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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May 29. 2023

[태안] 청산 수목원

계절의 여왕, 오월에 피는 꽃

슈히: 응, 안녕?

B: 안녕(웃음).

슈히: (애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뭐 하고 있어?

B: 미용실, 헬스장 갔다 저녁에 나가려고.

슈히: 동행은 회 뜨러 가야 된대. 수목원 하나 더 있거든? 거긴 혼자 가려고.

B: 어제부터 갔나?

슈히: 아니, 오늘부터. 비 오고, 궂은 날씨에 돌아다녔어.

B: 고생했어.

슈히: 혼자 다니려니, 눈앞이 캄캄하군.

B: 언제까지 숙소 들어가는데?

슈히: 두 시까지 가려고.

B: 어디야?

슈히: 차 안이야.

B: 숙소?

슈히: 응, 여기 일박 이일이거든.

B: 내일 퇴실이야? 사람들 몇 명이야?

슈히: 나까지 아홉 명이었던 것 같은데.

B: 오랜만에 술 한잔 하겠네.

슈히: 아, 술 안 마시고 싶은데? 술은 맛이 없어. 아무튼, 내가 수목원 좋아하거든! 등나무가 예쁘네. 아까 사진 보내준 건, 불두화야.

B: 우리나라 식물이야?

슈히: 원산지는 모르겠고, 부처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두화야. 수국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수국은 유월에 피거든? 불두화는 오월에 펴.

B: 나, 밥 먹으려고.

슈히: 그래, 맛있게 먹어!

B: 점심 맛있게 먹어요.

슈히: 나 빵 먹었어.

B: 저녁에 맛있는 거 먹어요.

슈히: 회도 먹고, 고기고 먹을 거야. 네가 좋아하는 거. 

B: 그래요.

슈히: 안녕!

B: 안녕.


  청산 수목원 역시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라서, 입장료가 비싼 편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눈에 띈 녹색 잎사귀와 홍가시나무의 적색을 보자, 문득 신호등이 떠올랐습니다. 한편, 성질 급한 분홍색 연꽃이 홀로 연못에 두둥실 떠있었습니다.

  '연꽃은 보통 칠월에 피는데, 얜 벌써 폈네? 제멋대로네!'

  연보랏빛의 작은 꽃송이가 빽빽이 모인 모습이 단정해 보였습니다. 백리향이라는 꽃인데,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향기가 백리까지 간답니다. 애석하게도, 향기는 전혀 못 느꼈습니다. 식물의 키가 워낙 작은 탓입니다. 그야말로, 땅에 납작 붙어 있었습니다. 비가 와서 진흙탕이었고, 바닥에 엎드려서까지 향을 맡아볼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고개를 아래로 늘어뜨린 자주색 꽃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우아하다! 처음 보는 꽃이네. 이름이 뭘까?' 

나중에 알고 보니 겹매발톱이라는 꽃이었습니다. 꽃말은 '버려진 애인'이랍니다. 왠지 남일 같지 않습니다. 한없이 감정 몰입했습니다.

  '예쁜 꽃인데, 꽃말이 너무하네. 속상하게!'

겹매발톱 옆에는 작약 꽃봉오리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작약인 것도 몰랐으나, 인터넷 검색 후 알게 됐습니다. 겹매발톱과 작약은 꽃봉오리부터 모양이 다르고, 잎사귀 모양도 역시 전혀 다르게 생겼습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어. 자세히 보면, 분명히 차이가 있구나!'

  금낭화도 탐스러웠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마치 백제 시대의 귀걸이를 연상케 했습니다.

  '귀여워!'

  큰 이파리에 빗물을 잔뜩 머금은 둥굴레는 차로 마시는 바로 그 식물이었습니다. 줄기 겨드랑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옹기종기 모인 곤충 같았습니다.

  '이게 둥굴레차의 원료라고? 우와, 신기해! 이런 앙증맞은 꽃이 필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어.'

둥굴레의 향기와 고소한 맛을 잠시 떠올렸습니다.

  산수국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키가 별당나무가 속에서 순결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처럼 소박하고도 다소곳했습니다. 중앙이 유성화, 가장자리가 무성화입니다. 암술, 수술이 없는 무성화로 벌과 나비를 유인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신비로운 보랏빛의 수레국화,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새우 난초, 산에서 흔히 봤던 층층나무, 언뜻 보면 찔레꽃과 비슷한 큰 꽃으아리(클레마티스), 장미의 사촌 격인 해당화, 염색한 머리칼 같은 호스타 비비추 등 개성 있는 식물들이 가득했습니다. 

  엄마 돼지에게 달려들어 젖을 빠는 새끼 돼지들의 조형물이 보였습니다. 조형물이지만, 단란해 보여서 보기 좋았습니다.

  '너희들은 가족이구나. 좋은 곳에서, 난 혼자네. 아, 외로워!'

  미로에서 잠시 헤매다, 금방 밖으로 나왔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길을 잃고 헤매는 나은 편이지만, 혼자 방황하는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젊은 남녀가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렸습니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만, 얼굴을 마주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홍가시나무가 울창한 공간에 우산이 펼쳐진 채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기념 촬영하는 곳이었습니다.

  '와, 예쁘겠다! 연인과 촬영할 기회가 과연 있으려나, 몰라.' 

그 밖에 태안의 명소에 대한 소개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꽃지 해수욕장, 나문재 관광농원, 신두리 해안사구, 안면도 자연 휴양림, 옹도 등대, 천리포 수목원, 팜카밀레 허브 농원, 청산 수목원 등 총 여덟 곳이었습니다. 이 중 다섯 군데는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태안에 좋은 곳이 참 많구나!'

  후문으로 나가기 직전, '흥망성쇠의 역사적 교훈 감계'라고 쓰인 비석과 흙에 파묻힌 기와들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아마도, 전에 땅에서 살다 간 이의 흔적인가 봅니다.

  '생뚱맞고, 을씨년스럽네. 이런 게 여기 왜 있담......?'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자, '알림. 여기는 후문입니다. 관람객은 정문(매표소)을 통해 입장해 주세요. CCTV 작동 중.'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후문으로 입장하는 손님이 과연 있으려나 몰라. 역순으로 관람하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꼼수네. 미리 알았더라면 후문으로 들어가는 건데. 아깝다!'

  청산 수목원은 오늘 방문한 태안의 수목원 중 가장 작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난생처음 접하는 신기한 식물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홀로 외롭게 걷느라 쓸쓸했지만,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겹매발톱(버림받은 애인)
금낭화(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둥굴레_고귀한 봉사
백리향(용기)
별당나무(진심)
새우 난초(미덕, 겸허, 성실)
수레국화(행복)
작약 꽃봉오리(수줍음)
층층나무(인내력)
큰 꽃으아리(클레마티스)_아름다운 마음
해당화(열정적인 사랑)
호스타비비추_하늘이 내린 인연_좋은 소식_ 신비한 사람(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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