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로 인해 대연평도 배가 결항 됐다. 울화통이 터졌지만, 인간의 힘으로 날씨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천 수목원을 둘러보고, 오후 일찌감치 숙소에 입실했다.
감기 몸살 때문에 고단했다. 광명시에 거주하는 지인으로부터 밴댕이를 대접하겠다는 연락이 왔으나,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끼니도 거른 채,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 해운사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출항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여덟 시 배를 타고, 대연평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버스가 한 대 보였다. 원래 목적지까지 걸어갈 요량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안보 교육장, 가나요?”
버스 기사에게 질문했다.
“네, 갑니다.”
사십 대로 보이는 남성이 대답했다.
“안내 방송이 나오나요?”
“아뇨, 안 나와요. 제가 알려 드릴게요.”
잠시 후, 기사의 안내에 따라 하차했다.
조금 걷다 보니, 안보 교육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 쓰러져가는 건물이 옆에 있었는데, 분위기가 스산했다. 처음엔 의아했다.
‘이런 게 왜 방치된 거지? 보기 싫게…….’
실내에 들어서니, 안보 교육장은 무인으로 운영 중이었다. 전시물을 훑고, 영상도 감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까 본 폐건물은 바로 폭격의 상흔이라는 것을.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모두 북한 황해남도와 인접한 섬이다. 백령도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이 있었고, 대청해전, 두 차례의 연평해전이 터졌다.
북방한계선
북방한계선은 천구백오십삼년 팔월 삼십일, 유엔군 사령부가 정전협정 체결 직후 남북 간의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서해 다섯 섬)를 따라 그은 해안 경계선이다.
천구백오십삼년 칠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군과 북한군은 지상에 대해서는 양측 대치 지점에 군사분계선을 합의했으나 해상경계선을 어디로 정할지는 합의하지 못했다.
특히 서해의 경구 국군이 육·이오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 끝에 확보한 ‘서해 다섯 섬’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양측이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유엔군은 서해 다섯 섬과 북한 측 육지 중간을, 북한은 육지의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해상경계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회담이 결렬됐다.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는 동·서해에서 우리 측 해군 및 공군의 초계활동을 한정하는 북방한계선을 설정했다. 서해 북방한계선은 삼 해리 연해를 다섯 개 도서와 북한 지역의 개략적인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 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열두 개 좌표를 연결하여 설정된 선이다.
서해 다섯 개 도서와 북방한계선 인근 수역은 위치상 삼·팔도선 이남으로 육·이오 전쟁 발발 이전과 전쟁 기간은 물론 천구백오십삼년 칠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에도 우리 측이 관할했다.
따라서, 당시 한반도 주변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유엔군과 한국군 해·공군력의 초계활동 범위를 한정하는 북방한계선을 통해 남북한 무력충돌을 예방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은 북방한계선이 설정된 이후 천구백칠십삼년까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이를 인정·준수해 왔다. 그러나, 천구백칠십삼년 북방한계선을 대규모로 침범한 이른바 ‘서해사태’를 일으켰다. 이후, 북한은 "유엔군 측이 서해 다섯 섬을 관할하나, 그 주변 수역은 북한의 연해, 관할 수역, 영해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북방한계선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남·북한은 천구백구십이년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한 구역으로 한다.”라고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두 건의 연평해전, 대청해전 등 무력도발을 지속했다.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서해 다섯 섬 주변 수역을 북한 측 영해라고 억지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 인천 대연평도 안보 교육장 안내문.
이런 큰 사건을 까맣게 몰랐다. 관람을 마친 후, 밖으로 나와 허물어진 건물을 자세히 살폈다. 지붕이 내려앉고, 무너진 담벼락에는 그을린 자국이 남았다.
‘세상에, 도민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여기서 살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 다들 육지로 피난 갔겠네!’
안보 교육장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용변을 보기 위해 마땅한 장소를 찾던 중, 체육관이 눈에 띄었다.
“여기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어, 아까 버스 기사님?”
그곳에서 낯익은 이를 만났다. 그가 고개를 까딱이며, 가볍게 인사했다. 넓은 어깨와 다부진 몸매에 시선이 쏠렸다.
‘어라, 아깐 몰랐는데……. 근육질 몸매잖아?’
화장실만 다녀와서, 체육관을 나가려는데 육십 대 남성이 말을 걸었다.
“혹시, 의사 선생님이세요?”
“네? 아니요. 의사가 운동복 차림으로 일하러 오겠어요?”
“선생님들도 대부분 편한 복장으로 오셔서, 옷을 갈아입으시더라고요. 흰 가운 하나만 걸치면 되니까요. 오늘 오실 예정인 의사이신가 했어요.”
“아, 아니에요.”
