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 없이 혼자 오는 손님은 바텐더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눈다. 사장님은 말수가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그런 이들을 대할 때는 좀 더 말을 거는 편인 듯 보였다. 바텐더의 배려라고나 할까.
늦은 시간이었다. 22시경에 찾아온 한 명은 흰 피부에 안경 쓴 남자였다. 언뜻 봐도 어려 보였다. 사장님에게 질문하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칵테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사장님은 보헤미안을 추천했고, 손님은 승낙했다.
크래커 위에 흰 치즈를 듬뿍 발랐다. 사장님이 직접 만든 치즈이다. 오렌지, 바나나, 방울토마토, 키위 등 과일을 손질해 치즈 위에 올렸다. 카나페가 완성됐다. 여기에 상황에 따라 마카롱, 젤리, 초콜릿 등을 곁들이기도 한다. 사각 접시에 가지런히 배열한 음식을 손님에게 내었다.
그는 표정이 어두웠다. 뭔가 고민 있는 눈치였다.
“연구원이라는 직업이 저한텐 적성에 안 맞아요. 계약 기간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집이 어딘데요?”
내가 물었다.
“남양주요.”
남자가 대답했다. 표정이 복잡 미묘했다. 1년도 아니고, 7개월짜리 계약이라고 했다. 손님은 칵테일 한 잔을 마주하고 꽤 오랜 시간 머물다 갔다.
“늘 지나다니던 길인데, 전부터 여기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이제야 한 번 와봤네요.”
사회 초년생의 상황과 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음료 한 잔의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아마 쉽사리 오지 못했으리라 짐작했다. 비록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지만, 마음으로나마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23시를 훌쩍 넘겨 도착한 손님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안경 쓴 남자였다. 그 역시 혼자였다. 우측에 귀걸이가 눈에 띄었다.
“자정까지 영업하시죠? 빨리 마시고 갈게요.”
남자가 미안한 듯 말했다.
“천천히 있다 가세요.”
사장님이 대답했다.
“알래스카 주세요.”
손님이 주문했다.
알래스카는 마티니의 변형이다. 마티니는 칵테일의 왕으로 불린다.
“냉장고에 그린 올리브 많은 거 봤죠? 그만큼 많이 찾는 칵테일이 마티니예요. 바의 수준을 가늠하고 싶으면, 마티니를 맛보고 알 수 있죠.”
사장님이 말했다.
조주 기능사에는 드라이 마티니(Dry Martini)가 나온다. 마티니는 칵테일 잔에 만드는데, 칵테일 잔을 곧 마티니 잔이라고도 부른다. 그만큼 마티니가 대표적인 칵테일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마티니는 휘젓기 기법으로 만드는데, 이것을 스티어링(Stirring)이라고 한다. 믹싱 글라스(Mixing Glass)에 얼음을 채우고, 드라이 진(Dry Gin) 2온스와 드라이 베르무스(Dry Vermouth) ⅓온스를 넣는다. 바 스푼으로 액체를 잘 젓는다.
스트레이너(strainer)를 믹싱 글라스에 꽂아 얼음을 걸러 내용물만 칵테일 잔에 따른다. 그린 올리브를 올린다.
다시 알래스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드라이 진과 샤르트뢰즈를 혼합한다. 맛을 보니, 내 기준으론 독한 술이었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샤르트뢰즈는 그린과 옐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옐로보다 그린이 도수가 더 높다.
“저 요즘 횟집에서 부업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걸 보니, 단골손님인가 보다.
“디제잉은 어때요?”
사장님이 질문했다.
“한참 재밌어요! 요즘에도 배우는 중이요.”
디제이라고 하니, 그가 사뭇 달라 보였다. 귀걸이도 갑자기 특별해 보였다. 어느덧, 자정이 됐다.
“먼저 퇴근할게요.”
사장님에게 꾸벅 인사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평소 일찍 자는 편이라서, 밤에 근무하는 게 너무 고되다. 반면, 사장님은 올빼미이다. 손님이 늦게까지 있으면, 그는 영업시간을 평소보다 좀 더 연장한다.
“늙으면, 잠이 없어져.”
과연 그럴 날이 내게도 올는지, 모르겠다.
샤르트뢰즈(Chartreuse)
현존하는 리큐어 중 유일하게 천연 재료로 녹색을 낸 리큐어이다. 설탕이 첨가된 리큐르이기 때문에 강한 단맛이 나며, 단맛과 함께 허브 특유의 매운맛과 톡 쏘는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허브 에센스를 쓰지 않고 천연 허브를 침출한 뒤 증류해 제조하기 때문에 와인처럼 병입 후에도 계속 숙성이 진행되는 독특한 술이다. 미개봉 상태로도 숙성이 진행되며 이 때문에 오래 묵은 샤르트뢰즈는 특히 가격이 비싸다. 유럽에는 빈티지 샤르트뢰즈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업체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