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머리 해안과 주상절리
전날, 내비게이션을 보고 맞게끔 찾아갔으나 숙소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숙소 주인에게 전화해 문의하니, 이사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숙소 주소를 검색하면, 그렇게 나오나요?"
"네. 잘못 왔어요? 그럼, 여기가 아닌가요?"
"제가 아까 문자로 주소 보내드렸잖아요. 거기로 오세요."
숙소에 도착하자, 바로 옆에 주차장이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차를 옮기지 않은 채 그냥 짐을 풀었다.
이튿날 조식을 맛있게 먹고, 짐을 모두 싸서 여유롭게 숙소를 나섰다. 명랑한 하늘과 쨍한 햇빛을 보니, 상쾌했다. 그런데,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엄청 헤맸다.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며, 골목을 뱅뱅 돌았다. 여기가 거기 같고, 아까 거기가 여기 같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속이 바싹 타들어갔다.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한 어제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거리는 한산했고, 붙잡고 길을 물을 행인조차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시골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상황이었다. 평일에는 영업하느라 분주하지만, 주말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경과했을까? 주차장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미로에서 드디어 벗어났구나. 오, 아까운 내 수명......'
모슬포를 떠나 처음으로 닿은 곳은 알뜨르 비행장이었다. 올레길을 걸을 때 이미 와본 곳이라서, 익숙한 풍경이었다. 예전에 못 보던 만화가 있길래,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영문도 모르고 죽임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사후 67년 후에야 인정받았구나. 피해자들은 저승에 가서도 한이었겠고, 유가족들 역시 여생이 고통이었겠다. 아, 상상만 해도 정신병 걸릴 것 같아!'
섯알 오름 예비 검속자 학살터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탄약고였는데,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이 폭파시켜 웅덩이가 남게 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으로 민족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며 '예비 검속'이라는 명목으로 마을 창고에 주민들을 가둬놓고 관리하였는데, 제주에서만 1,00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무차별 검거되었다.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모슬포 경찰서로 강제 연행되어 인근 창고에 나누어 수용되었다.
1950년 7월 16일과 8월 20일, 한국군은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리자 예비 검속됐던 250여 명을 무차별 사살하였다. 1950년 8월 20일 새벽, 트럭에 실려가던 희생자들이 죽음을 예측하고 신고 있던 고무신을 트럭 밖으로 집어던져 가족들에게 가는 길을 알리려 했다. 군은 250여 명을 학살한 후,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시신을 암매장하였다. 유족들은 웅덩이에 엉켜있는 시신이나마 수습하려 하였으나, 군은 수습된 27구마저 다시 묻도록 강요하고 유족들에게조차 횡포를 부렸다. 억울한 죽음을 품은 섯알 오름은 이후 군인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으며, 유족들은 공포와 설움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56년 3월 19일 새벽, 한림 지역 유가족이 61구를 수습하여 '만벵디 묘역'에 안장하였다. 1956년 5월 18일, 백조일손 유가족이 어렵사리 당국의 허락을 받아 양수기로 구덩이 물을 빼고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지만, 이미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유골이 대부분이었다. 신분이 확인된 17구는 각자 개인 묘지에 안장되었고, 132구는 '백조일손지묘'에 안장하였다.
1960년 4.19 이후 유족들은 민주 정부에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명예 회복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1961년 5.16 군사정변 시, 탄원서는 유족에게 반환되었다. 1961년 6월 15일 군사 정권의 지시로, 경찰은 기존에 만들어진 묘지마저 해체하고 위령비도 파괴하였다. 제주도는 2007년 국가의 지원을 받아 국방부 소유 학살 터를 매입하고 4년에 걸쳐 학살 터 정비 사업을 시행하였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노력과 2015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의 원고 승소 판결로, 희생자들은 67년 만에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 섯알 오름 예비 검속자 학살터 만화 일부 요약
백조일손지묘: 신분이 파악되지 않은 유골의 유족들은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에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
산방연대를 지나, 용머리 해안에 도착했다. 한라봉과 바닐라가 반씩 섞인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곁에서 한 여자가 날 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 한라봉 아이스크림도 있었네!"
그녀의 손에는 이미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는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맛이었다. 아마, 그녀는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내가 싱긋 웃으며 한마디 했다.
"하나 더 드시면 되죠."
그러자, 그녀가 웃었다.
제주 사계리 용머리 해안(국가 자연 유산 천연기념물)
용머리는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이다. 한라산과 용암 대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인 약 100만 년 전에 얕은 바다에서 발생한 수성 화산 활동으로 인해 형성되었다. 화산 분출이 끝나고 오랜 기간 파도에 쓸려 화산체가 깎여나갔는데, 그 형태가 마치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아 용머리라 부르게 되었다.
