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_시험장에서 생긴 일

by 슈히

2022년 11월 7일 일요일, 9시. 조주 기능사 실기 시험 당일이었다. 일찌감치 시험장에 도착해 여유롭게 수험생 대기실에 당도했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바지를 입고, 검은 앞치마를 둘렀다. 주위를 둘러보니, 고등학생으로 짐작되는 앳된 얼굴들이 보였다.

‘아마도, 요리 전공자들이겠군!’

긴장한 마음을 억누르며, 실기 출제 문제들을 쭉 훑었다. 다 외웠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칵테일이 출제될지 모르니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같은 학원의 수강생 도엽 씨가 수험자 대기실에 입장했다. 반가웠다. 좌불안석인 나와는 달리, 그는 매우 침착해 보였다.

“나와서 수험 번호 뽑으세요.”

감독관이 말했다. 앞 좌석에 앉았던 터라 재빨리 움직였고, 2번을 차지했다. 뒷좌석에 있던 도엽 씨는 한참 후로 순번이 밀려났다.

이윽고 세 명씩 시험장에 입실했다. 수험생들과 마주 보는 감독관석에는 우측에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번호 순서대로 자리에 서서 감독관들을 바라봤다.

실기 준비하며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시험 문제로 정말 내가 바라던 세 가지 칵테일이 출제됐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머, 정말 식은 죽 먹기잖아!’

“빠진 기물이 없는지, 확인해주세요. 앞으로 나와서 살펴봐도 됩니다.”

여자 감독관이 말했다.

수험생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를 살펴봤다.

“얼음통이 없어요.”

3번 수험생이 건의했다.

“아, 준비해 드릴게요.”

시험 진행을 돕는 고사장 도우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출제 문제인 준 벅, 테킬라 선라이즈, 블랙 러시안에 필요한 잔인 콜린스 글라스, 필스너 글라스, 올드 패션드 글라스를 골라 가까이에 놓았다. 유리가 워낙 약하고 깨지기 쉬워서, 조심하며 옮겼다.

잔뜩 긴장해서 정신이 혼미한 나머지, 뭐가 어디에 있는지 도통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술병들을 확인하는데, 준 벅을 만들 때 필요한 미도리(Midori)가 보이지 않았다.

“미도리가 없어요.”

“다른 회사 제품의 멜론 리큐어 있어요. 다시 찾아보세요.”

도우미가 답변했다. 학원에서 연습할 때 사용한 제품은 미도리였는데, 시험장에서는 볼스(Bols)의 제품이 비치돼 있었다.

‘아, 찾았다! 휴, 다행이야. 아, 근데 바나나 리큐어도 안 보이네. 어쩐담…….’

“술병 돌려놔도 되나요?”

3번 수험생이 질문했다. 술병들의 상표는 감독관을 향했는데, 본인이 선택할 술만 방향을 틀어 놓겠다는 뜻이었다. 그럼 술병을 찾는 시간이 단축되므로 수험생에게 훨씬 유리하다.

“아뇨, 그건 안 돼요. 자, 이제 시작할게요.”

여자 감독관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시작하겠습니다.”

감독관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부리나케 손을 씻으러 개수대로 이동했다. 그런데, 1번 수험생은 손을 씻지 않고 바로 술병을 집었다.

‘응? 손을 먼저 씻어야 하는데, 잊었나? 저런, 위생 점수 깎이겠네.’

곁눈질로 훑었다. 내가 본래 자리로 돌아오자, 그제야 1번 수험생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는지 후다닥 손을 씻었다. 그때부터 1번 수험생에게 감독관들의 이목은 집중됐다. 줄곧 매의 눈으로 그 수험생만 유독 주시했다.

‘대회는 득점제, 시험은 감점제라던데. 이 수험생이 또 실수하나 노리고 있군.’

허락된 시간은 단 7분이었다.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블랙 러시안, 테킬라 선라이즈, 준 벅 순으로 만들었다. 만들기 쉬운 것부터 만든 것이다.

올드 패션드 글라스(Old fashioned glass)를 들어 마른행주로 닦았다. 잔이 깨끗한지, 깨지거나 흠집이 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핸들링이라고 한다.

집게로 각얼음 몇 개를 집어 잔에 담고, 바 스푼(Bar Spoon)으로 얼음을 저었다. 이렇게 잔을 차갑게 만드는 과정을 칠링(Chilling)이라고 부른다. 얼음을 버리지 않고, 가만히 둔 채로 다음 과정을 진행한다.

