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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Oct 21. 2023

식물의 보고(寶庫), 보령 외연도

  같은 지역 동호인들을 몇 명 모아서 주말에 보령 외연도에 갈 계획이었으나, 주말에 비 소식이 있었다. 목요일 일정을 화요일로 앞당겨 소화한 후, 목요일 새벽에 홀로 집을 나섰다.

  두 시간 남짓 달려 대천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미세먼지 탓에 하늘이 뿌옜다.

  ‘하늘이 흐려서, 조망은 별로겠지만, 비 안 맞는 게 어디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예약한 배표를 발권했다. 목적지까지 무려 두 시간이 걸리고, 뱃삯도 비쌌다. 지난번 당진 대난지도에 갔을 때 만난 어느 어르신이 말하길, 보령 외연도는 가기 힘든 섬이라고 했다. 운 좋게도, 첫 도전에 성공했다.

  큰 배를 탔는데, 승객은 달랑 혼자였다.

  “거기서 뭐 하세요? 그 배 아니에요. 내려오세요!”

관계자가 소리쳤다.

  “아, 이 배가 아니에요? 네, 알겠어요!”

알고 보니, 타야 하는 배는 비교적 작은 쾌속선이었다. 하마터면 배를 잘못 타서, 일정을 망칠 뻔했다.

  중간에 다른 섬들을 경유했다. 논문을 읽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마침내, 보령 외연도에 닿았다. 도민들이 탑승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선착장에 발을 디뎌 나아가는데, 한 어르신이 말을 건넸다.

  “혼자 왔어요?”

  “네. 혼자 오셨어요? 저는 블랙야크 섬&산 인증하러 왔어요. 괜찮으시다면, 동행하실까요?”

혼자가 아니라서, 좋았다. 뜻하지 않게 동행이 생겼다.

  어르신은 식물에 관심이 많았고, 박식했다.

  “이건 애기똥풀인데, 줄기를 자르면 노란 즙이 나와요. 이게 애기 똥 같다고 해서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와, 진짜네요! 신기해요! 식물 박사님이시네요!” 

  “아유, 뭘 이 정도로.”

  “이 흰 꽃은 뭐예요?”

  “그건 딸기꽃이에요.”

  “아, 그럼 꽃이 지면 여기 딸기가 맺혀요? 와, 여기 딸기밭이네요!”

  사월인데, 아직 동백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식물을 관찰하며 오르니, 어느덧 봉화산 정상에 다다랐다.        


  

  봉화대터

     

  역사적으로 바다의 사건을 한양에 알리는 역할을 담당했던 봉화대는 외연도에서 제일 높은 봉화산에 설치되어 있다. 봉화대는 폭 칠 점 팔 미터, 둘레 이십사 점 오 미터의 원형으로 석축의 높이는 북쪽 부분이 백삼십∼백오십 센티미터, 남쪽 부분이 백팔십∼이백 센티미터 정도 된다.

  외연도의 봉화대는 조선전기 왜적을 감시하고 바다 건너 중국을 경계하는 역할과 조선후기 자주 출몰했던 이양선에 대응하기 위한 충청수영의 권설 봉수였다. 또한, 지금은 제외되었지만 과거에 당제를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봉수를 관장했던 충청수영은 현재의 보령시 오천면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충청수영이 운영했던 권설 봉수는 전라북도로 편입된 어청도 봉수에서 시작되어 외연도, 녹도, 원산도를 지나 오천면의 수영 망해정에 도달하는 경로다.

  어청도에서 봉수가 오르면 오천면에서 서남방 오십일 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외연도 봉수대에 전해진다.

  외연도 봉수대에서 동북방으로 십육 점 이오 킬로미터, 오천면에서 서남방 삼십일 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녹도봉수대로 전달되고 녹도에서 다시 동북방 십육 점 구 킬로미터의 원산도로 전해지는데 원산도에서는 오천면 수영 망해정으로 바로 연락되어 충청수영에 보고가 되는 경로이다.

  당시 봉화는 땔감이나 섶 속에 쇠똥이나 말똥을 섞어 피우면 연기가 흐트러지지 않고 똑바로 올라가 다음 봉수대에 전달되었다. 구름, 바람 등으로 인해 연기와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봉수군이 즉시 다음 봉수대로 달려 보고해야 했고, 봉수군들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였다고 한다.

  이는 외연도가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상요지였다는 점과, 역사적으로 왜적과 중국, 이양선의 출몰로부터 미리 대처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던 섬이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 보령 외연도 봉화산 정상에서 발견한 안내문.

     


  외연도

     

  바람이 잔잔한 새벽이면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외연도는 보령시에 속한 칠십여 개의 섬들 중 육지에서 가장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서해의 고도다.

  새하얀 해무가 섬을 감쌀 때가 많아 연기에 가린 듯하다는 의미로 외연도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짙은 해무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갑자기 하늘로 솟아오른 듯한 세 개의 산봉우리와 함께 멋진 경관을 펼치며 주위의 자그마한 섬들을 호위하듯 거느리고 불쑥 나타나 신비함을 더해주는 섬이다. - 보령 외연도 둘레길에서 발견한 안내문.



