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인근에서 바를 하나 더 운영한다. 원래 구인 광고를 낸 곳도 다른 바였다. 가보진 않았지만, 선택하지 않았다. 20대 때 바에서 잠시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이 손님들을 상대하며 술을 따르는 곳일 거라 짐작됐다. 시급은 높지만, 정신적으로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어제부터 일하기 시작한 칵테일바는 비록 몸이 고생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즐거운 곳이다. 고작 하루 출근해서 겨우 4시간 머물렀으나, 새로운 것들을 익힐 수 있었다.
“사장님은 칵테일 몇 개나 알고 계세요?”
“약 500∼600개요.”
“어머, 칵테일 종류가 그렇게나 많아요? 제가 아는 건 조주 기능사 실기에 나오는 39개뿐인데. 어디서, 어떻게 배우신 거예요?”
“예전에 카페에서 일할 때, 바텐더들이 있었거든요. 바텐더들이랑 친해져서, 조금씩 배웠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주먹구구식이었어요. 칵테일은 술에 대해 쭉 공부해야 해요.”
“아마레또를 처음 봐요.”
이와 유사한 술인 디사론노에 대해서도 사장님이 알려주었다. 감기에 걸린 탓에 감각이 둔했지만, 아마레또에서 달짝지근한 향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살구씨를 증류한 술인데, 아몬드가 들어가지 않았으나 아몬드 맛이 난다고 한다.
그는 보드카의 재료는 감자, 막걸리의 재료는 쌀, 진의 재료는 식물이라고 설명했다.
“발효주와 증류주의 차이가 뭔지 알아요?”
“아니오.”
“조주 기능사 필기에 나올 텐데?”
“시험 문제와 답만 열심히 외워서 겨우 합격했는걸요. 다 잊어버렸어요.”
“쌀을 썩혀서 만든 게 막걸리고, 포도를 썩혀서 만든 건 와인이요. 이걸 발효주라고 해요. 발효주를 증류해서 농축시킨 걸 증류주라고 해요. 발효주를 마시면 숙취가 심하고, 증류주를 마시면 숙취가 덜한 건 이런 이유에서예요.”
“아, 일리가 있네요.”
“과학이죠.”
출근 둘째 날은 어제와 달리 손님이 뜸했다. 사장님과 긴 시간 대화했다.
“어제 그 아가씨는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나이 차가 크잖아요.”
사장님이 예전에 운영했던 술집에서 일했던 지인이라고 했다. 그녀로부터 서너 달에 한 번씩 연락이 온다고 했고, 그런 사이가 부담 없어서 좋다고 했다.
사장님은 10년 전에 고등학교 동창과 결혼했다. 아내는 유능한 프로듀서였고, 프로덕션을 차렸다. 사장님은 그녀와 같은 사무실에서 머물며 칵테일바를 운영했는데, 유명인들과 방송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나 보다. 그런데, 문제는 사장님의 자존감이었다. 사람들은 부부를 평가했다.
“나는 나고, 아내는 아내인데, 사람들은 아내 후광 덕분에 묻어가는 남편이라고 보더라고요. 그게 싫었어요. 내 자존감이 망가진 거예요. 자유를 원했고, 아내와 함께 있는 것보다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어요.”
“부인한테 그런 말도 하셨어요?”
사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했어요. 굳이 왜 해요. 지금이 좋아요. 칵테일바가 없어지는 추세지만, 돈 많이 버는 일을 좇기보단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인생이라, 이 얼마나 멋진가? 갑자기 사장님이 달리 보였다. 단순히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아니라, 칵테일을 사랑하는 바텐더의 멋진 모습이랄까. 장인의 혼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