두 손으로 보드카 병을 들어 감독관을 향해 상표를 잠시 보여주고, 뚜껑을 열었다. 왼손으로는 지거(Jigger)를 들고, 오른손으로 병을 기울여 1 온스(Ounce)를 따라 잔에 부었다. 깔루아(Kahlua)는 1/2 온스를 측정해 잔에 쏟았다. 이것을 빌딩(Buliding)이라고 한다. 직접 넣는 기법으로, 칵테일 조주 기법 중 가장 쉬운 방법이다.

병 입구를 행주로 닦는 것도 꼭 잊지 않았다. 이런 과정들을 감독관들이 유심히 보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능숙하게 보이고 싶었다. 감독관들을 힐끗 쳐다보니, 아직도 1번 수험생에게 시선이 고정돼 있었다.

“만든 즉시 이 앞으로 가지고 나와서, 제출하세요.”

감독관이 말했다.

액체를 쏟지 않게 주의하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가 완성작을 선보였다. 요주의 1번 수험생은 침착했고, 심지어 나보다 진행 속도가 빨랐다.

두 번째로 테킬라 선라이즈를 시도했다. 테킬라와 오렌지 주스, 그레나딘 시럽이 필요하다. 먼저 핸들링한 후, 필스너 글라스(Pilsner glass)를 칠링했다. 이번에도 역시 얼음을 버리지 않았다.

테킬라(Tequila) 병을 들어 감독관에게 보이고, 기울여 지거에 술을 따랐다. 용량은 1½온스(oz)이므로 쏟아지지 않게 주의하면서 1온스 한 번, ½온스 한 번 총 두 번에 걸쳐 나눠서 담고 잔에 부었다. 행주로 병 입구를 닦고, 뚜껑을 닫아 원래 자리에 두었다.

오렌지 주스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들어 감독관에게 상표를 보였다. 병 무게가 가벼웠다. 용량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실무에서는 주스를 한 번 흔들어서 바닥에 가라앉은 내용물을 섞어주는 게 좋아요.”

학원 수업 들을 때, 양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시험에서 꼭 필요한 행위는 아니었지만, 일부러 주스 병을 흔들어 침전된 액체를 혼합했다. 능숙하게 보이고 싶었다.

뚜껑을 열었다. 잔의 약 80%를 오렌지 주스로 채우고, 병 입구를 행주로 닦은 후 뚜껑을 닫아 본디 자리에 놓았다. 여기까지는 빌딩이고, 한 가지가 남았다. 플로팅(Floating) 기법이다.

그레나딘 시럽(Grenadine syrup) 병을 찾아 감독관에게 내보인 후, 뚜껑을 열어 지거에 ½온스를 따랐다. 바 스푼을 들어 잔 가장자리에 대고, 지거를 기울여 그레나딘 시럽을 붓는다.

설탕을 함유한 무거운 빨간 액체가 잔의 바닥에 깔린다. 그레나딘 시럽의 빨간색과 오렌지 주스의 노란색은 자연스럽게 층을 형성하는데, 이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주황빛의 일출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칵테일의 이름 또한 일출을 뜻하는 테킬라 선라이즈이다.

두 번째로 완성한 칵테일 잔의 아랫부분을 잡고, 조심스럽게 제출했다.

“잔을 옮길 때, 최대한 밑을 잡으세요. 윗부분을 잡으면 지문이 남을 수도 있고, 손님이 입 대는 부분이 오염될 수 있으니까요.”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회상하며 유의했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아뿔싸!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우측의 1번 수험생은 벌써 마지막 작품을 제출하는 중이었다. 허둥지둥 자리로 돌아와 준 벅을 만들기 시작했다.

큼직하고 튼튼한 콜린스 글라스(Collins glass)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바 스푼으로 저어 칠링했다. 이번에도 역시 얼음을 버리지 않았다. 칠링 후 얼음을 버리는 칵테일도 있는데, 이번 시험에서 출제된 칵테일들은 모두 얼음을 담은 채로 진행하는 작품들이었다.

준 벅의 기법은 쉐이킹(Shaking)이다. 집게로 얼음을 들어 셰이커(Shaker)에 가득 채운다.