  준비한 간식을 어르신과 나눠 먹고, 하산했다. 흔히 봐서 친숙한 진노랑 민들레와 연노랑 민들레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 둘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요?”

  “연노랑 민들레는 처음 봐요. 무슨 차이가 있어요?”

  “연노랑이 토종이고, 진노랑이 서양 민들레예요. 색깔도 다르지만, 총포의 방향이 달라요. 토종은 총포가 위로 솟았고, 서양은 총포가 아래로 뻗었어요.”

듣고 보니, 정말 그 차이가 뚜렷했다.

  “와, 진짜 신기해요! 자연과 식물의 신비, 책 한 권 내시죠!”

  재래식 화장실을 발견했다. 용변을 보려고 가까이 갔더니, 글쎄 여자 변소는 가림막이 아예 없었다. 반면, 남자 변소는 문이 멀쩡히 붙어 있었다.

  “여자는 지나치게 개방적인 화장실이네요. 볼일 좀 보고, 따라갈게요. 먼저 가고 계세요.”

  “가다가 맘 바뀌어서, 되돌아올 수도 있어요.”

  “안 돼요!” 

어르신이 장난치는데, 내내 불안해서 혼났다.

  마을 어귀에 도착하니, 오후 한 시 삼십분경이었다.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 해물 칼국수를 먹었다.

  “내가 사줄게요.”

  “고맙습니다! 이따 제가 후식 살게요.”

어딜 가나 귀인을 만나 늘 먹을 복이 있으니, 앞으로도 다행히 굶어 죽진 않을 것 같다.

  이후에도 손님이 두 명 와서 칼국수를 주문했으나, 주인아주머니는 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말했다. 우리는 행운아였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어르신이 배표를 챙겨 주었다.

  “이걸, 왜 놓고 가요?”

  “아, 내 정신 좀 봐! 하마터면, 이따 배에 못 탈 뻔했네요. 고맙습니다.”

  육지로 돌아가는 배는 오후 네 시인데,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았다. 마을 어귀의 정자에 앉아 아까 읽던 논문을 마저 읽었다.

  “마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올게요.”

  “네, 그러세요. 전 여기 있을게요.”   

       


- 반쪽이는 신체가 반쪽 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인 과거 급제와 혼인을 이룬다.    

 

- 중매쟁이가 부자의 아들인 반쪽이에게 중매를 하러 오고, 이때 종의 아들이 부자의 아들인 척한다. 첫날밤에 신부가 잠들자, 종의 아들이 반쪽이와 자신을 바꾸고 자리를 비운다.     



  ‘요즘엔 정상인들도 결혼을 못 하는데, 반쪽이가 결혼을 다 하네? 부럽다! 아니, 첫날밤에 잠이 와? 신부가 긴장감이 영 없네. 아니지, 피곤해서 기절했나 봐.’

  반쪽이 설화에 대한 논문인데, 같은 소재로 다양한 변형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논문을 거의 다 읽어갈 때쯤, 뒤에서 갈매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갈매기 한 쌍이 마주 보고 사이좋게 생선을 나눠 먹는 중이었다.

  “어머, 너희 사귀니? 보기 좋구나.”

  대화할 상대가 없어, 미물에게 말을 건넸다. 어느새, 어르신이 돌아왔다.

  “이거, 선물이요.”     



  문화체육관광부 <가고 싶은 섬> 선정    

 

  열 가지 꿈의 보물섬 외연도  

   

  열 가지 꿈의 보물섬 외연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외연도는 대한민국의 사대 가고 싶은 섬 중 하나이다. 환경부의 아름다운 섬으로 지정된 황도, 횡견도, 오도를 포함한 십여 개의 크고 작은 무인도를 포함하여 외연열도로 불린다.   

  

  외연도(外煙島)란 이름을 만들어낸 안개

  계절과 날씨의 변화무쌍함을 연출하는 거칠 것 없이 드넓은 하늘

  일출과 일몰의 두 얼굴 태양

  그 청정함으로 수산자원의 보고인 바다

  그 크기와 다양한 형태만으로도 귀한 몽돌

  수천수만 년 바다의 시간을 말해주는 바위

  존재만으로도 천혜의 자원인 무인도

  천연기념물 백삼십육 호로 신비함 가득한 당산의 상록수림

  오백여 년간 섬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고, 풍어를 빌어온 풍어당제

  그리고 섬마을 골목 귀퉁이에서 장난치고 재잘대는 아이들     

  이 모든 것이 외연도의 희망이고 보물이다. - 보령 외연도에 대한 관광 안내문.   


       

  “고맙습니다. 아이스크림 사드릴게요.”

  후식을 먹으며,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합실에서 외연도를 찾는 철새들의 모습과 간략한 설명을 볼 수 있었다.

  “와, 약 스무 종이나 되는 새들이 이곳에 찾아오는군요. 식물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로 가득한 신비로운 섬이네요!”

  때 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생생히 간직할 수 있는 비결은 아마도, 육지에서 떨어진 외딴섬이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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