의사로 보였다니, 엉뚱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인근 식당에서 식사했다. 김밥을 맛있게 먹었는데,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이물질을 발견했다.
“여기 머리카락 있는데요…….”
“어머, 그게 왜 거깄지?”
“괜찮아요. 계산할게요.”
“돈 안 받을게요. 그냥 가세요.”
결국, 식당 아주머니는 사과하지 않았다. 어색하게 자리에서 뭉기적뭉기적 일어났다. 뜻하지 않은 공짜 밥이었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배는 오후 세 시 삼십 분이었다. 아직 한참 여유가 남았다. 전망대로 향했다. 아까 체육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버스 기사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어, 또 뵙네요.”
반가워서, 먼저 아는 체를 했습니다.
“이따 배 타고, 인천으로 나갈 거죠?”
“네.”
“두 시 삼십 분경에 이 도로에 서 있으면, 버스 지나가요. 그냥 아무 데나 서 있어도, 버스 탈 수 있어요. 알았죠?”
“네, 알겠어요.”
정자에 올랐다. 바다와 다리가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색색의 지붕들이 모여 있었다.
‘폭격 이후 도민들이 집을 수리하고, 마을을 새 단장하느라 꽤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이 들었겠네.’
인조 잔디가 깔린 드넓은 운동장에서는 해병대원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곧 축구 경기를 시작했다.
책을 펼쳤다.
花落花開又一年
人生幾見月常圓
꽃이 피고 지기 또 한해
평생에 몇 번이나 둥근달 볼까
달이라는 단어를 접하니, 빛날과 통화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빛날: 전남 모임을 누나가 왜 가입했대? 전남인도 아닌데?
슈히: 나, 동행이 필요해서.
빛날: 동행은 나 있잖아.
슈히: 내가 숙박비 아낀다고 재워 달라고 했는데, 재워 주지도 않고!
빛날: 내가 집에 없는데, 어떡해.
슈히: 치, 아무것도 안 훔쳐 갈게!
빛날: 토요일엔 정원 박람회 누구랑 가?
슈히: 한타 님.
빛날: 일요일엔 누구랑 가?
슈히: 토요일에도 둘이고, 일요일에도 둘인데?
빛날: 그래? 좋은 데이트 되겠구먼.
슈히: 데이트 이제 그만하고 싶어.
빛날: 이십 대 남자라고 좋아하더니?
슈히: 그거야, 농담이지. 너도 나한테 전남 여성 만날 때 좀 부르라고, 그랬잖아!(웃음)
빛날: 오늘 보름달이네?
그땐 뜬금없이 그가 웬 보름달 타령인가 했는데, 지금은 달이라는 글자만 봐도 마음이 먹먹하다.
‘정말 중증이네. 앉으나 서나, 그대 생각.’
빨간 옷을 입은 해병대원들이 운동장을 힘차게 누비고 있었다.
‘해군 아니고 해병대만 봐도, 어딜 가나 네 생각.’
선착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가는 도중, 나무 사이로 운동장 벽이 무심코 보였다.
‘응? 왜 저래?’
가까이 다가가 살피니, 벽이 뜯겨서 철골이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섬뜩했다. 이것 또한 폭격의 잔재였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적 포탄 낙탄 장소
이천십년 십일월 이십삼 일 오후 두 시 삼십 분경, 북한군은 해안포와 백이십이 밀리미터 방사포(백오십여 발)로 연평도를 기습 공격했다. 그러나, 해병대 연평 부대는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십삼 분만에 자주포 대응 사격해 북한군의 도발을 분쇄했다.
북한군의 연평도 도발은 육·이오 전쟁 이후 대한민국 영토에 직접 포격을 가한 최초의 사건으로, 당시 해병대원 두 명이 전사했다. 민간인 사망자 두 명과 다수의 부상자, 민가 피해가 발생했다.
해병대 연평부대는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고 오늘도 대한민국 수호의 최선봉에서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임무 완수에 매진하고 있다. - 인천 연평도 운동장 벽에서 발견한 안내문.
아까 버스 기사가 일러준 대로, 두 시 삼십 분경에 도로를 걷고 있자니 버스가 다가와 멈췄다. 오늘만 벌써 동일 인물을 네 번이나 마주했다. 놀랍고도, 신기한 상황이었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군인들과 소방관을 마주쳤다. 뭍으로 나가는 동료를 부러워하는 군인들의 대화를 곁에서 들으며, 공감했다.
‘아무래도, 여기 갇혀 있는 게 엄청 답답하겠지. 근데, 소방관은 왜 이리 흔한 거야! 가는 곳마다 있잖아? 예전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만약 전쟁이 터지면, 이런 한가한 고민 따위는 하지 못할 거다. 한가로이 사랑 타령 중인 까닭은, 나라가 평화로운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