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어쩌다, 수영 대회(하)

단체전과 개인전

by 슈히

수영 대회는 9월 마지막 주말에 이틀간 진행됐는데, 나와 수영 동호인들은 일요일에만 참가했다. 토요일 밤, 대회 전날이라서 그런지 잠이 안 왔다. 게다가, 늦은 시각까지 외부에서 계속 음악 소리가 들려서 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며 괴로워하다, 문득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전원이 꺼져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 40분이었다.

'악, 늦겠는걸! 서둘러야겠다. 알람을 맞춰 놓고선 휴대전화를 꺼놨네. 제정신이 아니군.'

5시 30분, 인천 박태환 문학 수영장에 도착했다. 깜깜한 밤,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가을비가 내리고, 우비를 입은 주차 요원이 비를 맞으며 주차 안내 중이었다. 인공 암벽 옆에 주차했다. 몇 시간 뒤, 차에서 쉬려고 주차장에 돌아왔으나, 주차한 위치를 잊어서 한참 헤맸다. 그 과정에서 흙탕물에 신발과 발이 젖었다.

'타들어가는 지금 내 심정처럼 까맣군.'

잠을 잊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 관계자는 대회 접수 QR 코드를 확인하고, ID 카드와 기념품을 건넸다. ID 카드와 신분증이 반드시 있어야만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기념품은 배럴 반소매 상의, 샴푸, 음료, 과자 등이었다.

3층 관람석에서 수영 동호인들과 합류했다. T와 Y가 나보다 먼저 와있었고, H와 N이 나중에 합류했다. E가 가장 마지막으로 대회장에 도착했다. 8시, 혼성 계영 200M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떨려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친절하고 다정한 성격의 E가 내게 조언했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완주하는 걸 목표로 삼으세요! 느려도 괜찮아요."

몇 주 전, T의 도움을 받아 50M 기록을 측정했다. 당시 함께 수영하던 한 여성이 내게 기록을 물었다.

"몇 초 나왔어요?"

"55초요."

"오, 철인 3종 준비하시는 거 어때요?"

"네? 50M도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철인이라뇨!"

웃지 못할 일이었다. 철인 3종에서 수영은 자그마치 1,500M라고 했다. 심지어 그녀는 대회 우승자였다.

"20대 때 얘기예요. 20대들은 철인 안 나오거든요. 돈이 많이 드니까요. 보통 30대 들어서면서 대회를 시작하죠."

배럴 수영 대회 영상을 통해 이미 30초대가 순위권, 꼴찌가 40초대인 걸 이미 알기에 내 기록은 실망스러웠다. 계영 순서를 정하기 위해 수영 동호인들에게 내 기록을 말하자, E가 물었다.

"몇 초 나오셨나요? 궁금!"

"55초요. 쭈글......"

민망했지만,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래도 1분 안쪽이신데요? 괜찮아요.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H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자유형이요??"

"네......"

배럴 수영 대회 영상을 참고하면, 심지어 60초를 넘기는 수린이도 있었다. 놀랐다.

'그 실력으로 어떻게 대회를 나간담? 뭐, 자기만족이긴 하지......'

가장 느리기에, 혼성 계영 마지막 주자 4번으로 나섰다. 경기장에서 1, 3번은 좌측이고, 2, 4번은 우측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좌측 참가자들만 스타트 대에서 출발하고, 우측 참가자들은 데크에서 출발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계자에게 질문했다.

"여긴 왜 스타트 대에 안 서요?"

"저쪽은 수심이 깊어서 다이빙하는 거고, 여긴 수심이 얕으니 데크에서 출발해요."

관계자가 대답했다.

'이걸 대회 당일 경기 직전에 알다니......'

3번 주자 Y가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다가왔다. 그가 완전히 도착해 손을 뻗는 것을 확인한 후, 몸을 날려 입수했다. 그런데, 그간 우려하던 일이 기어이 벌어지고 말았다. 눈에 있어야 할 수경이 코에 걸렸다.

'제길! 이런 변이 있나. 여기서 멈추면, 실격이겠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자!'

수경을 고쳐 쓰느라 멈추면, 혹시라도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앞서 다른 주자들이 열심히 했는데, 마지막 주자인 내가 모두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경을 바로 쓰지 않고, 그냥 헤엄쳤다. 수경이 얼굴을 압박해서, 호흡하기가 어려웠다.

'진짜 죽을 맛이다. 대회고 뭐고, 그냥 포기하고 싶다! 그래도 가야지......'

시간이 지난 후, 대회 참가자에게 이 일화를 말했다.

"수경이 벗겨졌는데, 정지하면 실격당할까 봐 그냥 그 상태로 갔어요. 와, 죽는 줄 알았지 뭐예요?"

"멋있다......!"

