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십삼년, 한국관광공사에서 추천한 관광 명소에는 인천 백령도가 있었다. 최서북단이라서 북한과 인접한 지역이며, 워낙 멀어서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곳이었다.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가기 싫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혼자라도 용감히 가야만 했다. 동행이 없다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면, 아무런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운사에 문의하니, 백령도와 대청도는 경유할 수 있는 섬이었다. 바쁜 와중에, 없는 시간을 탈탈 털어 인천으로 향했다. 이천이십삼년 오월 십일, 수요일이었다.
인천 연안 여객선 터미널에서 열두 시 삼십 분 배를 타고 백령도로 출발했다. 오전에 출발하는 배도 있었으나, 이번 인증은 등산이 아니기에 일부러 느긋하게 오후 배를 탔다. 여유로웠다. 최북단백령도비를 인증하고, 해변을 산책할 계획이었다.
기나긴 항해 중 혹시 뱃멀미하면 어쩌나, 걱정됐지만 다행히 바닷길은 잔잔했다. 배는 무사히 백령도에 도착했다. 오후 다섯 시였다.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착했어요!”
“앞으로 쭉 걸어 나오세요. 마중 나왔어요.”
코뿔소를 연상케 하는 우직한 검은색 차를 탄 그녀의 첫인상은 다소 무뚝뚝하고, 차가우며, 강인해 보였다. 차를 타고, 민박집으로 이동했다.
“최북단백령도비, 콩돌 해변 가려는데 쉽게 찾아갈 수 있을까요?”
“백령도비는 걸어갈 만한데, 콩돌 해변까지는 꽤 멀어요.”
“그래도, 둘 다 가보려고요. 다시 오기 힘든 곳이니까요.”
민박집에 도착했다. 똑같이 생긴 작은 집이 여러 개 늘어서 있고, 그중 하나가 내 숙소였다. 가방의 짐들을 꺼내 방에 내려놓고, 생수와 음료만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직원과 초상권에 대해 유선상으로 상담했다.
“산악회에서 산행할 때 회원들과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게시했어요. 그런데, 초상권 침해라는 의견이 있어서, 갈등이 생겼어요. 물론, 본인은 불쾌할 수 있죠. 하지만, 선글라스나 마스크를 써서 이목구비가 가려진 사진을 올렸거든요. 인터넷 검색하니, 초상권이라는 법은 아예 없다던데요? 누구 말이 맞는 건가요?”
“법률 규정은 없어요. 헌법 십 조에 의해서, 개인의 인격권이 초상권으로 인정되는 거죠.”
“상대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요?”
“아뇨, 얼굴을 가려서 본인 파악이 불분명한 사진으로는 소송 불가능해요. 만약 얼굴이 뚜렷이 나온 사진이라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죠.”
지난 사월 일일, 단행본 <저 등산 안 좋아하는데요?>를 소장한 회원 두 명과 창원 천주산에서 처음 만났다. 작가와 독자가 만난 자리이니, 소위 말하자면 팬 미팅이었다.
진달래가 절정이었고, 회식에서 먹은 주꾸미도 맛있었다. 그런데, 이 두 명을 제외한 다른 회원들은 '팬 미팅'이라는 표현이 언짢았나 보다.
또, 아무리 얼굴을 부분적으로 가린 사진이라도 자신의 모습이 인터넷에 공유되는 것이 불쾌했을 수 있다. 그런데, 의아했다.
‘게시글에서 본인 사진을 아예 삭제하라고, 자기가 직접 내게 말하면 되는 일 아닌가?’
자신의 존재를 익명으로 남기고 싶어서 운영진들에게 대신 말을 전해 달라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소한 일을 문제화시킨 게 못마땅했다.
게시글을 모두 삭제하고 자진 탈퇴하려고 했으나, 결국 강제 퇴장됐다. 이로써, 게시글에 올린 회원들의 사진은 삭제할 필요가 없게 됐다. 제 발로 나간 게 아니라, 쫓겨났으니 굳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백령도 사곶 해변
일반적으로 사람이 해변의 모래사장을 걸을 때 발이 모래에 푹푹 빠져서, 걷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곳은 차가 다닐 정도로 바닥이 단단하다.
이곳은 모래 알갱이의 크기가 매우 작고 비교적 크기가 비슷하다. 바닷물이 모래 사이사이에 채워져 공간이 없는 만큼, 모래 위에서 누르는 힘을 잘 견디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이곳에서 군용 비행기가 뜨고 내린 적이 있으며, 현재도 국제 민간항공 기구에 천연비행장으로 등록되어 있다. - 백령·대청 지질공원 안내문.
사곶 사빈(천연 비행장)
사빈이란 모래가 평평하고 넓게 퇴적된 해안의 지형을 말한다. 백령도 사곶 사빈은 특수한 지형과 지질학적 특성을 지녀 세계 유일의 천연비행장으로 쓰인다.
이곳은 언뜻 보면 모래로 이루어진 듯하나, 사실은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여 이루어진 해안이다. 썰물 때에는 거의 수평에 가깝게 길이 약 이 킬로미터, 폭 약 이백 미터의 사빈이 나타난다. 사빈을 이루는 모래는 크기가 매우 작고 사이의 틈이 촘촘하여 매우 단단한 모래층을 형성하고 있다. 백령도 사곶 사빈은 바닥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여 경비행기, 헬리콥터, 군 수송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다.
