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이 좀 더 일찍 출발하자고 해서, 계획보다 삼십 분 일찍 길을 떠났다. 토요일 새벽 네 시 반, 다랑이 주행하는 차 조수석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장장 네 시간을 달려 마침내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노란색 리본을 마주하자, 세월호 사건이 떠올라 마음이 다소 무거웠다.
넓은 대합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알고 보니, 제주행 매표소였다. 우리가 가야 할 관매도행 매표소는 인근에 떨어진 초라한 건물이었다.
주차한 지점에서 한참 걸었습니다. 그때, 여수에서 출발한 갱화 오빠가 당도했다. 무려 세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한 명이 오지 않았다. 목포 거주자 고라니 님인데, 초면이었다. 원래 배를 타려면 출발 삼십 분 전까진 선착장에 도착해야만 하는데, 그는 영 소식이 없었다. 아홉 시 오십 분, 배는 출발했다.
“설마, 배를 놓친 건가? 아이고, 큰일이네!”
지각생으로부터 연락이 통 없길래, 어안이 벙벙했다. 그때, 출입문으로 청년 한 명이 쓱 지나갔다.
“저 사람 같은데?”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를 제외한 승객들은 모두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그렇다기엔, 태도가 너무 평안한데? 서두르는 기색도 전혀 없고.”
의아했다. 아마 저 사람일 것만 같았지만, 확신이 없었다. 단체 대화방에서 그에게 연락처를 주며, 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배 못 탔어요?”
“아뇨, 탔어요.”
“어디 있어요?”
아까 본 젊은이가 바로 고라니 님이었다.
“왜 늦었어요? 가장 가까운 곳 사는 사람이!”
그를 보며, 눈을 흘겼다.
“어제 술 마셔서요…….”
심지어, 그는 진도 출신이었다.
“진도 관매도, 가봤어요?”
“아뇨.”
“진도 출신이라면서요?”
“…….”
해풍 때문에 다소 추웠다. 약 구십 분 후, 관매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들머리가 보였으나, 등산은 잠시 미뤘다. 조금만 걸어가면,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섬+바다 인증 도장이 있다.
“잠깐 들를 곳이 있으니,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세요.”
갱화 오빠와 고라니 님에게 말하고, 다랑과 함께 이동했다. 인증 도장을 꾹 찍었다. 다랑이 말했다.
“마지막 인증, 축하해!”
“고마워!”
“갖고 싶은 선물 있어?”
“손편지.”
“말 안 해도 써주려고 했는데…….”
“달라고 말해서 받는 거, 별론데.”
이윽고, 갱화 오빠로부터 독촉 전화가 왔다.
“네, 지금 가고 있어요!”
돈대산 등산을 시작했다. 다랑은 초반에 앞장서서 큰 덩치로 거미줄을 헤쳐나갔으나, 줄곧 선두를 유지하진 못했다. 그가 용변을 보느라 잠시 뒤처진 때, 남은 일행들끼리 서로 사진 촬영했다. 처음엔 몰랐다. 그런데, 경치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고릴라 한 마리가 떠올랐다.
“산맥이 마치 고릴라 같지 않아요? 저기 튀어나온 부분이 머리, 양옆으로 뻗은 산줄기는 넓은 어깨.”
그러자, 다른 이들도 동의했다. 신기했다. 다랑이 ‘참으로 보는 눈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오늘의 꼴찌는 다랑이 아니었다. 갱화 오빠가 기진맥진하며 후발대를 유지했고, 가끔 걸음을 멈춰 다 같이 그를 기다렸다. 한편, 고라니 님은 과연 수색대 출신다웠다. 하산할 때, 그는 내내 선두의 자리를 지켰다.
‘흡연자만 아니면, 참 좋은 동행 감인데! 아쉽네.’
하산 후, 육지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렸다. 식사하기엔 시간이 어중간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간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배를 탔는데, 추웠다. 곁에 나란히 누운 다랑의 손을 잡았는데, 따뜻했다. 다랑의 두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안 피곤한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이틀 뒤, 갱화 오빠가 물었다.
“둘이 사귀어요?”
“아뇨. 왜용?”
“둘이 배에서 손잡고 누워있는 거 봤음.”
“추워서요.”
“나랑도 손잡을 수 있음?”
“당근이죠.”
“됐거든요?”
“다음에 만나면, 손잡아 드리리다.”
무사히 진도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들린 후,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운전자가 보이지 않았다. 다랑에게 전화했다.
“어디야?”
“갱화 형이 자동차 열쇠를 분실해서, 모여 있어.”
“뭐? 아니, 어쩌다……. 지금 거기로 갈게!”
갱화 오빠가 추천한 맛집에 갈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함께하지 못했다.
뚬북이 든 갈비탕을 맛있게 먹었다. 뜸북은 톳의 전라도 방언이라고 한다. 뜸북의 가격은 킬로그램당 무려 십만 원이나 한다는데, 너무 비싸서 놀랐다.
“우리 오늘 목포에서 하루 묵을 건데, 바다 보이는 예쁜 카페 추천 부탁해요.”
목포 거주자 고라니 님은 흔쾌히 한 곳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고라니 님이랑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
다랑이 물었다.
“아닌데. 왜?”
“그래도, 동행인데.”
“눈치 없긴, 데이트잖아! 목포까지 갔으니, 명소 한 곳은 가야 하지 않겠어? 해넘이 보러 가자.”
“목포는 노을 별로 안 예쁜데.”
“왜?”
“섬이 많아서.”
다랑의 의견에 동의할 순 없었지만, 카페에 도착하자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선명하면서도 부드러운 하늘빛과 흰 구름이 굉장히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누구였더라? 목포 노을은 별로 안 예쁘다고 한 사람이?”
“누나랑 봐서, 예쁜가 봐.”
“말은 번지르르하네.”
저녁 여섯 시경, 옥구슬 씨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받을 수 없었다. 곁에 다랑이 있어서였다. 게스트하우스에 입실한 후, 씻고 잘 준비를 마친 뒤에 그에게 전화했다. 약 다섯 시간 후였다.
슈히: 운전기사 겸 짐꾼이 있어서, 좋아요. 내 생일에 얘가 수국 꽃다발 줬거든요? 그땐 고백인 줄 몰랐는데, 그게 고백이었대!
옥구슬: 정성이야.
슈히: 남자는 결혼하면 남편이라고 불리잖아요. 나한테, 평생 내 편이 돼주겠대요.
옥구슬: (웃음) 나 오래간만에 결혼식장 가게 생겼네!
슈히: 무슨 소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