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날리는 숙소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뚫고 숙소로 향하던 중, 동궁과 월지를 지났다. 몇 년 전에 가서 야경을 감상했기에, 미련 없이 지나쳤다. 차창 밖으로 분홍빛 꽃송이들이 아련히 보였다. 아마 연꽃인 것 같았다. 오래전에 동궁과 월지를 관광했을 땐 없었는데, 최근에 조성된 모양이었다. 주마간산으로 스친 거라서 부정확했지만, 규모가 꽤 커 보였다. 잠깐 들러서 구경할까 생각했지만, 숙소 주인이 일찍 입실하길 바라는 눈치여서 미련 없이 숙소로 갔다.
숙소에 도착해서 주차장이 있나 살폈는데, 공간은 있으나 협소했다. 오직 2대만 주차할 수 있었다. 주인에게 전화해 주차장에 주차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했으나, 주인은 허락하지 않았다.
"주차장 턱이 높아서, 차체가 긁힐 거예요. 다른 곳에 주차하세요."
"제 차는 차체가 높은 편이라서, 주차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주차장에 주차하는 게 안전할 것 같아요."
"차종이 뭔데요?"
"JEEP 레니게이드요."
"그냥 다른 곳에 주차하세요."
"네......"
주인이 반대하니, 별수 없이 폐업한 가게 앞에 주차했다. 숙박비가 비교적 저렴해서 좋았으나, 주차가 불편한 숙소는 불편해서 재방문하고 싶지 않다.
숙소 주인에게 동궁과 월지 연꽃 단지에 대해 물으니, 하반기에 개최될 APEC을 위해 관광 명소를 만든 것 같다고 예측했다.
"그게 뭐예요?"
"정상 회의요."
"오, 처음 들어요. 시골에서 큰 행사 하네요. 과연 볼거리가 필요하겠군요! 근데, 오늘 저 혼자 묵나요? 6인실인데, 아무도 없길래요."
"네, 다른 손님 없어요. 천안에서 기차가 운행 중단됐대요. 그래서, 손님들이 다 예약을 취소했어요."
주인은 울상이었다.
"아, 저도 올까 말까 고민했는데 그냥 왔어요. 계획 틀어지면 스트레스 받거든요. 폭우 때문에 겁이 나긴 했지만요."
한편, 서울 출신인 그녀는 경주인과 2년간 연애한 후 결혼했다고 말했다.
"와! 서울 남자도 많은데, 굳이 경주인을요? 장거리 연애 힘든데, 대단하시네요! 정말 인연은 따로 있나 봐요."
숙소에 비치된 책자와 전단을 샅샅이 탐구했다. 어디 갈만한 흥미로운 곳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유심히 들여다봤다. 굉장히 볼거리가 있진 않겠지만, 최부자댁이 괜찮아 보였다. 최부자댁은 교촌 마을에 위치했다.
연꽃에 대해 검색하니, 관찰하기 좋은 시간대는 6~8시 사이 이른 아침이라고 했다. 동궁과 월지 연꽃 단지에서 연꽃놀이 후, 교촌 마을을 거쳐 엑스포 공원으로 가는 게 합리적인 동선이었다. 사진으로 본 경주 타워는 직접 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고, 솔거 미술관에는 어떤 전시물이 있을까 기대됐다. 모두 엑스포 공원에 있는 곳들이었다. 21시경, 다음 일정을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