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하루 전날 밤
출국하기 하루 전날 밤, 남쪽 지방에 사는 귀남 오빠가 기차에 몸을 싣고 먼 길을 달렸다. 다랑이 기차역에서 귀남 오빠를 태웠다. 18시경, 평생학습원 주차장에서 셋이 모였다. 귀남 오빠는 작년 10월에 임실에서 만난 후로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반가움도 잠시, 그는 날이 갈수록 살집이 점점 더 붙는 듯했다.
'저런, 세상에!'
하지만, 굳이 외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외모 평가는 지나친 참견이고, 연장자에게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너, 발레도 배워?"
귀남 오빠가 질문했다.
"네. 1월부터 수업 들었어요. 다랑과 탱고도 배워요."
"대단하다. 슈히야, 다랑 꼭 붙잡아라!"
"다랑은 조만간 차일 수도 있어요. 저한테 소리 질렀거든요."
귀남 오빠가 사주는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그는 고기는 몇 점 먹지도 않고,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다랑은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부른 배를 두드렸다. 출국하기 위해 몇 시간 후에 다시 모일 것을 기약하며, 잠시 헤어졌다.
심란한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어, 친구에게 전화했다. 때마침 그는 소개팅을 마친 후 주행 중이었다. 내가 주선한 자리였다.
슈히: 어땠어요?
옥구슬: 즐거웠어요.
(중략)
슈히: 지금 심기가 불편한 게, 남자 친구가 어제 저한테 소리 질렀거든요?
옥구슬: 왜 소리를 질러?
슈히: 서비라고, 아는 남동생이 있어요. 그 남동생이 교대 근무하는 사람이라서, 시간 맞추기가 어렵거든요? 같이 등산 가기로 약속했고, 남자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남자 친구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는 거야. 자기 일정은 물어보지도 않고, 둘이 마음대로 정했다고요.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서비가 아무리 알고 지낸 지 오래됐어도, 이성이잖아요. 불안하다 이거지. 슈히 누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옥구슬: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면, 염병을 할 게 아니라 더 잘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소리를 질러.
슈히: 이게 소릴 지를 일도 아닌데, 아주 사소한 일로 사람 관계가 깨지기도 하잖아요. 아니, 나한테 이렇게 함부로 대하고도 계속 사귀길 바라는 건가? 막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진 않은데. 불만이 있으면, 좋은 말로 해도 알아들을 텐데 왜 그럴까 납득이 안 가는 거예요. 남자 친구가 미안하다고 사과는 하는데,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길 수도 있잖아요.
옥구슬: 그렇지.
슈히: 오늘 영화를 봤어요. 남자 친구가 영화를 안 보고, 옆자리에서 계속 내 얼굴을 쳐다보는 거예요.
옥구슬: 아, 마음 불편해!
슈히: 원래 식사를 거르면 속 쓰리잖아요. 위액 분비돼서 입에서 냄새나고.
옥구슬: 어.
슈히: 대화하다 보니까, 느낌상 얘가 밥을 안 먹은 거 같아요. 저는 밥 먹고 만났거든요? 이발하고 오느라 식사를 걸렀대요. 사실, 겨울에 추우니까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잖아요. 근데, 저는 단정한 거 선호하지 지저분한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남자 친구한테 이발하고 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이발을 딱 하고 왔더라고요. 근데, 시간이 부족해서 밥을 못 먹은 거야. 내일 셋이서 베트남 가거든요?
옥구슬: 어.
슈히: 남자 친구가 금요일에 휴가 내서 여행 가는 거라서, 목요일까지 업무를 다 마치느라 옷도 후줄근하게 입고 왔더라고요. 영화 보는 2시간 내내 저한테 신경 써주느라 '춥지 않냐, 옷 덮어 줄까?' 이렇게 말을 거는데, '아, 그냥... 영화나 봤으면 좋겠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고. 이래저래 불편해요.
옥구슬: 어.
슈히: 셋이 여행 가는데, 갑자기 취소할 순 없잖아. 이미 항공료, 숙박비 다 결제했는데. 그냥, 가기 싫네요......
