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만 했더라면(1)

피고의 연락

by 슈히

오전 아홉 시 사십 분경, 장문의 문자가 한 통 왔다.


신종: 소송장 잘 봤습니다. 그냥 백만 원에 합의하고, 깔끔하게 끝내고 싶네요. 동의하시면, 바로 입금

해 드릴게요.


2주 후에 열릴 첫 변론기일에 법원에서 볼 예정인 피고였다. 의외였다.

'이렇게 쉽게 합의할 거였어? 작년에 사과했음, 여기까지 안 오잖아!'

합의도 좋지만, 중요한 게 하나 빠졌다. 문자로 답장을 보냈다.


슈히: 사과는 안 하세요?

신종: 네, 미안합니다.


상대는 순순히 대답했다.


슈히: 전화 좀 해주세요.


잠시 후, 피고와 통화할 수 있었다.


슈히: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가 뭐예요?

신종: 질질 끌어봤자, 서로 힘만 빠질 테니까요. 잘못 인정할게요. 소송하는 게 의미 없는 것 같아요.

슈히: 재판하기도 전에 지쳐서, 합의하자는 거예요?

신종: 아니죠. 제가 잘못 인정한다고요. 사과드리려고, 연락한 거예요.

슈히: 아니, 그 사과를 작년 팔 월에 했으면 소송을 걸지도 않고......

신종: 그땐 몰랐으니까, 그렇게 한 거고.

슈히: 뭘 몰라요?

신종: 이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슈히: 중요한 거죠!

신종: 사과했으니, 그냥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슈히: 아, 그러니까 내 말은 작년 팔 월에 사과를 하지 그랬냐는 거죠.

신종: 이유는 말씀드리고 싶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슈히: 패소할까 봐 그런 거 아니에요?

신종: 민사 소송하면 시간 들지, 돈 들지, 힘 낭비 되지......

슈히: 난 내 인맥 다 잃었잖아요. 지유 언니, 허니 오빠, 재인 씨. 다 등졌어요. 재인 씨만 유

일하게 내 편 들어줬어요. 알아요?

신종: 서로 힘드니까, 소송하지 말고 합의해요.

슈히: 이렇게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합의하자니까, 좀 놀랍네요?

신종: 감정 싸움하자는 게 아니라, 잘못을 인정한 거예요.

슈히: 저야 좋죠. 합의해야죠, 당연히.

신종: 그럼, 계좌번호 보내주세요.

슈히: 생각해 볼게요. 수고하세요.

신종: 예.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전화해 상황을 알렸다.


상담원: 돈 먼저 받고, 합의서를 작성해야죠. 상대의 뭘 믿고 합의서부터 줍니까?

슈히: 아, 만나서요? 저는 안 만나고 싶은데...... 저는 여자고, 상대는 남자예요. 단 둘이 만나면 위협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상담원: 아, 그래요? 원래 합의는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서로 믿을 수 없으니까요.

슈히: 그냥, 재판하는 게 나을까요?

상담원: 입금 먼저 하면, 합의서 준다고 하세요.

슈히: 그럼, 합의서에는 뭐라고 쓰면 되나요?

상담원: 상대에게 쓰라고 하세요. 확인 후에, 서명하면 돼요.

슈히: 피고도 절차를 잘 모르는 거네요?

상담원: 합의서는 누가 쓰든 무관해요. 상대가 원하는 합의서 수준에 맞춰 주겠다고 하세요.

슈히: 그렇게 할게요. 고맙습니다!


피고에게 연락했다.


슈히: 직접 만나서 현장 거래하길 원합니다.

신종: 코로나도 걸렸고, 일이 바빠서 대면하기 힘들어요. 비대면 합의 부탁드립니다.

슈히: 그럼, 이메일로 합의서 보내 주세요.


서로 신뢰가 없기 때문에, 한편으론 불안했지만 합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피고가 합의서를 먼저 보내라고 요구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상담원 선생님이 조언한 대로 침착하게 대응했다.


슈히: 김신종 씨 뭘 믿고, 합의서를 보냅니까? 합의금 먼저 받고 합의서 보내는 게 순서죠. 그러게 현

장 거래하자고 했잖아요. 그냥 법원에서 만나는 것도 좋겠네요.

신종: 내일까지 입금할게요. 입금 확인 후, 합의서 보내 주세요.


반신반의하며 기다렸다. 다음날, 피고는 약속을 지켰다. 이렇게 간단히 합의했다. 한 시름 덜었다. 이 사건의 시작은 작년 여름, 무더웠던 광복절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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