준 벅의 재료는 총 5가지이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멜론 리큐어 1온스, 코코넛 럼(Coconut rum) ½온스, 바나나 리큐어 ½온스, 파인애플 주스 2온스, 마지막으로 스위트 앤드 사워 믹스(Sweet&sour mix) 2온스이다.

병을 집어 감독관에게 보이고, 뚜껑을 열어 지거에 따라 용량을 재서 셰이커에 담았다.

바나나 리큐어는 결국 못 찾아서. 못 넣었다. 안타까웠지만 별수 없었다.

마음이 조급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아직 가니쉬(Garnish)가 남았다. 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지면 안 되고, 반드시 기구를 사용해야 한다. 작은 핀셋으로 체리를 이쑤시개에 먼저 꽂고, 파인애플을 고정했다. 완성물을 음료 위에 비스듬히 올려 장식을 마쳤다.

부랴부랴 마지막 작품을 제출했다. 아슬아슬했다. 7초를 남긴 시점이었다. 다른 수험생들은 이미 시험 종료한 후였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늦은 이유는 정석대로 했기 때문이다. 핸들링, 병을 감독관에게 보이기, 행주로 병 입구를 닦고 뚜껑 닫기 등은 수험생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다.

학원에서 연습할 때도 다른 수강생들이 그 과정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고, 나 역시 깜빡 잊은 적이 허다하다. 이 부분이 시험 점수 감점 요인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저 배운 대로 했다.

막판에 감독관들은 꼴찌인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저지른 실수를 목격했을지, 아니면 무심코 지나쳤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정해진 시간 이내에 세 가지 문제를 완성하고, 무리 없이 제출했다.

“본인이 직접 가져가서, 설거지해 주세요. 뒤에 놓인 쟁반 이용하시면 됩니다.”

감독관들은 이미 채점을 마쳤는지, 잔을 치울 것을 지시했다. 수험생들은 그대로 따랐다. 1번 수험생이 내게 물었다.

“술을 그냥 버려요?”

대꾸하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누가 마시기라도 하는가. 버리는 게 당연했다.

1번 수험생이 세척을 마치고 자리를 떴고, 싱크대에는 나만 남겨졌다. 어서 정리를 마치려고 서두르다 그만 잔 하나를 깨뜨리고 말았다. 필스너 잔이 퍽 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기물 파손하면, 실격 아니야?’

이 상황을 양심적으로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했다. 양심을 속일 수 없어서, 솔직히 말하려고 손을 들었다.

“저기요…….”

감독관들은 채점 중이고, 시험 도우미들 셋도 역시 뒷정리를 하느라 분주했다.

“자, 이제 나가주세요! 다음 수험생들 불러주세요.”

아무도 등 떠밀지는 않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굳이 내가 양심선언을 해서 스스로 실격을 자초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지만, 어영부영 상황이 종료됐다.

조주 기능사 실기는 여태 응시했던 국가 자격증 중에 가장 단시간 내에 마친 시험이었다. 20대에 합격한 시각디자인 전공 관련 자격증들은 아무리 짧아도 1시간 이상, 길면 3시간 이상 소요되는 작업 시간이 필요했다.

시험이 끝나서 마음은 홀가분했지만, 한 달이나 불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준 벅 제조 시 바나나 리큐어를 넣지 않은 것과 코스터(Coaster)를 깔지 않고 칵테일을 제출한 것, 그리고 잔을 하나 파손한 게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깨뜨린 잔 변상하라고 하면 어쩌지?’

이제나저제나 혹시라도 그런 연락이 올까 봐, 가슴을 졸였다.

2022년 12월 2일 금요일, 9시. 통영 매물도에 가기 위해 잠을 줄이며 먼 길을 주행했다. 그러나, 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언짢은 기분으로 차 안에 옹송그리고 있었다.

‘후,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재도전해야지. 조주 기능사 실기 합격자 발표 확인이나 해야지.’

점수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76점, 합격!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고득점이라서 기분이 좋았다.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축하받았다. 여행 일정이 틀어져서 기분이 상한 것은 단숨에 사그라졌다.

학원에서 빌린 앞치마를 반납하러 학원에 가서 원장님을 뵀다. 시험장에서 잔을 깬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험 마친 후에 잔이 깨진 건, 상관없지. 안 그래? 시험이 끝났잖아!”

행복한 연말이었다. 이로써, 국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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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5_블랙 러시안.jpg 블랙 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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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0_테킬라 선라이즈_03.jpg 테킬라 선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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