옥구슬: 애들도 아니고, 뭐야. 믿음이 없어?
슈히: 사람이 원래 사소한 걸로 틀어지잖아요. 그리고, 그게 한 번이 아니고 두 번, 세 번 누적되면 결국 헤어지는 거지.
옥구슬: 아니, 본인도 슈히 씨 그런 성향인 거 알고 만나는 거면서. 사람을 바꾸려고 해. 아직 성숙하지 못하네.
슈히: 뭐요, 그런 성향이 뭐야!
옥구슬: 사람을 두루두루 사귀는 편이잖아요.
슈히: 넓고 가볍게 사귀죠.
옥구슬: 그런 거 다 알고 만나는 거면서.
슈히: 등산하려고 만나는 거고, 다른 마음은 없어요. 서비는 흡연자예요. 그리고, 남자 친구가 주말에 등산 못 가면, 다른 동행을 구해야 하는데 대부분 남자들이거든요. 그럼, 이게 악순환이 되잖아.
옥구슬: 슈히 씨도, 참 힘든 연애 한다!
슈히: 헤어져야 하나? 이런 생각하고 있어요. 살림을 합치고 싶다는 둥 이런 얘길 최근에 했었거든요? 이래서 어디 살림을 합치겠어? 빚 있는 사람과는 미래를 꿈꿀 수 없다고 했더니, 빚 다 갚는 기간 예상하기에 약 3년 걸린대요.
옥구슬: 어.
슈히: 3년 후에 내가 어디서 뭐 하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아무튼, 꼴도 보기 싫어요.
옥구슬: 힘든 길 간다!
슈히: 그간 9번 잘해주면 뭐 해. 1번 잘못하면 와르르 무너지는데.
옥구슬: 그리 화낼 일도 아니야, 사실.
슈히: 정말 시시하고, 사소하고 별 거 아니에요! 나한테 소릴 대체 왜 지르는 거야? 하아......
옥구슬: 슈히 씨하고 날짜를 정한 건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주기가 있었거든요? '아, 이때쯤이면 슈히 씨랑 밥 먹고, 차 마시고 싶다'는 주기가 있었어요.
슈히: 무슨 달님이에요, 주기가 있게?
옥구슬: 어, 있어. 그런 게. 가끔씩, 길게 수다 떨고 싶을 때가 있어.
슈히: 그렇군요.
옥구슬: 요즘엔 자제하는 거지. 슈히 씨를 만나는 그 친구를 위해서.
슈히: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다 말하는데, 남자 친구가 신경 쓰는 것 같더라고요.
옥구슬: 남자 친구가 심기 불편하면, 슈히 씨한테 서운하게 대할까 봐 일부러 연락 안 하는 거거든. 슈히 씨가 남자 친구와 잘 지내길 바라요. 기본적으로 남자 친구가 슈히 씨한테 잘못한 거지. 왜 소리를 질러? 친구 간에도 소리 지르면, 빈정 상해.
슈히: 사실, 남자 친구는 등산 안 좋아해요. 물론, 저도 안 좋아하지만, 저는 목표가 있잖아요. 해외를 가고 싶은데, 그전에 국내부터 둘러보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경지까지 끌어올리고 해외에 가겠다는 목표요.
옥구슬: 어.
슈히: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몸이 아파도 등산 가고, 그렇거든요. 근데, 남자 친구는 사실, 그냥 데이트를 하고 싶은 거지, 등산 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옥구슬: 허. 내가 볼 땐 애초에 시작부터가 잘못된 거야.
슈히: 그럼, 대체 인력이 필요하잖아요. 혼자는 등산 가기 싫잖아, 재미도 없고.
옥구슬: 혼자 가면, 이게 뭐여.
슈히: 네, 소재도 없고. 혼자 있는 거, 싫어하거든요.
옥구슬: 슈히 씨가 혼자 다니는 거 싫어하니까, 슈히 씨 남자 친구가 지금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데.
슈히: 맞아요.
