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와 무관한 대화들
안경을 쓴 그는 다소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면접 안내자가 성큼성큼 걸어서, 우측에 착석했다. 그도 역시, 면접관인 모양이었다. 안내자는 비교적 젊었고, 좌측에 앉은 이는 연배가 더 들어 보였다.
'좌측이 상사인가 보군.'
그들의 정면에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길래, 침착하게 걸음을 옮겼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어 면접관들을 바라봤다. 젊은 면접관의 옷차림이 눈길을 끌었다. 흰색 바지와 흰색 운동화를 보고, 처음엔 의아했다.
'세탁하기 힘들 텐데, 왜 하필 흰색을 골랐지? 흰색을 좋아하나? 아, 직원의 개성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인가?'
시간이 지나서야, 흰색 옷의 정체를 깨달았다. 2차 면접을 볼 때,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다른 직원들이 근무하는 모습을 먼발치서 볼 수 있었다. 흰색 옷은 바로, 위생복이었다. 작업복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유는, 디자인 덕분이었다. 평상복이라고 해도 나무랄 데 없어 보였다.
상사 면접관을 통해 담당 업무에 대해 간략히 들었다. C사는 사회 기여 차원에서 유아들을 위한 행사를 오랜 시간 진행했다. 그간 유아들이 과자 공장을 견학하고, 놀이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맛있는 과자도 제공된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상상됐다.
"유익하고 좋은 행사네요.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어요!"
그러나,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의 기관으로부터 최소 금액만을 받기에 비영리 행사, 아니 자선 행사나 다름없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3년간 이런 유익한 행사를 중단했다. 이제 코로나의 여파가 잠잠해졌으니, 다시 행사를 재개할까 싶어 담당자를 구인 중이라고 했다.
"아이를 좋아하나요?"
면접관이 질문했다.
"아이와 어른 가리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아이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잘 포장해서 대답했다.
"결혼하셨어요?"
"미혼입니다."
"결혼 계획은 있으세요?"
"애인은 있지만, 결혼 계획은 없습니다."
"갈수록 출산율이 낮으니, 아무래도 우리 사업도 타격이 커요. 애인이 있으시다니, 결혼해서 어서 출산하세요."
충격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면접관이 여자였어도, 과연 그런 말을 했을까?
"다시 시작하는 사업이니, 신중해야만 해요. 잘 될지, 잘 안 될지 모르니까요. 연봉은 얼마지?"
상사가 묻자, 이제껏 말이 없던 젊은 면접관이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구인 광고에는 추후 협의라고 돼있습니다."
"아, 그래요. 연봉은 O,OOO만 원이에요. 대신, 근무 시간이 짧아요. 오전 9시 출근, 오후 4시에 퇴근이에요."
금액을 듣는 순간, 와장창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엥, 잘못 들었나...... 고작 그것밖에 안 돼? 세상에! 아무리 인건비가 아까워도 그렇지, 어떻게 겨우 그 돈 받고 일하냐? 해도 정말 너무하네...... 그럼, 그렇지! 연봉은 추후 협의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깐......?'
C사에서 제시한 연봉은 신입 사원의 연봉 절반에 겨우 해당하는 액수였다. 즉, 터무니없이 적은 가치였다. 푼돈을 받기 위해서 평일 내내 주 5일을 근무하라니, 숨이 턱 막혔다. 뚝배기가 부글부글 끓는 기분이 들었다. 면접관이 안색을 살피더니, 한 가지 제안했다.
"급여가 너무 적어서 곤란하시면, 근무 시간을 늘려서 조정해 드릴 수도 있어요. 급여 인상 가능합니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론 짐짓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업무 시간이 짧은 게 오히려 좋아요. 개인 작업할 시간이 꼭 필요하거든요."
"어떤 작업하세요?"
"단행본 한 권 출간했고, 차기작 준비 중이에요. 등산 다니면서, 산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어요."
그러자, 갑자기 두 남자들이 등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저도 등산 좋아해요.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코로나 터진 이후로 등산 많이 다녔어요."
"오, 저도요. 혹시 영암 월출산 가보셨어요?"
"그럼요! 경치가 빼어난 산이죠. 거기도 블랙야크 명산 100 중에 하나예요. 3년 4개월간 완등하고, 2개월간 작업해서 출간했어요."
"와, 정말요? 대단하시네요!"
면접은 업무에 대해서가 아니라, 갑자기 등산 이야기로 흘러갔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갖가지 사연을 소개하며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공장장과 2차 면접도 봤다. 50대로 짐작되는 안경 쓴 남성이었다.
"면접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생각해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C사에서 어떤 과자 좋아하세요? 저는 OX, OO XX, OXX OX 좋아해요."
그런데, 그는 최근에 배우자와 사별했다고 했다. 전혀 알고 싶지 않았고, 몰라도 되는 사연을 알아버려서 난감했다.
"저런, 뭐라고 위로를 드려야 할지...... 상심이 크셨겠어요."
최대한 동정심을 담아 표현하려고 했으나, 구직자가 초면인 면접관의 사생활까지 헤아리려 하니 난관이었다.
"아직 젊으니까, 재혼할 의사는 있어요."
"......"
"결혼했어요?"
"네? 아, 아뇨. 애인은 있어요. 결혼은 아직이요."
"적은 나이는 아니니, 어서 결혼해서 아이도 낳으세요."
"......"
"요즘 젊은이들은 통 애를 안 낳으려고 하니, 문제야. 애 한 명쯤은 건사할 수 있을 텐데, 다들 왜 그 모양인 건지......"
되도록 밝은 인상을 유지하려 안간힘 쓰며, 면접을 마쳤다. C사 면접관들은 왜 업무와는 무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걸까? 귀중한 시간 쪼개서 면접 보러 왔건만, 면접관들은 한가한 걸까?
면접을 마친 후, 친구를 만났다. 황당한 면접에 대해 털어놓자, 친구가 말했다.
"헐! 면접을 본 게 아니라, 아저씨들이랑 쓸데없이 수다 떨다 왔네. 등산 얘기는 대체 뭐야? 대화 주제가 왜 취미인 건데? 결혼과 자녀 계획을 왜 그 남자들이랑 해? 시간 낭비 제대로 했네...... 그래서, 만약 채용되면 너 그 회사 갈 거야?"
"그러게...... 합격해도 문제다. 평일 내내 몸 묶이는 거 너무 싫은데...... 휴, 해외여행 가려면 돈은 벌어야겠고...... 으앙, 어쩌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C사에 채용되지 않았다.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를 회상하면, 공장장에게 질문한 내용이 불현듯 떠오른다.
"근로자의 날에 쉬나요?"
아마도, 일하기 싫은 티가 역력했나 보다. 취업 실패한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자유의 몸이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