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첨찰산보다 운림산방

by 슈히

간밤에 영 안녕하지 못했다. 한방을 쓴 네 명 중, 한 명이 심하게 코를 골았기 때문이었다. 자정이 다 돼서야 여자 두 명이 함께 입실했는데, 첫눈에 혈육인 걸 알아챘다. 얼굴을 보고 안 것이 아니라, 몸매가 붕어빵이었다. 풍만을 넘어서, 한 마디로 뚱뚱했다.

순천에서 온 언니는 잠을 통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장막 너머로 그녀의 짜증 섞인 한숨 소리가 연달아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층 침대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코골이의 근원지를 살폈다.

뚱뚱한 여인은 드르렁드르렁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열심히 자고 있었다. 손으로 그녀의 몸을 몇 번 쓰다듬었다. 그러자, 곧 조용해졌다.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몇 시간 후, 알람이 울려서 눈을 떴다. 월요일 새벽 네 시,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더 자고 싶지만, 논문을 읽어야만 했다. 일 층의 부엌에서 오렌지 주스를 한 컵 마셨다. 그리고, 우유에 시리얼을 부어 먹었다.

순천인이 출근 채비를 다 하고 내려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식사하시고, 출근하세요.”

“원래, 아침 식사 안 해요. 밤새 시끄러워서, 한숨도 못 잤어요.”

“그러게요. 저도, 잔 것 같지 않네요.”

“어쩜, 여자가 그렇게 심하게 코를 골죠?”

“뚱뚱한 사람은 기도(氣道)에도 살이 쪄서, 코를 골아요. 근데, 자매 중 하나는 코 안 골던데요?”

“자매예요? 남남 아니고?”

“몸매가 닮았잖아요. 자매 같던데요?”

그녀와 작별한 후, 홀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김치는 없었지만, 다행히 달걀이 있어서 좋았다. 졸음을 견디며 논문을 다 읽고, 외출 준비를 하러 방으로 돌아갔다. 한 명이 깨어 있길래, 웃으며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요?”

“서울이요.”

“거기서 여기까지 왔어요? 엄청 먼데! 목포는 완전 시골이라서 놀 거리도 없는데, 왜 왔어요? 서울이 더 재밌을 텐데!”

“그러게요. 안 와봐서 호기심에 온 건데, 기대에 못 미치네요. 저기,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서른여섯이요.”

“동안이시네요. 서른셋 정도로 생각했어요.”

“거울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요. 늙어서요.”

다른 한 명은 아직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들은 자매가 맞았다. 코를 요란하게 곤 사람은 언니였고, 동생은 스물여섯 살이라고 했다. 헤어지기 전, 둘이 나눠 먹으라고 비타민제를 건넸다. 동안이라는 칭찬을 들었으니, 나름 보답한 셈이었다.

한적한 목포시를 주행했다. 목포대교를 지났다. 아홉 시, 영암인 영숙 님과 고하도 목화 단지에서 만났다. 원래 여자 셋이 모일 예정이었으나, 한 명이 취소했다.

영숙 님은 운전 경력은 길지만, 운전이 서툴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교통사고를 내는 것 같아요. 고속도로를 오늘 난생처음 타는 거예요.”

“네? 교통사고를 그렇게 자주 내신다고요? 전 사고 당한 적은 많아도,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시내 주행만 해요. 출퇴근해야 하니까요. 시외에 갈 일이 생기면, 남편한테 부탁해서 가요.”

“오, 좋은 배우자를 두셨군요. 자상하시다.”

“저기가 회사예요. 워낙 외곽이라서, 자차는 필수죠.”

그녀는 보육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 중이라고 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 운림산방이라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저게 뭐지? 뭔가 유명한 관광지 같은데, 못 들어봤어요.”

신속히 검색해 보니, 가볼 만한 곳 같았다.

“어차피 등산은 금방 끝나요. 저기도 들릴까요?”

진도 기상대에서 첨찰산 정상까지 거리는 약 이백 미터, 소요 시간은 오 분도 채 안 걸렸다. 날씨는 을씨년스러웠지만, 조망만큼은 좋았다. 하늘과 나무, 바다가 모두 보였다. 산 추천 목록에 첨찰산을 추가했다.

하산 후, 운림산방을 관광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월요일이었다. 영숙 님이 외쳤다.

“월요일에 쉬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다니! 나만 쉬는 게 아니었네?”

