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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점심, 특별한 초대

할머니들과 함께

by 슈히

지인으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

"슈히 씨가 계속 생각나서요. 시간 되시면, 내일 점심에 밥 한 끼 먹으러 올래요?"

"마침 별 일정은 없어요.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꼭 갈게요!"

수화기 너머 그녀는 교회 분들과 식사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어렸을 적부터 성당, 교회는 많이 다녀서 익숙한 편이라서, 별 거부감 없이 방문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토요일이었다. 교인들과 함께하는 장소는 교회가 아니었고, 어느 아파트였다. 지인에게 도착했다고 연락하자, 그녀가 몸소 마중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오신 손님들 중에 슈히 님이 최연소예요."

내가 마지막으로 온 손님이었다. 거실에는 60-70대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상다리가 부러져라 거하게 차려진 식탁 위로 진수성찬이 가득했다. 앞치마를 입고, 음식을 나르는 손들이 분주했다.

"잘 먹겠습니다!"

수육과 무말랭이, 초밥, 김밥, 잡채, 장떡, 배추김치 등을 맛있게 먹었다. 샐러드와 과일, 떡과 빵 등이 있었으나 과식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손대지 않았다. 따뜻한 잔치국수와 고소한 멸치국물로 입가심하니, 만족스러웠다.

내가 앉은 상에는 6명이 모여 있어서 잔반이 적었으나, 다른 분들은 음식을 꽤 남겼다. 잔반이 아까웠으나, 적당히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식사를 마치자, 사회자가 난센스 퀴즈를 냈다.

"토끼가 잘하는 것은?"

손을 들고 외쳤다.

"정답! 토끼기!"

"맞아요. 여기, 선물 받으세요!"

사회자가 준 선물은 키친타월이었다. 별거 아니었지만, 정답을 맞혀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할머니들은 별로 의욕이 없었다. 다음 문제의 정답도 내가 맞췄으나, 사회자는 선물을 골고루 나눠주려고 애썼다.

"잉, 내가 맞췄는데......"

사회자가 거의 떠먹이듯 알려주다시피 해서 할머니들에게 선물을 거저 나눠줬다. 준비한 선물은 끝이 없었다. 모두가 사이좋게 선물을 나눠 갖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고, 사회자는 진땀 뺐다. 그걸 지켜보자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들은 반응이 더디고, 미적지근했다. 분위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가위바위보도 하고, 초성 퀴즈도 풀었다. 문제는 ㅊㄱㅊ, ㅊㅇㄱㅊ, ㅇㅎㅂ였는데 아리송했다. 사회자가 힌트를 줬다. 채소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정답 소리가 터졌다. ㅊㄱㅊ를 맞춘 이는 상품으로 청경채를 받았고, ㅊㅇㄱㅊ를 맞춘 사람은 청양고추를 획득했다. 마지막으로, ㅇㅎㅂ은 애호박이었다. 참가하는 내내 웃음이 비져 나왔다.

앉은 상태로 몸을 틀어 서로 어깨 안마를 했다. 왼편에 앉은 안경 쓴 할머니는 사회자가 지시하는 대로 따랐으나, 우측에 앉은 체격이 큰 할머니는 안마를 거부했다.

"아, 난 안 해도 돼요."

"주무르기 다음엔 두드리기 해주세요. 천천히 30km 속력으로 달리세요."

"60km!"

"이제 전속력으로 120km!"

좌측 할머니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세게 해서 아프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시원해요."

초면인 사람들과 이렇게 식사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니 마치 여름 신앙 캠프라도 간 느낌이 들었다.

사회자가 제안했다.

"요 앞 상가에 노래방 예약해 놨어요. 언니들, 노래방 갈 시간 돼요?"

좌중은 조용했다. 초면에 노래방을 간다니,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가도 되는 자리인가, 잠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엉뚱한 사회자는 악보를 꺼내더니, 나눠주며 말했다.

"언니들이 바쁘실 것 같아서, 악보 출력해 왔어요. 노래방 안 가고, 그냥 여기서 노래 부를게요!"

그렇게,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즐거운 나의 집'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등 친근한 곡이었다. 찬송가도 한 곡 있었다. 모두가 한마음을 모아 목청껏 노래 불렀다. 이윽고, 마지막 순서였다.

"OO 님, 준비하신 거 들려주세요."

그러자, 멋있게 차려입은 백발의 어느 할머니가 일어서려고 몸을 곧추세웠다.

"그냥, 앉은 채로 해주세요."

사회자가 말했다. 할머니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는 다시 앉아서, 문서를 들고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과거에 유방암으로 투병했다. 힘들었던 순간,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한 교인이 인도해 교회를 다니게 됐다. 그녀는 그 부분을 읽으며, 오열했다. 당시 서울 아산 병원과 대전 성모 병원 중 어느 곳에서 수술할까 고민했는데, 성모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의도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으나, 전체적인 맥락은 신앙의 힘으로 구원받았다는 내용으로 들렸다.

숙연한 분위기를 깨고, 관계자들이 종이 가방에 영양제와 물티슈를 담아 우리들에게 건넸다.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선물을 한 아름 안았다.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으니, 싱글벙글했다.

다수의 인원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오길 기다리며, 곁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들었다. 시외에서 온 손님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런 식의 전도는 처음이어서, 신선했다. 기대하지 못한 유쾌한 경험이었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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