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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VA 민박 프롤로그 -2

GUAVA 민박 프롤로그 -1 GUAVA HR 입문기 외전 2/2

by 구아바

무작정 떠난 유럽여행


여하튼 안다박사와 많은 대가 없이 도와준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파리 인아웃 비행기표와 파리호빵 민박집 3일 티켓을 들고 무작정 유럽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사실 나는 첫 직장을 앞두고 나에게 주는 선물, 빡세게 일하기 전에 휴가를 주는 개념이었으므로 파리 또는 주변에만 머물러도 괜찮았었습니다. 처음 만난 호빵민박 패밀리들이 너무 심각하게 걱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파리,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체코, 영국 등을 두루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참 신기한 게 이런 각 나라의 여행지보다 사람들과의 대화와 분위기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비록 이름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잊지 못할 순간들


1. 파리

서로 모르는 호빵민박 사람들과 베르사유궁전에서 자전거를 타러 갔는데, 그 바로 앞 맥도날드에서 잠시 쉬러 갔다가 서로의 이야기를 하느라 웃고 떠들며 2시간을 넘게 앉아있었던 기억

호빵형이 오늘은 달팽이 요리라고 재료 사러 같이 가자고 해서 갔다가, 프랑스에서 가장 맛있는 중국집을 들리고 여러 가지 명품구매 노하우와 돈을 어느 정도 번 뒤에 한국 고향 복귀의 꿈을 들은 기억


2. 스페인

호빵 민박에서 처음 만난 동생과 스페인을 동행했는데 첫날 마드리드 과일 골목에서 칼로 나의 앞으로 맸던 힙쌕을 끊고 달아나는 소매치기를 둘이서 열심히 잡으러 달려갔으나 못 잡았지만 쿨한 척 파에아와 생맥을 마시며 저녁을 보냈던 기억 (여권복사본과 카드 1개(바로정지), 현금 500유로 정도 분실)


3. 이탈리아 로마

조선족 부부 분들이 운영하던 민박이었는데, 당시 머물렀던 사람들이 너무 단합이 잘되어서 저녁에 쫓겨날 뻔하고 하루? 이틀? 일찍 나가달라는 요청에 즉흥 카프리섬으로 떠났던 기억 (그 당시 경북대 출신, 공기업 준비하던 동생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네. 이름도 별명도 기억이 안..)


4. 이탈리아 베네치아

너무 한국사람들과 돌아다녀서 현타가 와서 이제는 유럽인하고 대화해야지 생각했는데 짧은 영어로 깊은 대화가 이어지지 못해서 "아 역시 동양권 외국인이야" 하며 엉터리 중국어로 중국인인척 돌아다니다가, 일본인 같아서 말을 걸었더니 일본인인척 하는 한국인이어서 서로가 한참 웃었고 베네치아를 동행했던 친구의 기억


5. 스위스

일본인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잊기 위해 스위스를 여행 왔는데 술만 마시면 그리워서 울던 스위스 하이킹을 함께했던 동생과 사람들의 기억


6. 체코

두 번의 체코 방문

첫 번째: 유럽여행 중 가장 배부르고 고급지게 먹을 수 있게 해 줬던 (램스테이크, 삼겹살, 와인 등) 고마운 체코 민박 사장님과 마녀 마리오네트 인형을 자기 여자친구라고 데리고 다녔던 씨끄러운 철민?(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이형

두 번째: 폴란드 GML 기간(2012년)에 크리스마스 오프기간 체코를 간 적이 있는데 어느 민박에서 사기를 당해서 급하게 구했던 민박이 이전 민박집 사장님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로 보답했던 기억


7. 영국 옥스퍼드

민박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와의 즉흥적인 여행: "옥스퍼드 대학교 갈래요?" "아니요 저는 런던타워브리지 갔다가 펍에서 맥주 한잔하고 공연 볼 건데요?" "그냥 같이 가요. 나도 같이 가줄게요."라고 강요해서 생각지도 않았던 남자 둘의 영국 구석구석 투어와 끊이지 않았던 웃음의 기억


8. 국가미상

삼성 적성검사 SSAT 보조감독관으로 갔던 학교에서, "형! 오빠! 기억나죠?" 하면서 달려왔던 동생들. "어떻게 여기서 만나죠?" 하면서 반가워했는데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국가가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 나 당황했던 기억들...



HR과 호빵민박의 교훈


그때 당시의 분위기, 냄새, 기분 및 감정이 고스란히 내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비록 이름도 별명도 연락처도 기억을 못 하지만...


안다박사에 대한 미안함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추억에 빠져들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왜 이렇게 도와주고 뭉쳐 다녔을까? 나는 사실 뭐 하나 뛰어난 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끌어내고, 왁자지껄한 모임을 만들고 그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능력은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설명하지 못하는, 남들처럼 드러나는 뛰어남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 보이지 않는 장점이 나를 HR의 길로 이끈 것은 아닐까?라고 나의 HR 운명론을 다시 한번 우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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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민박의 비결


사람이 뭉치고, 그 뭉친 사람이 오래 유지되려면 비결이 무엇일까? 를 호빵민박에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빵형은 뭘 하지 않았습니다.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뿐입니다. 너무 떠들어서 프랑스 경찰이 찾아왔을 때도 쿨하게 넘기고 "잠시만 조금만 조용히 하자" 했었습니다. 그 문화를 깨지 않았습니다.


당시 돈이 빠듯했길래 여러 민박을 돌아다녀 봤는데 서로 이야기도 안 하고 잠만 자던 곳도 있었습니다. 시설은 파리 호빵민박보다 10배는 좋았습니다. 다만 기억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국가마저도 가물가물합니다.

천장에서 물이 새고 삐걱거리는 도미토리움 2층 침대, 군대보다 더 열악한 환경인데 아주 즐겁고 돌아가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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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의 사명


왜 호빵민박은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들(상욱이 형, 선명이 누나, 재택이, 소영이, 영모형..)을 만들어 줬을까?

강력한 리더가 뭉치게 했다고 하더라도 오래 유지되기는 힘듭니다. 서로 신경 쓰고 배려하고 챙겼다기보다 편했던 것 같습니다.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남을 챙기고, 좋은 말을 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또 하나의 업무로 생각하게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어리바리 첫 유럽배낭여행을 온 나조차도 편하게 즐겁게 젖어들게 하는 그런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게 HR의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며 잠깐의 외유 외전을 마치려고 합니다.

안다박사! 혹시 이 글을 보면 꼭 연락해라!


The End!


- Total HR / 사파 감성 HR 구아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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