옥구슬: 그럼, 그 무게를 견뎌야지. 자기가 선택한 건데.
슈히: 그렇죠.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지. 남자 친구가 운전해 줘, 짐 들어줘, 길잡이 해줘, 얼마나 편해요!
옥구슬: 자기가 감당 못하면, 뭐. 만약 나라면, 다른 사람한테 약을 칠해 놓을 것 같아. 내가 모르는 사람보단 지인이 낫잖아.
슈히: 사람들 일정이 다 있고, 본인 인생이 있는데. 어떻게 나랑 맨날 등산을 같이 가. 그게 말이 안 되지.
옥구슬: 자기 좋은 것만 할 수 없잖아.
슈히: 그날, 중식당에서 굴짬뽕을 같이 먹었거든요? 남자 친구가 굴 알레르기가 있어요. 먹으면, 토한다고 하더군요. 몸에 안 받는데도, 남자 친구가 굴을 좋아해요. 저는 멀쩡하거든요? 근데, 남자 친구가 귀가 후에 토했대요. 걱정이 하나도 안 되는 거야. 나한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인데, 내가 걱정 따위를 왜 해?
옥구슬: 그렇지. 꼴 보기 싫은데.
슈히: 작년 12월에도 갈등이 있었는데, 올해 1월에 이런 일이 또 있네? 바보가 아닌 이상, 나도 계산해야 되잖아요.
옥구슬: 슈히 씨가 계산적인 사람은 아니야.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계산적인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냥 이건 계산 안 해봐도, 아니야.
슈히: 나를 위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거 딱 하나 보고 관계를 시작한 거예요.
옥구슬: 그러니까.
슈히: 연달아 2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끝이에요. 내가 볼 땐 그래요.
옥구슬: 마음이 고맙고, 나한테 해주는 게 좋잖아. 근데, 그런 게 없으면 왜 만나.
슈히: 너무 자주 만나서 그런가? 제가 원래, 주말에만 만나거든요?
옥구슬: 주말에만 만나는 게 좋겠다.
슈히: 남자 친구가 평일에도 보고 싶다고 찡찡대면, 제가 없는 시간 쪼개서, 시간을 내요. 맞춰 주려고, 수용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남자 친구가 집 근처로 이사 온 후부터는 더 자주 보려고 하는 거예요. 근데, 거리가 좁혀지니까 나한테 함부로 구는 것 같고. 거리를 둬야 되나?
옥구슬: 전에는 엄청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젠 너무 당연시되니까 덜 소중해지나 보다.
슈히: 날 떠보더라고. '누나를 자주 보니까 좋은데, 누나는 어때?' 저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거든요? '편하고, 좋네.' 이렇게 얘기했어요.
옥구슬: 어.
슈히: 그랬더니, '편해서 좋아? 나 봐서 좋진 않고?' 이래요. 대답을 강요하는 거잖아요.
옥구슬: 어.
슈히: 사람이 5:5로 공평하게 서로 좋아할 순 없잖아요.
옥구슬: 그럼.
슈히: 남자 친구가 날 더 좋아하는 걸 본인도 알아요.
옥구슬: 어.
슈히: 난 그냥, 사랑받는 입장인 거예요.
옥구슬: 그럴 수 있지.
슈히: 뭐랄까, 구걸하는 느낌?
옥구슬: 지금이야 그렇지만, 나중에 이것저것 따지게 되면 좀 그래. 슈히 씨가 나쁜 년 될 수도 있으니까.
슈히: 단순히 쓸모 있어서 곁에 두고, 배우자감으로 삼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어머니한테 가끔 연락 오거든요? 보고 싶다고. 김치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라고. 전 불편해서, 그냥 대답만 '갈게요.'하고 말거든요. 사실, 부모님도 저한테 함부로 대하시니까 제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잖아요. 근데, 하다 못해 남은 더하지. 어머니는 굉장히 서운해하세요. 과거가 어찌 됐든, 가족끼리 이해하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저는 그냥 가급적이면 안 봤으면 좋겠고, 거리를 두고 있죠.
