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동갑이 너무해

시절인연

by 슈히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운동하는 기관에서였다. 옷을 갈아입는데, S가 다가와서 물었다.

"배에 난 상처는 뭐예요? 출산 안 했잖아요."

"수술 자국이에요. 아버지한테 간 이식 수술해 드렸어요."

"어머, 간 이식 수술했어요? 나도 했는데!"

"아, 그래요? 우리는 간 기증자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S는 내게 연락처를 먼저 물었고, 만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무려 열두 살 차이가 나는 띠동갑이었다. 또래가 아니라서 다소 불편했지만, 일단 S의 신청을 수락했다. 내가 사는 동네로 그녀가 와서 점심 식사하고, 카페에서 후식을 먹으며 대화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같은 해에 같은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았다. 내가 입퇴원 한 시점은 그녀보다 무려 3개월이나 앞섰다. S는 남동생과 둘이서 어머니에게 간을 이식했으나, 어머니는 곧 돌아가셨다고 한다.

"저도 친오빠랑 아버지와 셋이서 간 이식 수술했어요. 지금도 아버지는 살아 계시지만, 저는 가족과 인연을 끊었어요. 화목한 가정, 세상에 별로 없대요."

딱한 가정사를 들은 S는 연민의 감정으로 나를 보살폈다. 타인의 관심과 애정이 고마웠다. 우리는 종종 만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언니는 닳아 해진 화장품 주머니를 들고 다녔는데, 보기 안쓰러워서 예쁜 제품으로 하나 선물했다. 그녀는 밥을 잘 사는 편이었고, 주로 내가 얻어먹는 입장이었다.

무더운 여름, 우리는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했다. S는 체력이 좋았다. 언니는 1,000m 수영을 쉬지 않고 거뜬히 해냈다. 반면, 수영 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500m도 간신히 수영했다. 그녀는 수영 경력 10년 이상이라는데, 대회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언니, 수영 대회에 왜 안 나갔어요?"

S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실력이 부족해도 경험하고 도전하는 나와는 달리, 언니는 무모하게 도전하지 않는 편이었나 보다.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수영 대회에 왜 안 나갔냐고 물었을 때, 기분이 언짢았어요."

"수영 대회 경험자라서 말하는 건데, 대회 준비 정말 힘들고 피곤해요. 그냥, 나가지 마세요!"

S가 나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표현했을 때, 놀랐으나 사과하지 않았다. 나 역시 언니에게 불만이 있었다.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하기 전에 깨끗이 씻고 입수해야 하는데, S는 목욕하지 않고 바로 수영복을 입었다. 한참 나이 어린 동생 입장에서 하늘 같은 언니에게 청결에 대해 잔소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잠자코 있었다.

한편, S는 정치와 투자에 관심이 많았다. 언니는 가끔 내게 정치, 투자 관련 영상을 보냈다.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차원에서 그 영상을 한 번 들여다보긴 했다. S가 내게 책과 드라마를 추천하면, 빠른 시일 내에 찾아서 보고 감상을 전했다.

대조적으로, S는 내 관심 분야에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런 점이 서운했으나, 내색하면 싸우게 될까 봐 표현하지 않았다. 심지어, 수영 대회에 대한 후기를 작성해서 그녀에게 공유했으나 그녀는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무관심한데, 날 좋아한다고? 말만 번지르르하네.'

가정 주부인 S는 한가한 듯 보였지만, 늘 바쁘다고 했다. 언니는 월세를 받는 건물주여서, 가끔 건물을 관리하러 외출했다. 그녀는 배우자와 자녀를 돌봐야 하므로, 가정이 곧 일터였다. S가 자신의 고충을 내게 털어놓을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외엔 달리 내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이 없었다. 언니는 그 점에 대해서 내게 아쉬움을 표했다.

"저는 미혼인데, 뭐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저, 언니 이야기를 듣기만 할 뿐이죠."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 어느 화창한 가을날,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터졌다. 예쁘게 차려입고, 화장하고 국화 축제에 가서 꽃놀이를 하고 싶었다. S에게 연락해 점심을 사겠다고 말했다. 언니는 수락했고, 우리는 축제장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녀는 안전모를 쓰고, 운동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탄 채 나타났다. S를 보자마자, 실망하고 말았다.

"언니, 자전거를 타고 오시면 어떻게 해요. 계속 끌고 다녀야 하잖아요. 그리고, 좀 예쁘게 꾸미고 오시지......"

"어머, 내가 안 예쁘다고? 난 네 내면에 실망했다! 자전거를 내가 끌지, 네가 끌고 다니니?"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그런데, 저는 운동복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요. 언니가 자전거를 갖고 나와서, 버스나 택시를 못 타잖아요. 그래도, 약속했으니 점심은 제가 살게요."

S는 내내 자전거를 끌었다. 자전거 때문에 계속 걸어야만 했다. 결정적인 일은 연달아 발생했다. S와 통화하던 중, 언니가 대뜸 말했다.

"직장, 안 다녀봤지?"

"직장 다녀서 번 돈으로 대학원 등록금 냈어요. 2년 5개월 다니던 회사가 코로나 시기에 재정적으로 어려워져서, 그때 퇴사했죠. 저도 고생 많이 했어요."

그녀의 질문에 당황스러웠으나, 유선상으로 차분히 대답했다. 그리고, 하루 동안 생각했다.

'얼마나 무능력해 보였으면, 내가 회사 생활 한 번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건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날 S에게 문자를 보냈다. 불쾌한 감정을 부드럽게 표현했으나, 그녀는 별 반응이 없었다. 과연 세대 차이일까, 성격 차이일까? 언니와 점점 소통이 안 되고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띠동갑 친구와의 우정은 서로에게 흠집을 낸 채, 조용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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