시간이니까. 조오기 고급 레스토랑이 있다고 하던데 거기 데려 갈까, thㅏ이 음식, 뷔엩남 음식, 양식 뭘 먹일까. 내가 아는 가장 고급진, 최고로 맛있는 식당에 가자 하고 싶은데. 평소 남루한 옷차림의 출근 길과는 달리 니트도 차려 입고 진주 귀걸이까지 하고 온 날. 경미에게 내 진심을 최대로 전하고 싶다.


"오늘 뭐 먹을까요? 골라 보세요!"

"쉑쉑버거 먹으러 가요! 미치도록 먹고 싶음ㅋㅋㅋㅋㅋ"


거짓말이다.

경미는 그 맛을 잊지 못해 울부짖다시피 하는 나 때문에 미칠정도로 먹고 싶다고 한 걸테다. 2년만에 경미가 훤히 보인다. 경미는 그런 사람이다. 배려와 양보가 몸에 벤 사람. 오늘 나를 마스카라까지 칠하게 만든, 최고로 정성스런 나로 보이고 싶게 한 사람. 나랑 하는 연애도 아니면서 예쁜 글귀 적어 살며시 나에게 전달해준 사람.


경미 쪽지


"네가 반짝반짝이면 좋겠어."라는 경미의 말에, 오늘. 곱게 마스카라 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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