옥구슬: 그것도 어쩔 수 없어. 서로의 뜻이 다르면 어쩔 수 없어.
슈히: 제가 기숙사 살거든요? 외부인 출입도 안 되고, 늘 보고해야 되고. 귀찮잖아요. 자정 넘으면, 출차도 안 돼. 보안 카드 찍고 출입해야 하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번거롭고, 서류상 유주택자니까 LH 행복 주택 지원도 못 하고. 사실, 이게 불만이죠.
옥구슬: 그렇긴 하지.
슈히: 여기 묶여 있잖아.
옥구슬: 나중에, 그 재산이 어디 가는 거 아니니까 감수해야지.
슈히: 부모님이 그 재산을 떼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고, 계약서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아버지가 남매 사이가 안 좋으시거든요. 재산 때문에.
옥구슬: 그렇다며.
슈히: 저는 부모님과 재산 때문에 등 돌리고 싶진 않고요. 이미 사이가 나빠서. (웃음) 그냥, 안 보는 게 제일 낫다고 생각해요.
옥구슬: 가족 문제는 예민한겨.
슈히: 화목한 가족에서 태어나서, 자란 남녀가 만나서 결혼해도 가정이 화목할지, 불행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건데.
옥구슬: 남의 연애에 찬물 끼얹고 싶지 않지만, 염려스럽네요.
슈히: 본인 앞가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필요해서 옆에 뒀더니, 나를 물어?' 이런 생각이 남자 친구한테 자꾸 들어서.
옥구슬: 슈히 씨 남자 친구가 오래오래 슈히 씨한테 잘했으면 좋겠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연애인데!
슈히: 점점 지쳐요. 남자 친구 입장에선, 불안한가 봐요.
옥구슬: 소리를 지를 일이 뭐가 있어. 이건, 싸우자는 거지.
슈히: 아, 모르겠어요. 여행은 즐겁게 잘 다녀와야죠. 그냥, 뭐랄까...... 착잡해요. 기대되지 않아. 어차피, 한 방 쓰거든요? 남자 친구랑 2인실 쓰고, 아는 오빠는 1인실 쓰고. 아, 얼마나 어색할까...... 3박 4일을.
옥구슬: 아, 싫다! 힘들 것 같아. 같이 가는 사람도 불편해.
슈히: 셋이 같이 저녁 먹었거든요? 남자 친구랑 아는 오빠는 남자 친구 집에서 지금 쉬고 있을 거예요. 곧 출발해요. 아무튼, 시간이 해결해 주겠죠.
옥구슬: 그렇지. 그렇겠지.
슈히: 남자 친구가 저를 놓치고 싶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그런 행동은 안 할 테고 저한테 신경을 더 쓰겠죠. 놓쳐도 되는 상대라면, 그냥 이러다 점점 멀어지겠죠.
옥구슬: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돼있어요.
슈히: 백두대간 곧 완등해요. 제주 올레길 걷고, 전국의 수목원 훑고, 돈 모아서 해외여행 갈 건데. 남자 친구가 여행 좋아해요. 제 후원자가 돼주겠다는 말은 참 듣기 좋았거든요? 근데, 이렇게 관계가 벌써 삐그덕거리니까, 무슨 후원자는 후원자야.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가야겠네.
옥구슬: 빚 있는 사람이 무슨 후원이여.
슈히: (웃음)
옥구슬: 아,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슈히: 고충이 많아요.
옥구슬: 여러모로 힘든 와중에, 연애도 해야 하는데. 난, 연애 못해! 일만 존나 열심히 할래.
슈히: 베트남 여행 간다니까, 사람들이 다 부러워해요. '해외여행 다녀와서, 출간하는 거야?' 하면서. 벨리 댄스복 입고 사막에서 화보 촬영할 꿈에 부풀어 있었거든요.
옥구슬: (웃음)
슈히: 막상 가려고 하니까, 귀찮아.
옥구슬: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주니까 재밌게 보내다 와요.
슈히: 타인은 나와 동일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한마음이긴 어렵죠.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인정해 버리면 되는데, 글쎄...... 이게 인정할 만한 그런 차원인가?
