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경주 여행(5)

경주 타워의 안타까운 사연과 매소성 전투

by 슈히

황룡사 목탑을 형상화한 경주 타워를 육안으로 보고 싶어서, 이끌리듯 경주 엑스포 공원을 마지막 목적지로 정했다. 이곳은 오전 10시부터 개관하는데, 교촌 마을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기에 운영 시간에 맞춰 적당한 시간에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널찍하고 한산한 주차장에 단체 관광버스와 승용차 몇 대가 드문드문 보였다.

통합 입장권은 12,000원이었는데, 헌혈증 제시자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는 걸 매표소에 다다라서야 알았다. 손해 본 기분이 들어서, 안타까웠다.

'으윽, 집에 헌혈증 많은데! 이 정보를 몰라서 12,000원을 지출하는군.'

경주 타워의 웅장한 모습을 감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걸었다. 승강기를 타기 전, 안내문을 읽었다.



경주 타워 저작권자


경주 엑스포 공원의 상징이자 경주의 랜드마크인 경주 타워의 원디자인은 재일 건축가 유동룡 선생의 작품이다. 선생은 지난 2004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경주 타워 설계 공모전에서 신라 건축 문화의 상징인 신라 불탑을 유리탑에 음각으로 투영해 음양을 조화시킨 작품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지난봄, 건축 강연을 들으러 갔을 때 유동룡 씨가 설계한 방주 교회에 대한 존재를 처음 알았다. 사진으로 봐도 멋있어 보였다. 마침 제주 여행을 갈 예정이었기에, 방주 교회를 직접 보러 5월에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방주 교회를 실제로 보고 감탄했고, 유동룡 씨에 대해서도 좋은 기억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경주 타워는 설계 공모전의 최우수상이 아니라, 우수상 수상작이었다.

'보통 최우수상 수상작을 설계하지 않나? 좀 이상한데.'

의문은 곧 풀렸다. 승강기를 타고 경주 타워 꼭대기층으로 올라가서 본 기사는 지루한 송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기절초풍할 사연이었다.



중앙일보 <경주 타워 디자인 저작권자는 유동룡, 12년 만에 공식 종료된 표절 공방> - 출품작과 흡사한 타워 세워져 논란


"아버지는 완공된 경주 타워의 모습을 보고 화를 많이 내셨습니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셨죠. 지금이라도 지난날의 잘못된 과거가 바로잡혀 다행입니다."

경북 경주시 천군동 경주 엑스포 공원 안에는 특이한 모양의 건물 하나가 서 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실제 높이 82m(아파트 30층 높이)로 재현해 음각으로 새겨놓은 경주 타워다.

경주 타워 앞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유 선생의 업적을 기록한 현판을 거는 행사가 열렸다. 경주 타워 앞에 선 유이화(故 유동룡 선생의 장녀) ITM 건축사무소장은 "지난날의 잘못된 과거가 바로잡혔다"라고 했다. 무슨 말일까.

2004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 건축물 설계 공모전에 유 선생은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으로 경주 타워 설계안을 출품한다. 결과는 전체 2위인 우수상, 상금 1000만 원을 받았다.

3년이 지난 2007년 8월, 유 선생의 제자 한 명이 완공된 경주 타워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유 선생이 출품한 설계안과 매우 흡사한 모습으로 경주 타워가 세워졌다. 엑스포 측은 공모전 1위 당선작을 토대로 경주 타워 디자인을 추진했지만, 5번의 설계심의위원회를 거친 결과 첨성대를 상징화한 당선작과는 차이가 컸다.

유 선생 측은 2007년 10월, 공모전에서 당선된 건축 사무소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 형사 소송을 제기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2009년 6월, 엑스포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고, 항소심에서 손해 배상 판결이 났다. 2011년 7월, 대법원이 판결을 확정하면서 엑스포는 유 선생 측에 4200만 원을 배상했다.

유 선생은 확정 판결 한 달 전인 2011년 6월, 세상을 떠났다.



'뭐야, 경주 엑스포 왜 그랬어! 뭔가 뒷거래가 있었나? 12년간 싸워서 4,200만 원 받은 거면 금액이 너무 적네. 저작권 침해받은 것도 억울한데, 배상금이 푼돈이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엄청 스트레스 받았겠네. 그나마 2심에서 인정돼서 다행이다.'

송사에 휘말리면 정말 피곤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유동룡 씨가 가여웠다. 그는 화병을 앓다가 죽었을는지도 모른다.

경주 타워의 최고층에서 내려다본 조망은 경주 월드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그다음엔 경주 보문관광단지였다. 둘 다 아직 안 가봤다.

오래전, 미술학원에서 지도하던 초등학생 제자가 수확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경주에 가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당장 기차를 타고 경주를 방문했고, 남산을 등산한 후 경주 박물관과 동궁과 월지를 관광했다. 단풍이 다 져버린 11월의 늦가을이었다.

그 후로도 경주의 봄이 무르익을 때 불국사, 석굴암, 양동 마을 등을 찾았다. 안내 산악회를 통해 토함산을 등산했고, 자차를 몰고 단석산을 등산했다. 또, 경주 캘리포니아 비치에서 물놀이를 즐긴 추억이 있다. 경주 황리단길도 관광했으나, 규모가 작고 볼거리가 없어서 다소 실망했던 적이 있다.

이만하면 경주 여행 꽤 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경주에 안 가본 곳이 더 남았다. 시내에서 약 40km 떨어진 외진 해변에는 주상절리도 있다고 여행 안내문을 통해서 알았으나, 굳이 거기까지 고생해서 가야 하나 싶었다.

카페 선덕에 들러 괜찮은 간식거리가 있나 살펴봤으나, 딱히 없었다. 한 바퀴 빙 둘러본 후, 승강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바닥의 안내 글자를 보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폭우가 쏟아져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조심조심 걸었다.

'후, 사서 고생이로군...... 이런 날씨에 야외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들 집에 있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나온 거겠지.'

천마의 궁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매소성 전투라는 게임이었다. 공을 던져서 매소성을 함락시키는 게임인데, 공중에서 바위가 떨어지고 군사들이 창으로 공격하며 방어했다. 혼자 움직이며 전쟁을 치루려니, 힘에 부쳤다.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우측으로 넘어질 뻔했다. 당황해서 그만 웃음이 나왔다. 혼자 끙끙 고전하는데, 다른 관광객들이 와서 전투를 도왔다. 결과는 가장 낮은 성적이었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도 공을 던지며 매소성 전투를 시작했다. 두세 명이 한꺼번에 공을 던지니, 수월했다. 그런데, 결과는 역시 가장 하위 점수였다. 여럿이 해도 나 혼자 치른 전투와 결과가 같아서, 다소 허무했다.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던 중년의 남자가 공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젊다, 젊어(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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