실제 육·이오 전쟁 때 천연비행장으로 활용되어 군 작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현재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차량 통행이 제한되고 있다. - 백령·대청 지질공원 안내문.
푸른 하늘 아래, 그보다 더 파란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 해변이 나타났다.
‘와, 시원해!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
그때, 빨간색 자동차가 한 대 나타났다. 청색과 대조적인 적색이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한 편의 광고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경쾌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저 멀리 좌측에는 백령도라는 큰 글씨가 보였다. 몇 분 전에 머물렀던 선착장이었다.
사곶 해변은 꽤 유명한 모양이었다. 인천 백령도에 왔다는 소식을 단체 대화방에 전하자, 어떤 이가 사곶 해변을 언급했다. 그는 백령도에 온 적은 없는 듯 보였는데, 사곶 해변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난 오기 전엔 전혀 몰랐는데!’
또, 백령도 냉면도 유명한가 보다. 여러 사람이 모인 단체 대화방은 정보를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어서, 유익하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방향이 맞나?’
줄곧 의심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평일 오후라서, 인적이 없고 매우 한산했다. 휴대전화의 내비게이션으로 백령대교를 검색해 찾아갔다. 길고도 지루한 아스팔트를 홀로 걸었다.
마침내, 서해최북단백령도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바로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 섬&산 인증지였다. 혼자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훈련 중인 해병대원들이 열댓 명 달려왔다. 그들 중 한 명에게 부탁했다.
“사진 좀 찍어줄래요?”
다음 목적지인 콩돌 해변을 향해 천천히 걷는데, 달리는 해병대원들이 곧 앞섰다. 남자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체격이 작고 가녀린 여자도 한 명 끼어 있었다. 빨간색 훈련복을 입었는데, 난색이라서 훨씬 무더워 보였다.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생존하려면, 굉장히 힘들겠다! 날도 더운데 뛰다니, 고생이 많네……. 아, 안쓰러워!’
콩돌 해변까지 꽤 멀었다. 마침내 도착했을 땐, 숨이 턱턱 막혔다. 동글동글한 예쁜 자갈들이 해변에 가득했다. 제주 우도의 서빈백사를 연상케 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벌컥벌컥 음료를 들이켰다. 무리했는지, 골반이 욱신거렸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콩돌 해변은 노을 명소라고 알고 있었지만, 일몰까지 지켜볼 순 없었다.
부지런히 걷지 않으면, 석식 때를 놓치고 말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왔던 길을 서둘러 되돌아갔다.
분명 갔던 길을 그대로 돌아왔으나, 숙소 인근에서 잠시 길을 헤맸다. 어느 친절한 도민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식당에 들어갔다. 허겁지겁 음식을 삼켰다. 모녀가 식당과 민박집을 운영했다.
“백령도 메밀 맛있어요? 아까 지나오면서 식당 간판은 봤는데, 궁금하네요.”
“특별한 건 없어요. 난 그냥 그렇던데. 어차피 거긴 점심 장사만 해요.”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그래요? 아쉽네요. 내일 아침 일찍 대청도행이라서요. 혹시 이 근처에 편의점이나 마트 있나요?”
“인근엔 없어요. 뭐 필요해요?”
“내일 대청도에서 등산할 예정인데, 간식이 필요해서요. 대청도에 편의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른 아침이라서 개점하기 전일 것 같아서요.”
“마트까지 태워 줄게요.”
“고맙습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밤이 찾아오자, 백령도 기온은 현저히 낮아졌다. 일교차가 컸다. 과연 북쪽이라서, 꽤 추웠다. 아주머니가 운전하는 크고 튼튼한 차를 타고, 마트에 다녀왔다.
오십 대의 그녀는 무뚝뚝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꽤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힘들었던 과거와 가족에 대한 사연을 초면인 삼십 대 여자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대감이 느껴졌다.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은 내 또래였다.
“사람은 자고로, 부지런해야 해. 내가 힘들어도 식당, 민박집 운영하는 이유는 단 하나야. 아들한테 물려주고 싶어서. 물론, 아들이 게을러질까 봐 유산 한 푼 안 남길 거라고 늘 말했지만.”
다음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독서했다. 너무 졸렸지만, 괴로움을 견뎠다. 외출 채비를 마치고, 여섯 시에 식당에 갔다. 인부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제일 먼저 식사할 수 있었다.
“아가씨는 배 타야 하니까, 먼저 먹어요.”
육십 대 이상 돼 보이는 남자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며 식사했다.
“아가씨, 선착장까지 어떻게 가요?”
한 어르신이 묻자, 아주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내가 차 태워 줄 거예요. 왜요, 대신 운전해 주려고요?”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선착장으로 출발했다. 아주머니가 두유 하나를 건넸다.
“줄 건 없고, 이거 산에서 마셔.”
“고맙습니다!”
몇 분 뒤, 선착장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드릴 건 없고, 이거 드세요.”
어제 마트에서 산 간식 중 하나를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이따 먹을 간식을 날 주면, 어떻게 해?”
“여러 개 있어요.”
짧은 시간이나마, 정이 들었는지 헤어질 때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섬은 고립된 공간이기에, 외부인이 찾아오면 반가움이 증폭되나 보다. 육지인은 섬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또 다른 섬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