“그러게요. 과연 명소인가 봐요. 평일인데도, 사람 많다!”


진도 운림산방


조선 말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말년에 거처하면서 창작과 저술 활동하던 곳으로 「소치실록」에 따르면 큰 정원을 다듬고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를 심어 선경(仙境)으로 꾸민 곳이다. - 운림산방 외부 안내문.


대한민국 남종화의 성지로서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를 이천십팔년부터 개최하고 있어 많은 예술인과 관람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 운림산방 외부 안내문.



운림산방은 세계에서 유일한 일가 직계 오대의 화맥이 이백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대화맥의 산실이다. 천구백팔십이년 소치의 손자인 남농 허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원되었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넓고 울창한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 백칠 호)과 조선 시대 봉수터가 남아 있는 첨찰산을 배경으로, 자연유산과 역사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역사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나다. 국가지정 명승 제 팔십 호로 지정되었다. - 운림산방 전단.


소치 허련 - 진도가 낳은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許鍊, 천팔백팔∼천팔백구십삼)은 이십 대에 해남 대둔사 초의 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남종화의 대가가 되었으며, 조선 말기 화단에 남종화 풍을 토착화시켰다. - 운림산방 안내문.

대표작으로 오십구 세(천팔백육십육년)에 운림산방을 그린 선면산수도와 스승 김정희 초상, 묵모란, 파초 등이 있다. - 운림산방 전단.

운림산방, 소치 허련, 남종화 모두 처음 접했다.

“오대째 화가인 집안이라니, 멋지네요! 근데, 왜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지? 여자도 한 명쯤은 있을 수 있지 않나?”

의문이 들었다.

“여자는 출가외인이니, 아무래도 교육을 못 받았겠죠.”

영숙 님이 말했다. 씁쓸했다.

“그러고 보면, 신사임당이 대단한 분이로군요! 어머니는 오만 원, 아들은 오천 원에 그려져 있으니까요.”

“아들을 잘 키워서, 대단한 거죠.”

그녀는 두 딸을 둔 엄마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말이 묘하게 설득력 있게 들렸다.

“신사임당은 가세가 기운 양반댁에 시집가서, 비교적 자유로웠대요. 친정에도 자주 드나들 수 있었다네요.”

전시관을 둘러보고, 정원으로 나와 연못의 잉어들이 노니는 모습을 바라봤다. 자연 속의 한옥과 동식물들이 조화를 이루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자목련, 모란, 골담초, 멀꿀, 명자나무, 수양 홍도화 등 다채로운 꽃들이 봄비를 맞으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자목련과 모란 외에는 모두 처음 보는 꽃들이라서, 신기했다.

‘과연, 자연의 세계는 무궁무진해!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공부해도, 다 모르겠는걸?’

전시실을 훑으니, 점심시간이 됐다. 영숙 님이 미리 검색한 맛집으로 이동했다. 걸어서 백오십 미터 거리였다. 해물파전과 들깨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느릿느릿 산책했다.

남도전통미술관에 들렀다. 거대한 화폭에 담긴 짙은 녹음과 폭발적인 폭포가 마음에 들었다. 한밤중에 눈이 소복이 내리는 풍경화에서도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완전 취향 저격이네요. 탐나요!”

“갖고 싶은 그림, 있어요?”

영숙 님이 질문했다.

“네? 아, 엄청 비쌀 텐데요! 눈으로만 봐야죠.”

“드라마에서 그러잖아요. 남자가 여자한테 ‘이 그림 마음에 들어요?’라고 묻고, 여자가 그렇다고 하니까 보란 듯이 남자가 그림 사주고.”

“하, 상상만 해도 황홀하네요.”

미술관을 나와, 쌍계사도 둘러봤다. 첨찰산 등산만 했으면 짧아서 너무 시시하고 아쉬웠을 테지만, 운림산방은 예상치 못한 신의 한 수였다.

영숙 님의 설명에 따르면, 진도군에서는 예술인들에게 원조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가수 S의 엄마도 군에서 예술인 지원금 받아요. 무당인데.”

그녀의 어투는 다소 비꼬는 기색이 묻어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기에 별 의문은 일지 않았다.

멀고도 아름다운 고장, 전라남도. 앞으로도 한참 더 와야 하는 곳이었다. 다음엔 어디서 무엇을 배우게 될까,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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