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채석강과 도베르만

by 슈히

부안 고사포 해변과 채석강은 근접했다. 몇 해 전 오월, 가족과 함께 채석강에 온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땐 하늘이 온통 우중충했다. 게다가, 어린이날과 주말이 낀 연휴였다. 종일 차만 타서, 지루했다.

이번엔 그때와 달랐다. 마치 가을 하늘처럼 청명했다. 역시, 여행은 날씨가 가장 중요하다. 혼자인 건 서글펐지만, 일정을 마친 후에 부안 거주자 지인을 잠깐 만나기로 했다.

변산반도 국립공원 탐방 안내소의 주변을 둘러보니, 부안의 깃대종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이 생물은 노란 바탕의 몸에 검정 무늬를 지니고 있는데, 얼룩말을 연상케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귀여운 조형물이었다.

‘잉, 부안 종개 사이에서 사진 찍으면 좋을 텐데. 부탁할 사람도 없네.’

금요일 오후, 한적했다. 평일의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하늘을 날던 갈매기들이 날개가 아픈지, 해변에 서 있었다. 파도가 일며 바닷물이 철썩철썩 밀렸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띄엄띄엄 보이는 관광객들과 동물들이 어우러진 해변의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인증이 벌써 끝났다.

‘이제, 뭐 하지?’

여기까지 왔는데, 여권에 도장만 찍는 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펭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들어올 거죠?”



‘그래, 저기라도 들어가 보자!’

그렇게 탐방 안내소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채석강의 지형은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다. 돌출된 지형인 탓에 오랜 세월 파도와 해풍에 깎여 현재의 거대한 해안절벽이 되었다. 이러한 채석강은 지질학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명승 제 십 삼호 및 국가 지질공원 구호로 지정되었다. - 변산반도 국립공원 탐방 안내소의 안내문.



그냥 확 당겨서 한국에 눌러앉은 게 벌써 사십 년이여. 참 거시기 허지. - 브라이언 배리(천구백사십오∼이천십육) - 변산반도 국립공원 탐방 안내소의 안내문.



천구백육십팔년 닭이봉 중턱에서 본 격포 어촌


닭이봉은 채석강을 우산처럼 받치고 있는 산 정상을 말한다. 옛날에 산 아래의 격포 마을이 지네 형국으로 되어 있고, 닭이봉은 닭 볏 모양을 하고 있어서 닭이봉이라 불렸다고 한다.

더욱 재밌는 것은 마을은 지네 모양이고 마주한 산봉우리는 닭의 볏 모양을 하고 있으니 마을에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이를 제압할 수 있는 족제비 상을 만들어 닭이봉을 마주 보도록 하였더니 재앙이 물러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브라이언 배리) - 변산반도 국립공원 탐방 안내소의 안내문.


천구백육십팔년 하섬


하늘에서 보면 새우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새우 하(鰕) 자를 쓴다. 하섬은 약 삼만 평 정도의 작은 크기지만, 이백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섬 중앙에는 마르지 않는 석간수가 있어 예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섬 주변은 천혜의 어살목으로 육십∼칠십년대까지만 해도 어살의 원조 격인 독살이 설치되어 있었다. 독살이란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하여 바다 쪽을 향해 말굽 모양으로 쌓은 돌담을 말한다. - 브라이언 배리

소금 꽃이 피는 바다, 곰소염전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천일염지 곰소염전은 바다와 인접한 다른 염전과 달리 곰소만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시대에 줄포만에서 곰소만까지 화염(바닷물을 끓여 만든 소금)을 만들어 남포리에 있는 사창(조선 시대 지방에 설치된 곡식 저장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건모포(옛 포구)에서 쌀과 함께 서울 노량진으로 보내졌다.

지금의 곰소염전은 일제 말기에 만들어졌으며, 해방 이후 천일염을 생산했다. 소금은 보통 촘촘한 바둑판 모양으로 갯벌을 다져서 만든 염전에서 삼월 말에서 시월까지 생산된다.

