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완등기
블랙야크 한북정맥을 만난 시점은 2021년 8월, 무더운 여름이었다. 안내 산악회를 통해 전세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서 사패산(552m)과 Y계곡 입구(736m)를 인증했다. 그땐 그저 간 김에 인증한 터여서 완주할 마음은 크게 없었다.
가랑비가 내리는 초봄이었다. 힘든 산행은 하기 싫고, 낮은 산이나 몇 개 타볼까 해서 북상했다. 파주 장명산, 고양 금정굴, 고봉산성과 견달산, 북한산 전망대, 중고개재 등을 갔는데 등산이라고 하기엔 해발고도가 낮았다. 너무 시시해서, 곧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날 비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혼자 온 남자 등산객이 출차하지 못해 곤란을 겪는 모습을 목격했다. 바퀴가 계속 헛도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2022년 3월이었다.
같은 해 6월, 안내 산악회에서 양주 불곡산 임꺽정봉(449m)을 산행했다. 펭귄 바위와 악어 바위를 봤는데, 악어 바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진짜 악어처럼 징그러워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신기해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당시 등산하던 중 대화한 내용이 재밌다고 생각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어르신: 요즘 여성 등산복은 참 아름답게 나오네!
슈히: 제가 입어서 예쁜 겁니다^^
슈히: 오빠는 순두부 같은 남자라며?
기복: 너는 아이셔 아니고, 왕셔!
이날은 마침 내 생일 전날이어서, 셋이서 조촐히 생일잔치를 했다. 하산 후,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자르고, 지인들이 축하 노래도 불러줬다. 유쾌한 시간이었다.
반년 후, 서울을 방문했다. 우이령 갈림길(550m)을 가기 위함이었다. 전날 당일치기로 거제에 다녀오느라 너무 피곤했으나, 일정을 연기하거나 취소할 수 없었다. 가자고 제안한 이는 나였기 때문이다. 지인과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로 가까워질수록 반가운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첫눈이 내렸다! 남쪽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소식이라서, 반가웠다. 눈이 내린 탓에 평소보다 산길이 험했고, 그만큼 시간도 지체됐다. 동행도 상당히 버거워했다. 최대한 서둘렀지만, 눈물을 머금고 예매 기차표를 취소해야만 했다.
도봉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머리가 자꾸 기우는데, 아는 동생이 어깨를 빌려줬다. 화들짝 놀라서, 잠이 확 달아났다. 첫눈 내린 날! 낭만적인 순간에 혼자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었다.
2023년에는 한북정맥에 발길을 뚝 끊은 시기였다. 다른 인증지를 다니느라 바빴다. 블랙야크 섬 앤 산과 백두대간을 완등한 후, 양주를 찾았다. 2024년 11월, 가을이 무르익은 시기였다. 천보산 3보루(262m)와 호명산(425m)을 혼자 오르내렸다.
천보산에서 길을 헤매느라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돼서, 은사님과의 약속에 늦고 말았다. 고양에 거주하는 선생님은 그간 늘 지각생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웬일인지 제시간에 나와 있었다. 결과적으로 상대를 무려 1시간이나 기다리게 해서, 너무 미안했다.
제일봉(516m)은 굉장히 험해서, 혼자 가기 싫었다. 험준한 백두대간을 누비며 체력이 향상된 덕분인지, 제일봉이 썩 힘들진 않았다. 반면, 선생님은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는 당뇨가 있는데도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게다가 흡연까지 하니, 체력이 갈수록 저하되는 듯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선생님에게 금연과 운동을 권유하였으나, 운동을 즐기지 않는 그는 개선할 마음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블랙야크 한북정맥은 총 26개이고, 절반까지 다닌 후 한동안 또 까맣게 잊고 지냈다. 시간은 흘러, 2025년이 됐다. 무더운 7월, 한북정맥을 또다시 찾았다. 포천을 산행하며, 경기 북부인들을 만났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