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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Apr 16. 2023

벼랑길, 여수 비렁길(2)

전남인과 함께 비렁길을 가다

  토요일에 순천 정원 박람회를 관람 후, 순천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 묵었습니다. 입실 절차를 밟으려고 1층 사무실에 가자, 전라남도 외 지역의 거주자는 현재 숙박비 20,000원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순천시에서 진행하는 행사라고 했습니다.

  "와, 횡재했네요! 좋은 이벤트로군요."

  

  4인실에서 혼자 묵었고, 건넌방에 40대 부산 여성이 한 명 머물렀습니다. 정원 박람회에서 만난 동행과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자, 부산 언니도 자신의 사연을 풀었습니다.

  "10년 전에 결혼해서, 2년 살다가 이혼했어요. 돌싱이예요. 그리고, 5년 연애하고 재혼하게 됐는데, 파혼했어요. 지금은 연애만 하고 있어요."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미혼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대체 뭘까요? 있기는 한 걸까요?"

안타까운 마음에 언니에게 묻자, 언니는 단호히 대답했습니다.

  "없어요, 그런 거! 환상을 버리세요. 남자는 오로지 섹스! 섹스가 목적이에요."

  "......"


  더운 방에서 숙면을 취하고, 예정보다 일찍 숙소를 나섰습니다. 백야도 선착장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동행 D과 합류해 09:10 배를 타고 금오도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보고 말리라!'

함구미 선착장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비렁길 4 코스에 내렸습니다. 5코스부터 역순으로 4, 3을 걸으려고 했으나, 버스 기사님이 조언했습니다. 금오도 가기 며칠 전에 전화로 문의했습니다.

  "비렁길 5는 바다가 안 보여요. 비추천이요. 5, 4, 3코스 모두 가기엔 시간이 부족할 거예요. 4, 3 코스만 가고, 미역널방 가세요. 그럼, 시간 충분해요."

  "고맙습니다!"

  "아가씨가 손님 많이 데려올 줄 알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네요."

  "그러셨어요? 저 지난달에 일곱 명이서 왔다 갔는데요."

  "......"

  "고맙죠?"

  "네, 열심히 살겠습니다!"

기사님이 지인과 순천 정원 박람회에 대한 대화를 하길래, 아는 체했습니다.

  "저, 거기 어제 다녀왔어요!"

  "지금 자랑하는 거예요?"

  "네! 부럽죠?"


  버스에서 내려 비렁길 4, 3코스를 거닐며, 자연을 즐겼습니다. 하늘도, 바다도, 나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한 달 전에 본 비렁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날씨였습니다. 지난번엔 곰탕이어서 언짢았는데,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하늘이었습니다. 기분이 유쾌했습니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어서 더 좋았습니다.


  동행 D는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재취업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평생직장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분명 주말에는 휴무라고 알고 있었는데, 주말에도 근무했어요."

  "아니, 그게 말이 돼요? 그럼, 언제 쉬어요?"

  "쉴 수 있는 날이 없었어요. 결국, 일 년 못 채우고 퇴사했어요. 팔 개월 근무했어요."

  "아, 아깝다...... 일 년 이상 일해야 퇴직금 받을 수 있잖아요. 좀만 더 견디지 그랬어요!"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하지만, 도저히 못 버티겠는걸요."

  "맞아요. 직장 생활 너무 힘들어요. 저도 이십 대 때 회사 다녀봐서, 잘 알아요. 도무지 못 다니겠더라고요!"

  D와 무려 열 살 차이인데, 공감대 형성이 됐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위태로운 절벽에 소나무 한 그루 줄기가 뻗어 있길래, 다가가 휘어잡았습니다. 장난스럽게 손을 뻗어 촬영했습니다. 사진을 단체 대화방에 올리자, S 님이 말했습니다.

  "지금이 기회예요. 나무 잘라요."

  "경치에 집중하시라고 얼굴은 가렸습니다. 집중 잘 되시죠? 타잔 기다리는 중."

S 님이 웃었습니다.

  

  3코스까지 걷고, 직포항에서 버스를 타고 함구미 선착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식당 손님들에게 물어 액자 사진 속 풍경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3월에 미처 보지 못한 절경의 지명은 바로 미역널방이었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20분이면 가요!"



  금오도는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큰 섬으로 섬의 지형이 큰 자라를 닮았다고 하여 금오도(金鼇島)이다. 


금오도는 고종 21년(1884)까지 봉산(封山 왕실의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쓰일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기 위해 민간인의 입주를 금지하였던 산)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며, 태풍으로 소나무들이 쓰러져 봉산의 기능을 잃게 되자 봉산을 해제하여 민간인의 입주를 허용하였다.


마을 주민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이곳까지 지게로 운반하여 미역을 널었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 여수 금오도 비렁길 안내문.



  키 작은 자줏빛 꽃이 빽빽이 핀 광경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머, 예쁘다!"

앙증맞은 꽃송이들이 마치 잔디처럼 빼곡하고 빈틈없이 모여 있습니다. 그 위에 단행본을 가지런히 올리고, 촬영했습니다. 마치 융단 위에 놓인 것처럼, 단정해서 보기 좋았습니다. 꽃잔디라고도 부르는 지면 패랭이라는 꽃이었습니다.


  미역널방까지는 정말 순식간에 도착했고, 시간을 보니 아직 배를 타려면 한참 여유가 남았습니다. 이대로 선착장으로 하산하기엔 너무 아쉬웠습니다.

  "어제 무리했더니, 오늘 좀 힘드네요. 다리가 아파요. 그래도, 시간이 많으니 한 바퀴 돌까요? 어때요?"

  "전 괜찮아요. 가시죠!"

동행 D는 다행히 군말 없이 따랐습니다.


  노랑 집이 한 채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설명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확신을 갖고 천천히 걷자, 함구미 선착장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어? 어디로 내려왔어요?"

아까 미역널방에서 마주친 등산객이 놀랐습니다.

  "한 바퀴 빙 돌았어요. 나오는 길이 있더라고요."


  선착장에서 의자에 앉아 쉬고 있자니, 고양이 똘이가 살금살금 다가왔습니다. 2월에 처음 만났을 땐 작고 귀여웠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자랐습니다.

  "너 많이 컸구나? 이야, 늠름하다!"

반가워서 안고, 쓰다듬었습니다. 똘이는 기억을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표정은 그저 냉랭하기만 했습니다. 똘이에게 과자를 주니, 냉큼 잘 받아먹었습니다.


  배를 타고 무사히 육지로 돌아왔습니다. 순천 맛집에서 도토리 전과 묵, 수제비로 석식을 맛있게 먹고 해산했습니다. 2월, 3월, 4월 이렇게 여수 금오도를 무려 세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여수에 갈 일이 남았습니다.


지면패랭이(꽃잔디). 정말 잔디 같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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