탐방로를 걷다 보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쌓여 있는 화산재 지층들을 볼 수 있다. 이는 화산 분출 도중 3회에 걸쳐 분화구가 막히고, 이동하면서 서로 다른 방향에서 화산 물질이 운반되어 쌓였기 때문이다. 성산일출봉, 수월봉과 달리 화구가 이동하며 생성된 특이한 지질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
용머리 해안은 제왕의 탄생을 우려한 진시황의 사자 고종달이 혈맥을 끊기 위해 용의 꼬리를 자르고, 허리를 두 번 내리친 다음 머리를 자르자 피가 솟구쳐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 용머리 해안 안내문 요약
하멜 표류지 상륙 해안
네덜란드인 하멜과 선원들이 상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난파하여 제주도에 도착한 최초의 상륙 해안지점. 하멜은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린 최초의 서적 '하멜 표류기'를 조선에서의 13년간 생활을 토대로 완성한다. - 안내문 요약
이곳도 역시 예전에 올레길을 걸으며 지난 곳이다. 그땐 도보 여행이었기에 시간에 쫓겨서 미처 둘러보지 못했다. 하멜을 기념하는 거대한 배가 한 척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매표원에게 질문하자, 그녀는 답변했다.
"너무 낡아서, 몇 개월 전에 철거했어요."
"아, 그래요? 아쉽네요!"
당시, 언젠가 재방문해서 둘러봐야지 하고 다짐했으나 너무 늦게 온 모양이었다.
"입장하실 건가요?"
"아, 입장료 얼마죠?"
비용은 저렴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관람도 안 하고 그냥 가기엔 아까우니 입장하기로 결정했다.
'아직도 제주는 볼거리가 무궁무진하구나! 블랙야크 인증 아니면, 아마 올 일이 없었겠지. 덕분에 구경하네!'
자연이 빚은 거대하고도 기괴한 암벽은 마치 해골 얼굴을 연상케 했다. 하늘이 어찌나 청아한지,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푸른 하늘을 품은 바닷물을 잠시 들여다봤다.
'예쁘다!'
관광객 무리 중 누군가 내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길래, 응했다. 그리고, 답례로 내 모습도 남길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있었는데, 또 다른 관광객이 내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했다. 혼자 온 나를 향한 타인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아, 아까 이미 찍었어요. 고마워요."
용머리 해안은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값을 톡톡히 했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지질을 관찰했다는 보람을 느꼈다.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나왔다. 출구엔 지키고 서있는 관계자가 아무도 없었다.
'어, 뭐야. 여기로 그냥 들어가면 관람료 공짜잖아? 경비가 허술하군!'
천천히 걸어 나오니,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이 보였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산방산 바이킹에는 '외로워요! 껴안아 주세요!'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보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주상절리였다. 2009년, 제주에서 주 6일 근무하며 휴일마다 제주를 열심히 누비며 본 주상절리가 떠올랐다. 수면에서 배에 탄 채 봤다. 그땐 특별함을 느끼지 못해서, 작년에 올레길을 걸을 때도 주상절리는 그냥 지나쳤다. 올레길을 다닐 땐 피로가 누적돼서, 많은 관광지를 그냥 놓쳤다. 블랙야크 인증을 하기 위해 재방문하고, 입장료까지 결제하자 이번마저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역시 입장료는 저렴했다. 시간은 촉박했으나, 마지막 방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역시, 유료 관람은 뭔가 달라도 확연히 달랐다. 오래전에 올려다본 주상절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마치 솜씨 좋은 석공이 다듬기라도 한 듯, 육각형의 반듯한 모습이 질서 정연했다.
'이게 자연이 만든 작품이구나! 신기하고도 멋지다! 와, 이런 감동적인 광경을 보는데 곁에 아무도 없다니! 진짜, 혼자 오길 너무너무 잘못했다! 어차피 함께 올 사람도 없긴 하지만(계속).'
주상절리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수축 작용 때문에 수직으로 쪼개져 생기는 육각형의 돌기둥이다. 주상절리는 중문, 천지연, 천제연, 안덕 계곡, 산방산 등 제주도 전역에서 볼 수 있다. - 안내문 요약
중문대포 주상절리대
중문대포 주상절리대는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대포동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약 2km에 걸쳐 발달했다. 주상절리대는 '녹하지악' 분화구에서 흘러온 용암이 지표에서 천천히 식으면서 형성된 것이다. 기둥 모양으로 쪼개지는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천천히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수직으로 쪼개지면서 만들어지는데, 대체로 5~6 각형의 기둥 형태가 흔하다. 거북이의 등 모양과 비슷하여 '거북등절리'라 한다.
현무암질 용암에서 주상절리는 약 900도에서 만들어진다. 용암이 빨리 식을수록 주상절리 기둥의 굵기는 가늘어지고, 주상절리 표면에 발달한 띠구조의 간격은 좁아진다.
주상절리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 형성된다는 것은 잘못된 사실이다. 뜨거운 용암이 찬 바닷물에 닿으면, 둥근 베개 모양의 구조가 된다. - 안내문 요약
https://www.jeju.go.kr/geopark/tour/video.htm?act=view&seq=1221465
https://www.jeju.go.kr/geopark/intro/daepocoast/acavalue.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