오, 유월에 소금 생산량이 가장 많고 맛도 좋아서, 이 시기가 염부들에게는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곰소만의 입지 조건상 바닷물에 미네랄이 많으므로, 소금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 변산반도 국립공원 탐방 안내소의 안내문.


채석강의 유래, 부안을 사랑한 서양인 브라이언 배리의 이야기 등을 눈여겨보았다.

‘부안의 어떤 점이 좋아서, 이민까지 온 걸까?’

그가 전한 전설도 역시 흥미로웠다. 아까 먹었던 오디 빵이 전시품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새삼 반가웠다. 다시 야외로 나갔다.

해변에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인어 동상인가? 사진 찍으러 가야지!’

촬영하기 위해 모래사장을 밟았다. 부드러운 모래들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몸도 따라서 훅 쏠렸다. 넘어지진 않았다. 예상치 못한 자극에 놀랐지만,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모래 감촉이 좋았다.

여자 조형물은 과연 인어였다. 안내석을 보니, 노을 공주라고 쓰여있었다. 바닷물에 글씨가 지워져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노을을 보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문장이 흐릿했다.

‘아쉬워라! 확인할 길이 없네.’

바람이 차가웠다. 서해랑 길 띠지가 보였다. 블랙야크 인증지와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섬+바다를 모두 마치고 나면, 서해랑 길과 남파랑 길을 걷게 될지도 몰랐다.

‘아냐, 이제 인증은 그만하고 싶어! 제발, 그만!!’

아무래도, 인증하다 보면 강박감과 부담감을 떠안게 된다. 밀린 숙제를 억지로 하듯 말이다.

시간을 보니, 아직 여유가 많았다. 만나기로 한 지인은 직장인이라서, 회사를 빠져나올 수 없는 모양이었다. 채석강을 산책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차장과 호텔이 보였다. 몇 해 전, 가족과 함께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아마도, 채석강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인가 보다. 혹은, 그간 다른 건물이 들어와서 발전하고 정비된 모습일지도 몰랐다.

이정표를 따라가는데, 집채만 한 검은 개 한 마리를 만났다. 성격이 온순한지, 사나운지 확신이 없었기에 조심스레 다가갔다. 개와 눈높이를 맞추며, 오른손을 내밀어 보았다. 별 반응이 없었다. 마침 아는 노래가 흘러나오길래, 한 구절 따라 불렀다. 개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사람을 안 좋아 하나? 아니면, 암컷이라서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건가……?’

무관심한 개의 태도에 다소 실망스러웠다. 자리를 뜨려고 몸을 일으켰더니, 그제야 개가 짧은 꼬리를 흔들며 네 다리로 섰다. 개는 키가 크고, 늘씬했다.

‘응? 수컷이네! 잠깐만 데리고 놀까? 마침 적적했는데.’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려고 주변을 둘러봤으나, 횟집에 인기척이 없었다. 목줄을 풀자, 개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달려들었다. 기운이 셌다. 몸놀림을 보니, 어린 듯싶었다.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잘 따랐다.

개는 계단을 겅중겅중 잘 내려가고, 잘 올랐다. 관광객들의 이목이 개에게 집중됐다. 비록 견주는 아니었지만, 목줄을 쥐고 있으니 그때만큼은 진짜 대형 견의 주인이라도 된 듯했다.

개의 목을 휘감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으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얼굴을 홱 돌려 버렸다. 아무래도, 사진 찍기를 싫어하나 보다.

‘제발, 앞 좀 봐 줘……!’

혼자라서 내내 쓸쓸했는데, 도베르만과 잠시나마 즐거웠다. 헤어질 땐,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인을 만나 그간 안부를 묻고, 헤어졌다. 가평 명지산을 함께 등산했고, 거제 외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는 어르신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회식하는 날이라서, 팀장으로서 자리를 비우기 곤란한 듯 보였다.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차를 몰고, 홀로 군산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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