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경주 여행(2)

통일전과 서출지

by 슈히

통일전은 18시에 폐관하는 곳이라서, 서출지보다 먼저 둘러봤다. 폐관 전까지 관람을 마칠 수 있을까 싶어 조급한 마음이 앞섰다. 아까 수목원에서 본 연인을 통일전 출입구에서 또 마주쳤다.

"구경하는 시간이 몇 분이나 걸려요?"

"저희는 저기 연못까지만 갔어요."

여자가 대답했다. 답답한 심정에 다음으로 만난 관광객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오래 안 걸려요. 금방 다 볼 수 있어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걸음을 재촉해 계단을 올랐다. 달리진 않았으나, 엄숙하고 웅장한 건물을 향해 힘차게 전진했다. 흰색과 분홍색이 섞인 낯익은 꽃이 눈에 띄었다. 자귀나무꽃이었다.

안경 쓴 중년 여성이 혼자 입구에 서서 통화 중이었다. 아무도 없었더라면, 너무 조용하고 엄숙해서 공포가 느껴졌을 공간이었다. 건물 내부는 넓었고, 잔디가 싱그러웠다. 혹시 어디선가 뱀이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나 침착히 주위를 살폈다. 내벽에 액자들이 다수 걸려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차례대로 살피니, 신라 시대의 김유신 장군에 대한 전설들과 그림과 경주시 관광지 사진들이었다.

계단을 오를 땐, 앞만 보느라 뒤를 살피지 않았다. 그런데, 실내로 들어와 후방의 실외를 바라보니 생각지도 못한 빼어난 경치에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아, 이렇게 엄청난 광경을 나 홀로 보고 있자니 너무 안타깝다. 이래서, 혼자 여행 다니면 안 돼. 감동을 나눌 상대가 없잖아. 다음에 가을 단풍 보러 재방문해야겠네. 그땐 제발 혼자가 아니길 바라며......'

폐관 시간이 다가오는데, 두 여자가 나타났다. 관람하기엔 촉박하게 온 게 아닌가 싶어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들을 지켜봤다. 그들은 분주히 돌아다니며 뒷정리했다. 관광객이 아니라, 업무를 마감하는 근무자였다. 한편, 통화하던 중년 여성은 여전히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다.

통일전 출입구에서 안내원에게 서출지의 위치를 물으니, 그는 저쪽이라며 애매하게 가리켰다.

'근무 태도가 방만한 불친절한 직원이로군.'

다시 비가 내렸다. 차에서 우산을 꺼내 펼쳤다. 통일전을 등지고 우측으로 쭉 직진하자, 관광객 두세 명이 보였다. 그중 20대 초반으로 짐작되는 여성에게 말을 붙였다.

"서출지 어딘지 아세요?"

"몰라요."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녀는 일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행에게 서출지에 대해 묻는 배려조차 보이지 않았다. 별수 없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 서출지를 검색했다. 몇 걸음만 가면 서출지였다. 황소개구리 울음소리 때문에 귀가 먹을 지경이었다. 작은 연못에 도달하자, 황소개구리들이 내 등장을 알아차렸는지 소음은 점차 줄어들고 곧 잠잠해졌다.



경주 서출지(사적 제138호)


서출지는 경주 남산 마을 동쪽에 있는 삼국 시대의 연못이다.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천천정에 거둥하였는데 쥐가 나타나 까마귀를 따라가라 하였다. 왕이 병사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였는데, 이 못에 이르렀을 때 한 늙은이가 나타나 봉투를 주었다.

봉투에는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어 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신하가 봉투를 왕에게 바치니 왕은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 하여 열어보지 않으려 하였으나, 일관(하늘의 변이로 나라나 인간의 길흉을 점치던 관원)이 왕에게 아뢰길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이고, 한 사람은 임금입니다."라며 봉투를 열어 볼 것을 청하였다.

왕이 봉투를 열어 보니, "거문고 상자를 쏘라."라고 쓰여 있었다. 이에 왕이 궁에 들어가 활로 거문고 갑을 쏘았는데 그 안에 내전을 드나들던 승려와 궁주(왕비보다 격이 낮은 왕의 첩)가 숨어 있었다. 연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으므로 그 연못을 서출지라고 불렀다.

정월 보름날에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 지내는 오기일이라는 풍속이 생겨났다고 한다. 연못 서쪽에는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 지은 이요당이라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동물들의 도움으로 생명을 지킨 왕의 이야기를 접하자,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연꽃과 배롱나무꽃이 작은 연못을 조화롭게 수놓고, 시선을 옮기면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들이 정다웠다. 이요당도 운치 있었다. 하늘은 흐리고, 비가 내려서 우울할 법도 했지만, 명랑한 마음으로 신라 시대를 누볐다.

담벼락에서 노란 애호박꽃과 통통한 애호박을 보고, 귀여워서 미소 지었다. 순두부집이 보였으나, 영업 중인 것 같지 않아서 지나쳤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원래 인적이 드문 곳인지 알 수 없었으나 오래 머물 이유가 없었기에 금방 자리를 떴다.

통일전 주차장으로 돌아왔는데, 우산을 든 중년 여성은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녀의 소통은 영영 끝나지 않았다. 여자의 통화는 통일전 관람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진행 중이었고, 내가 통일전 관람을 마치고 서출지에 들렸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승용차에 탑승할 때까지 통화는 끝날 줄을 몰랐다. 기이한 일이었다.

'장거리 연애 중인가? 저렇게 길게 통화할 거면, 그냥 만나지 그래......(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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