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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Oct 21. 2023

인천 승봉도 코끼리와 촛대 바위

  승봉도

     

  아득한 옛날, 신 씨와 황 씨가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대피한 곳이다. 며칠 동안 굶주린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경관도 좋고 산세도 괜찮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해 이곳에 정착했다. 이곳의 지형이 마치 봉황새의 머리 모양과 같다 하여 승봉도라 부른다. - 인천 승봉도의 관광 안내문.


    

  대이작도에서 승봉도행 뱃삯이 단돈 팔백 원이었다. 세상에, 버스비보다 저렴했다! 바다로 할인을 받은 덕택이었다. 흡족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몇 분 후 승봉도에서 사뿐히 내렸다.

  펜션 사장님이 운전하는 승합차에 몸을 싣고,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숙소까지 이동했다. 해풍 때문에 문이 녹슬었는지, 숙소의 출입문 손잡이가 영 말썽이었다. 한참 씨름하다 간신히 문을 열고, 짐을 내렸다.

  블랙야크 섬 인증지는 코끼리(남대문) 바위였다. 이곳에 오기 전 바위를 사진으로 봤을 때, 코가 긴 동물의 모습을 영락없이 빼닮은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연화 양과 함께 오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 숙박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일정이라서 혼자 오게 됐다.

  숙소 바로 옆에 식당이 하나 있어서, 석식으로 해물 칼국수 일 인분을 예약했다. 허기졌지만, 주인아주머니는 두 시간 후인 저녁 여섯 시에 오라고 당부했다.

  숙소 사장님에게 물으니, 남대문 바위까지 금방 다녀올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인증 먼저 마치기로 마음먹고, 신발 끈을 묶었다.

  이일레 해수욕장을 떠나 도로를 따라 걸으니 겹 작약, 사계 패랭이, 송엽국, 초롱꽃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인기척은 없었다. 숲길을 지나자, 곧 해변이 나왔다.

  짐승 한 마리가 모래사장 위에 서 있는데, 한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동물의 뒤를 살그머니 쫓았다. 점차 간격이 좁혀졌다. 새는 낌새를 눈치채고, 아장아장 걸었다.

  그들은 잠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고, 관광객은 질세라 끈질기게 추격했다. 갈매기는 곧 무심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술래잡기는 끝났다. 그 모습을 보니, 인간과 동물의 경쟁에서 인간이 진 것 같아 빙그레 웃음이 났다.

  맞은편에서 단체 관광 온 할머니 무리가 한 차례 지나갔다. 부채 바위라는 볼거리가 하나 있었으나, 전혀 부채처럼 생기지 않았다. 드디어, 남대문 바위에 도착했다.   


       

  남대문 바위

     

  거대한 암석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어 코끼리를 연상하게 한다. 바위 모양이 남대문 같아서 남대문 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코가 뭉툭한 개미핥기를 닮은 듯도 하고, 코끼리 같기도 하다. 간조 시에만 접근할 수 있다. - 인천 승봉도 관광 안내문.


         

  “와, 멋있어! 실례지만,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뒤따라 온 노부부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어머님이 촬영하는 동안, 코를 붙잡고 뱅뱅 돌며 코끼리 흉내를 냈다. 지인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웬 벌칙을 받는 중이냐고 물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 앱에 인증 요청을 했으나, 이목구비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아서 재인증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당황해서, 정면 모습 사진으로 재인증 신청했다. 가까스로 인증 성공했다. 하마터면, 인증하러 다시 와야 할 뻔했다.

  해변에서 노부부보다 먼저 숙소로 발길을 돌렸으나, 가는 도중 산림욕장에 잠시 한눈을 팔아서 잠시 헤맸다. 숙소 인근에서부터 노부부와 재회해 대화하며 걸었다. 부부는 딸이 하나 있는데, 또래였다.

  “딸은 여행을 좋아해서, 혼자 잘 다녀요. 결혼 생각은 없대요.”

  자녀가 왜 결혼할 마음이 없는지 궁금했으나, 초면에 실례될까 봐 캐묻지 않았다.

  숙소에 들러 세면대에서 손을 청결히 닦은 후, 식당으로 이동했다. 아까 만난 노부부가 먼저 와서 식사 중이었다. 혼자 칼국수를 먹으려 했는데, 아버님이 합석을 권했다.

  “딸 같아서 그래.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머님의 눈치를 살피자, 동의하는 듯 보여 합류했다. 먹을 복이 많아서, 어딜 가든 굶어 죽진 않는 편이다. 파래 전, 매운탕, 수제비 등 진미가 넘쳤다. 배불리 먹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즐겁고, 행복한 만찬이었다.

  독서 중에 일찍 취침했고,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산림욕장과 당산을 지나 촛대 바위까지 산책했다.

     


  당산 이야기  

   

  옛날, 신 씨와 황 씨가 함께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대피한 곳이 승봉도이다.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신황도라고 부르다가, 이곳 지형이 마치 봉황새의 머리 모양 같다 하여 승봉도라고 불렀다.

  그들은 산에서 중턱에 서 있는 거대한 소나무를 만났는데, 송진 방울이 뚝뚝 흘렀다. 마치 사람이 슬퍼서 우는 듯하여, 이 소나무를 위로하기 위해 봄마다 제를 지냈다고 한다. - 소나무 앞에서 발견한 안내문.


     

  촛대 바위 

    

  촛대 같기도 하고, 사람의 손가락 같기도 하다. - 인천 승봉도 관광 안내문.

     

  소나무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건 허무맹랑하긴 했지만, 식물의 애환까지 헤아리는 마음이 정답게 느껴졌다. 촛대 바위에 다다랐을 무렵, 성난 파도가 철썩철썩 몰아쳤다.

  바위에 부딪힌 물거품이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놀랍고도 무서워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혼자 보기에 아까운 광경이었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영상을 촬영했다. 하늘이 흐리고, 파도가 거세서 출항 여부가 걱정스러웠다.

  식당에서 조식을 먹고, 숙소에서 아홉 시에 출발했다. 펜션 사장님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손님들과 다 같이 선착장으로 모였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예정대로 출발하지 못했다. 대이작도를 거쳐 오는 배가 꽤 지연됐다. 갈매기 떼를 보며, 지루한 시간을 견뎠다. 다행히, 무사히 인천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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