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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Oct 21. 2023

당진 대난지도 망치봉과 선녀 바위

  보령 숙소에서 여섯 시에 출발했다. 간밤에 눈이 와서, 조금 쌓였다. 아침 여덟 시 배를 타기 위해 도비도로 달렸다. 서둘러 주차를 마치고, 매표소로 뛰어들었다.

  낚시꾼들이 즐비했다. 표를 사는데, 옆에서 모르는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등산 가? 같이 다닐까? 오빠라고 불러!”

대꾸도 하지 않고, 외면했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버렸다. 눈치 없는 그는 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괜히 다가와서 설교를 늘어놓았다.

  “등산은 어디로 하려고?”

  “망치봉 가려고요.”

  “국수봉 지나서, 망치봉 가면 돼.”

  “아뇨, 망치봉만 갈 거예요.”

  차갑게 대답하고, 눈을 내리깔다. 더 이상 대화를 원치 않는데, 자꾸 귀찮게 구니 성가셨다. 아까 배에 탈 때도, 중년의 한 남자가 불필요한 참견을 했다.

  “표 안 냈어요?”

  “아뇨, 냈는데요.”

  “안 냈는데?”

  본인이 매표원이 아닌데, 왜 신경 쓰는 것인지? 표를 낸 게 확실한데도, 왜 계속 시비를 거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피곤했다.

  방바닥에 누웠으나, 온기가 없었다. 눈을 잠시 감고 있다가, 지루해서 일어났다. 앞에 앉아 있는 어르신들 두 명에게 망치봉 가본 적이 있냐고 질문했더니,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블랙야크 섬&산 완등했어요.”

  남자 어르신은 칠십 대인 것 같았고, 여자 어르신은 육십 대로 보였다.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부부 사이가 아니라 일반적인 동행 관계인 것 같았다.

  “와, 진짜요? 대단하시다!”

  “명산 100, 백두대간도 모두 완등했죠.”

  대단한 선배들을 만났다. 배에서 내려 등산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책 한 권 내는 건, 어떠세요?”

  “아무도 안 살 거예요.”

남자 어르신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왜 그리 생각하세요? 누군가는 분명 읽을 텐데요.”

  “예전에나 명산 100이 대단한 거였지, 지금은 개나 소나 다 명산 100 완등하니까요. 아, 내 지인도 책 냈어요.”

  “제목이 뭔데요?”

  “그, 뭐더라……?”

  “검색하면 나와요?”

작가명과 도서명을 검색했으나,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등대 스탬프 투어 인증하러 온 거라서, 도장 먼저 찍을게요.”

  등대 앞에서 어르신들과 헤어졌다. 다시 혼자가 됐다.

  임도를 쭉 따라가다 우측 등산로로 진입하면, 망치봉에 쉽게 닿을 수 있다. 어느 등산객도 여덟 살 딸아이와 등산한 기록을 인터넷에 공유했다.

  하지만, 그렇게 가면 거리가 너무 짧다. 나가는 배는 오후 한 시에 들어오는데, 그때까지 공백이 너무 길었다.

  뒤를 돌아보니, 네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둘은 남자, 둘은 여자였다. 처음엔 한 무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명은 혼자 왔고, 나머지 셋은 일행이었다.

  좀 움직였더니, 곧 더웠다. 두꺼운 점퍼를 벗어 허리춤에 맸다. 혼자 온 오십 대 남자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갔다. 한 명 정도는 추월당해도 괜찮았다. 아직 뒤에 세 명이 남아 있었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었다.

  ‘부부와 딸인가?’

  그들은 등산복 차림이 아니었다. 평상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속도가 느렸지만, 열심히 따라왔다. 후발대에게 추월당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날씨가 흐리면, 평소보다 더 피로를 느끼는 편이다. 어제 보령 삽시도와 고대도에서 이만 보 이상 걸어서, 허벅지 근육이 욱신거렸다. 일정을 마치고, 어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밧줄을 잡고, 하산하는 구간이 나왔다.

  ‘어라, 하산하면 안 되는데? 잘못 왔나?’

되돌아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세 명은 부부와 딸이 아니었다. 남자는 삼십 대인 것 같았고, 여자들은 사십 대 이상으로 보였다. 동호인들인 줄 알았는데, 한참 후에야 부부와 지인 관계라는 걸 알았다.

  “엥, 부부라고요? 안 친해 보이는데…….”

  놀라서 되묻자,

  “부부는 원래 안 친해요.”

남자가 대답했다.

