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3일 화요일, 칵테일바로 첫 출근 하는 날이었다. 눈이 펑펑 왔다. 첫눈은 아니었으나, 많은 양이었다. 자동차 위에 소복이 쌓였다.
‘앞이 안 보이네. 길이 미끄러울 텐데 어쩌지.’
집에서 19시에 출발했고, 20시 전에 가게에 여유롭게 도착했다.
“레몬을 얇게 썰어서 말릴 거예요.”
칼질을 능숙하게 하지 못해서, 그만 손가락을 칼에 베이고 말았다. 사장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빨갛게 피가 나오는 셋째 손가락을 꾹 눌러 지혈했다.
첫 손님은 노부부였다. 내부 깊숙한 좌석에 마주 보고 앉았다.
“사장님, 쿠바 리브레는 어떤 맛이에요?”
흰 머리칼의 남편이 질문했다. 익숙한 칵테일 이름이었다. 조주 기능사 실기를 준비하면서 외웠던 터라, 반가웠다. 쿠바 리브레는 하이볼 글라스에 라임 주스나 레몬즙을 넣은 후, 얼음을 채우고 럼을 따른다.
“콜라가 들어가요.”
사장님은 손님에게 다른 칵테일을 추천해주는 듯했다.
기본 안주로 카나페와 젤리를 내갔다.
“이건 직접 만든 치즈예요. 얇게 펴 발라요.”
손에 쥔 과자가 그만 으스러지고 만다. 당황했다. 어렵지 않은 일인데, 처음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서툴다. 크래커에 치즈를 묻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됐어요?”
“너무 조금 발랐네요. 좀 더 발라도 돼요.”
사장님이 바나나, 키위, 오렌지 등을 썰어 치즈 위에 얹었다. 단순하고도 깔끔한 카나페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냉장고에서 마카롱을 꺼내 카나페 옆에 배열하고, 작은 종자에 젤리 혹은 초콜릿을 담아 손님에게 건넨다.
두 번째로 온 남자 둘은 연구원으로 보였다.
“사장님이 알아서 만들어 주세요.”
안경 쓴 남자가 제안했다.
“지난주에 드신 걸로 해드릴까요?”
사장님이 되물었다. 단골인 것 같았다. 사장님은 막대 계피를 불로 지져서 향을 피웠다. 올드 패션드 잔을 뒤집어 잔에 계피 향이 배도록 하고, 그 위에 또 플라스틱 뚜껑을 덮었다.
갓 파더와 프렌치 커넥션은 기주만 다르고 제조법이 비슷하다. 갓 파더의 변형이 바로 프렌치 커넥션이다. 갓 파더는 위스키와 아마레또, 프렌치 커넥션은 프랑스산 브랜디와 아마레또를 섞는다.
사장님은 얼음덩어리를 꺼내 조각냈다. 원형 경기장처럼 생긴 잔에 얼음을 담고 칠링한 후, 프렌치 커넥션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월계수 잎을 띄워 장식했다.
‘와, 마치 경기장에서 달리는 운동선수를 연상케 하는데?’
사장님의 창의력에 감탄을 표했다.
“손님들은 칵테일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원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더 멋있고 분위기가 좋을지 늘 고민하는 편이에요.”
‘이런 게 바로 실무로구나.’
남자 손님들은 나란히 앉아 낮은 목소리로 대화했다. 가끔 마누라라는 단어도 들렸다.
유리창 너머로 함박눈이 펑펑 날렸다. 20대로 보이는 남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몇 분이세요?”
사장님이 물었다.
“일곱 명이요.”
여자가 둘, 남자는 다섯 명이었다.
“너무 시지 않으면서, 달콤한 칵테일 있을까요?”
여자가 질문했다. 사장님이 뭔가 설명하며 추천해주는 듯했는데, 벽 너머에서 대화하는 내용이 잘 안 들렸다.
“너무 시지 않고, 단 게 뭐예요?”
“야생화(Wild flower) 만들었어요.”
버번위스키, 피치 리큐르, 아마레또가 필요하다. 분홍색이었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색감이라고 생각했다.
“섹스 온 더 비치(Sex on the beach)는 어느 분 드릴까요?”
“오오, 저요!”
남자가 대답했다. 섹스 온 더 비치는 보드카, 피치 리큐어, 크랜베리 주스, 오렌지 주스로 만든다. 주로 여성들이 선호한다고 한다.
안주로 피자 한 판이 나갔다.
“여기 얼음 좀 주세요! 그리고, 물도 주세요!”
얼음과 집게를 내가며 손님에게 물었다.
“물은 몇 잔 드릴까요?”
“고맙습니다. 두 잔이요!”
젊은 손님들은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다 자리를 떴다. 얼음이나 물을 엎지른 모양이었는지, 어수선했다. 술에 취해서 벌건 여자 손님의 얼굴에는 즐거움과 호기심이 묻어 있었다.
무리 중 몇 명은 밖에서 끽연 중이었고, 한 명이 카드를 내밀었다. 금액을 보니, 12만 원이었다.
눈 덕분인지, 손님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허름한 옷차림에 검정 모자를 푹 눌러쓴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왔다.
“알아서 해줘.”
이분도 역시 단골인가 보다.
“우리 아들놈이 드디어 결혼해!”
신랑은 48세, 신부는 44세라고 했다.
“신부가 저랑 동갑이네요. 미인이시네.”
모바일 청첩장의 사진을 보며, 사장님이 말했다.
“두 분이 어떻게 만났을까요?”
곁에서 물었다.
“서울에서 만났겠죠.”
어떤 경로로 만난 건지 질문한 건데, 돌아온 답변은 그게 아니었다. 어차피 소개로 만났겠거니 짐작하며, 잠자코 있었다.
“이놈이 한참 어린 여자랑 결혼할 줄 알았는데, 손주는 볼 수 있으려나?”
어르신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아, 며느리한테 그런 거 부담 주면 안 돼요! 요즘엔 40대들도 출산 잘해요.”
30대 여성인 입장에서 사장님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순 없었지만,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 그놈은 아직도 미혼이야.”
듣자 하니, 가수 ○○○의 학창 시절 선생님이었던 모양이었다.
“네? 아직도 결혼 안 했어요? 이혼한 거 아니고요?”
선생님과 좌석 하나 거리를 두고 앉은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둘이 어떤 관계인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대화를 들으니 그냥 지인이었다.
“밥 먹었어?”
“안 먹었어요.”
사장님은 그녀에게 피자 한 판을 대접했다.
“연말인데 남자 친구랑 헤어지다니……. 여자는 서른 넘으면 끝이란 말이에요. 아, 안 돼요. 빚이 많아요.”
가까이 가진 않았지만, 근거리에서 그녀가 하는 말이 다 들렸다. 그녀는 29살이라고 했다.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쭉 자리를 지켰다.
“저는 잠깐 실례.”
그들은 밖에서 나란히 서서 담배를 태웠다. 퇴근 후, 둘이서 술 마시러 가는 모양이었다. 자정이 됐다. 사장님이 내 옷을 내밀었다.
“내일 봐요.”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성공적인 첫 출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