옥구슬: 쉽게 되지 않죠. 그게 어떻게 돼.
슈히: (한숨)
옥구슬: 지켜봐요.
슈히: 언제까지 지켜봐? 남자 친구가 나한테, 자기가 더 이상 필요 없냐고 묻더라고요.
옥구슬: 본인 자아가 확실해야 돼. 단지, 슈히 씨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는 거면 어느 세월에 그게 돼. 나도 예전에 쓸모없는 연애한 적 있어요. 본인이 되고픈 모습은 본인이 세워야지. 연애가 머리 아파.
슈히: 남자 친구가 예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누나는 수준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지금 나랑 시간 낭비 중인 건 아닌지......' 막 이런 얘길 해요.
옥구슬: 음.
슈히: 이렇게 대답했죠. 너 자기 계발 열심히 해. 해외여행 갈 거니까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내 생일에 초상화 그려 준다고 했으니까 미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근데, 남자 친구는 지금 일하느라 바빠서 끼니도 잘 못 챙겨요. 제가 아들 하나 키우고 있어요. (한숨) 연하는 귀엽고, 체력도 좋아요. 어디 가자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어요. 오빠들은 핑계가 많거든요. 근데, 연하는 내가 가르쳐야 돼. 사실, 이게 문제예요.
옥구슬: 잘 될 때까지 잘해봐요.
슈히: 모르겠어요. 지치네요. 이제, 나가야 해요.
옥구슬: 잘 다녀와요.
슈히: 경비가 삼엄해서, 보고해야 돼요. 밤에 외출하는 것도 눈치 주더라고요.
옥구슬: 엄격하다.
슈히: 기숙사라서 그래요.
옥구슬: (웃음) 기숙사도 요즘엔 자유로워요.
슈히: 여긴 그런 데가 아니에요. 기숙사는 피곤해요.
옥구슬: 그런 거 좋아하긴 하는데. 틀에 박힌 거 좋아해서.
슈히: (웃음) 손님도 못 데리고 오고.
옥구슬: 슈히 씨한텐 안 맞지. 난 손님 오는 거 싫어하고, 혼자 있기, 통제하기 좋아해서. 딱이지.
슈히: 네에.
옥구슬: 슈히 씨, 기분은 안 좋겠지만 기왕 가는 건데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잘 다녀와요.
슈히: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생각을 멈추자.
옥구슬: Stay positive.
슈히: 남 일이니까 그러는 거예요.
옥구슬: 잘 안 되는 건 나도 알아.
슈히: 점점 효용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요. 계약 기간은 7월까지 거든요. 계약 연애 재계약 안 하고 싶네요. 정규직 아니고, 계약직이요.
옥구슬: 계약 기간이 아직 많이 남았네, 그래도.
슈히: 이만 끊을게요.
옥구슬: 잘 갔다 와요. 건강 조심하고.
슈히: 네.
어둠을 뚫고 온 다랑과 재회했다. 그는 성큼성큼 기숙사 내부로 들어와 짐을 옮겨 차에 실었다. 서운한 마음은 여전했다. 귀남 오빠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주행 내내 잠을 자지 않았고, 다랑과 간간이 대화했다. 뒷좌석이 비좁아서, 불편했지만 곧 잠에 빠졌다. 다랑이 성탄 선물로 준 목이 긴 양말을 신은 채였다.
눈을 뜨자, 벌써 인천 공항이었다. 다랑에게 말을 건넸다.
"휴게소 안 들렸어? 중간에 좀 쉬지 그랬어."
"어, 와서 쉬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주차장을 빙빙 돌았으나, 빈자리가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해외여행 많이 가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출국하나 보네."
귀남 오빠가 감탄했다.
가까스로 주차하니, 이제 막 새벽 3시경이었다. 아직 시간이 일렀다. 4시부터 수속 시작이라고 들었다.
"누나, 이제 가자! 시간 다 됐어."
다랑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인천 공항 실내로 발을 내디뎠다.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