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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n 04. 2023

세종 원수산(251m)

  삼 일간의 연휴 내내 비가 와서, 지루했습니다. 5월의 연휴 마지막날이었습니다. 청주인, 세종인과 함께 세종 원수산에 올랐습니다. 이곳은 블랙야크 인증지도, 국립공원 인증지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선순위는 아니었지만, 그간 추천받은 적이 있는 산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집결해 등산로에 진입하자, 아카시아꽃이 두 팔 벌려 반겼습니다. 향기로웠습니다.

  "이거 아카시아꽃 맞죠? 맞나?"

  "그런 것 같아요."

더 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꽃에 무관심한 남자들과 함께라서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주인은 두 살 터울 오빠였는데, 잘 웃는 편이었습니다.

  "미인이네요."

  "고맙습니다!"

대화하다 알게 된 그의 사연은 가슴 아팠습니다.

  "얼마 전에 여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결혼하려고 생각했는데, 사소한 일로 자꾸 싸웠어요."

  "어떤 일로요?"

  "현관문을 제대로 안 닫는다고 구박하더라고요."

  "그럼, 잘 닫으면 되는 일 아닌가요?"

  "애정이 식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전 여자 친구가 명품을 너무 밝혔어요."

  "사치스러운 배우자는 부담스럽긴 하죠."  


  산 높이가 낮길래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초반부터 꽤 힘이 들었습니다.

  "해발 이백 미터 아니고, 천 이백 미터 같네요!"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가빴습니다.

  어느새 정상에 닿았습니다. 흐릿한 하늘 아래 빽빽한 아파트 단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등산한 길이 가팔라서,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 맞은편으로 하산했습니다. 하산길은 수월했습니다.

  "그 남자가 나한테 묻더라고, 어버이날 선물로 부모님께 뭐 해드리면 좋겠냐고.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 '며느리랑 손주'라고."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세종인이 참견했습니다.

  "너, 질리는 타입이구나?!"

민망해서, 그를 툭 쳤습니다.

  "내가 며느리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게 뭐 어때서?"

한편으론, 여태껏 그의 입에서 들은 말 중 가장 재치 있는 대사이긴 했습니다.


  마주친 등산객들에게 재차 질문했습니다.

  "여기로 내려가면, 주차장 나오나요?"

세종인이 지도를 보더니, 길을 잘못 든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주차장까지 택시 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예기치 않은 지출이 생기는 건 영 달갑지 않았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진 모르지만, 주차장에 순조롭게 도착했습니다.


  맛집에서 순번을 기다리느라 지루했고, 시장했지만 맛있게 식사했습니다. 나물이 고소해서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부지깽이라고 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쓰는 막대기를 떠올렸습니다.

  청주인은 작별을 고했고, 세종인과 둘이 카페에 들렀습니다. 그가 후식을 샀습니다. 자신이 사는 도시에 온 손님을 대접한 건지, 혹은 내가 주행한 차를 얻어 타서 그런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습니다. 평화롭고, 잔잔한 휴일이 흘러갔습니다.



아카시아꽃
만나밀 베이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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