  그들이 처음에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또래는 아닌 것 같은데 아내가 연상녀인 건지, 아이는 있는지, 궁금한 건 많았지만 질문을 삼갔다.

  임도를 걸었다.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등대 앞에서 잠시 헤어진 남녀 어르신이 나타났다.

  “좌측이에요.”

  “벌써 오셨어요? 뒤에 세 명은 아직 안 보여요.”

  여자 어르신이 매우 빨랐다. 그녀는 색 바랜 블랙진 차림이었다.

  ‘신축성이 좋은 등산용 바지도 아니고, 안 불편하신가?’

하지만, 몸놀림을 보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고수가 분명했다.

  산길을 지나, 해변 데크를 건넜다. 다시 등산로를 올랐다. 우회로라서 거리가 꽤 길었다. 체력이 점점 바닥을 보였다.

  “여기가 아닌가? 망치봉을 지났는데, 혹시 못 봤나?”

  여자 어르신이 긴가민가 헷갈려했다. 과거에 와본 적이 있다고 해도, 이미 오래전 일이라고 했다. 잠시 쉬며, 목을 축였다. 홀로 온 50대 남자가 돌연히 나타났다.

  “아까 임도에서 우측으로 갔더니, 길이 막혀 있더라고요. 헤맸어요.”

  그와 대화하며 걸었다.

  “택배 사업 중인데, 앞으로 구 년만 더 고생하다 고향으로 내려가려고요.”

  “고향이 어디신데요?”

  “영천이요.”

  “영천 별빛 마을이요?”

  “어떻게 아세요?”

  “국내 여행 십일 년 차요.”

  망치봉에 도착했고, 무사히 하산했다. 그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계속 미뤄왔는데, 내내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이곳에 왔다고 했다.

  “오길 잘한 것 같아요. 설레어요.”

  “그래요? 저는 안 설레는데. 날씨가 구려서, 피곤해요. 흐린 날엔 제가 맥을 잃거든요. 어서 집에 가고 싶어요!”

  선착장에 되돌아왔다. 아직 정오가 되기 전이다. 준비한 간식을 꺼내 굶주린 배를 채웠다.

  “저는 소난지도를 둘러보고 올게요. 계속 걷고 싶어서요.”

  김밥과 과자를 내밀었으나, 그는 이가 아프다며 사양했다. 대합실에 앉아 끼니를 때우고, 책을 폈다. 두 어르신이 다가와 곁에 앉았다. 여자 어르신이 말했다.

  “선녀 바위도 보고 와요. 지금 썰물 때라서 가까이 가서 볼 수 있어요. 이십 분이면 충분해요.”

  “계속 여기 계실 거죠? 그럼, 짐 놔두고 다녀올게요.”

  화장실에 들러 양치를 하고, 칫솔을 든 채로 선녀 바위를 보러 갔다. 갯벌을 가로질러 대각선으로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정강이와 발에 바닷물이 튀어 레깅스와 신발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등산화 속 양말까지 젖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 시야에 사람이 한 명 보였다. 소난지도에 다녀오겠다고 한 사장님이었다.

  “어떻게 오려고, 그래요? 가장자리 길로 오세요.”

도움닫기를 해서 뛴다 한들, 진흙탕이라서 미끄러지고 말 것 같았다. 게다가, 시간이 촉박했다. 곧 배가 들어올 텐데, 그전까지 선착장에 돌아가야만 했다.

  힘차게 내달렸다. 여태 걸어온 길을 달음박질치려니, 광활한 갯벌이 무한대로 펼쳐지며 드넓은 몽골 평야에서 승마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두르세요!”

  오십 대 남자는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곧 사라졌다. 그의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할 순 없기에, 곁에 있어 달라고는 차마 부탁하지 못했다.

  게눈 감추듯 조급히 선녀 바위를 감상하고, 기념 촬영 두어 장 남긴 후 또다시 뛰었다. 대만 지질공원에서 본 여왕 바위를 떠올렸다.

  대합실로 돌아가자, 어르신들은 의아해했다.

  “갯벌에서 넘어졌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가장자리에 멀쩡한 길이 있는지 몰라서, 갯벌을 가로질렀더니 고생했네요. 괜찮아요. 차에 여벌 옷과 운동화 한 켤레 더 있어요.”

  “우린 소난지도도 다녀왔어요. 섬을 너무 대충 보는 거 아니에요?”

  “다리 아파서, 쉬고 싶어요. 여기 인증하러 왔고, 목표 달성했어요. 그걸로 만족해요. 그리고, 지금 이 등산화만으로도 오늘 소재는 충분해요. 소난지도는 하나도 안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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