그가 감탄했다.

"그때, 온갖 생각이 다 들었어요. 여기서 나 죽으면 119 구조대 부르나? 인공 호흡하나?"

"하하, 실내 수영장에서요?"

그는 고수의 기운이 완연한 남자였는데, 초보의 대회 첫 경험을 귀엽게 보는 시선이었다.

"다행히, 실격 안 당했어요. 느려도, 저 끝까지 완주했어요. 그게 제 목표였고, 이뤘으니 성공한 거죠."

"앗, 저 실격당했는데......"

남자가 대답했다.

"네? 왜요? 실격당한 분들 꽤 많던데, 이유가 대체 뭐예요?"

"평영은 출발할 때 돌핀킥 1회, 손동작 1회 해야 돼요. 그런데, 저 손동작을 안 해서 실격됐어요."

고수의 실격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내 경우엔 출발 시 아예 돌핀킥을 하지 않았는데, 그건 다행히 실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E에게 말하자, 그녀가 이렇게 설명했다.

"돌핀킥은 수심에서 가장 빠르거든요. 아예 안 하는 건, 상관없어요.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고 기록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요."

대회 참가자들을 관찰하던 중, 놀라운 점은 몸매 좋은 사람이 많다는 점이었다. 역삼각형 몸매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여성을 발견했다. 분명 여자인데, 가슴도 골반도 없어서 완전 남성형이었다.

'완전 선수 체형인데!'

남자들도 탄력 있는 근육질 체형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슴도 빵빵하고, 복근도 선명했다. 눈이 즐거웠다.

'와, 저런 몸매 유지하려면 평소에 운동량이 엄청나겠다! 일반인 몸매가 아니야.'

올해 상반기, 백화점을 둘러보던 중 눈에 띄는 수영복을 발견했다. 민트색 바탕에 와플이 그려진 하이컷 나이키 수영복이었다. 이 제품을 탐내자, 전 남자친구는 화이트 데이 기념으로 수영복을 내게 선물했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매장에서 사는 것보다 좀 더 저렴했다. L을 주문했으나, 입어보니 작았다. 제품 설명서를 보니, 원래 팽팽한 게 정상이니 안심하라고 쓰여있었다.

'아무래도, 살을 빼야겠군. 이 꼴은 곤란해!'

겨우내 살이 올라서, 체중 감량이 시급했다. 비싼 영양제를 먹고, 열심히 운동해서 약 6kg을 뺐다. 수영 강습하기 전에 한 여성이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비누칠도 안 하고, 수영복을 바로 입을 수가 있어요? 날씬한 사람은 역시, 다르구먼!"

"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수영복이 작아서 저한테 안 맞았어요. 이거 입으려고 살을 뺐어요. 그래서, 지금은 입을 수 있는 거예요."

나이키 수영복은 여전히 딱 달라붙었다. 살을 빼니, 가슴이 소멸돼서 납작했다. 안타까웠으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수영 대회 때 당당히 이 수영복을 입었다.

혼성 계영을 무사히 마치고 수면 밖으로 나가자, E가 내 짐을 들고 다가와 두 팔을 벌렸다. 그녀와 가볍게 포옹했다.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그녀의 밝은 목소리 덕분에 한숨 돌렸다. 2층에서 배럴 상품 50% 할인 중이길래, 판초 타월 점퍼를 하나 구매했다. 원가 99,000원을 반값에 얻었다. E에게 말하자, 그녀는 약 20만 원 이상이나 구매했다.

이어서 바로 50M 평영 개인전이 진행됐다. 나를 제외한 동호인들은 모두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밖을 보니, 장대비가 쏟아져서 밖에 나가는 건 곤란했다. 복도는 이미 다수가 돗자리를 깔고 점령한 상태여서,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식사를 제대로 못했기에, 무척 시장했다. 편의점에 들러서 샐러드를 하나 집어 들고 관람석 구석으로 이동했다. 아까 한 관계자가 어느 관객에게 관람석에서 과일을 먹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모습을 봤기에, 관리자의 시선을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갈색 피부의 여자와 대화하며 식사했다. 그녀가 속한 수영 동호회는 총 16명이 출전했고, 분위기가 좋았다. 서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우리 6명은 각자 자차 주행해서 오고, 숙소도 다 따로 잡았는데! 안 친해서 안타깝군.'

흰 피부의 남자가 웃는 낯으로 다가오길래, 인사했다.

"이 모임은 인천 거주자시라면서요? 경기장이 가까워서 좋으시겠어요. 전 멀리 대전에서 왔어요."

"와, 대전이요?"

"네, 시골이요."

그러자, 남자가 웃었다.

"광역시인데, 시골이라뇨."

그가 내게 팀 이름을 묻길래, OOO라고 대답했다.

"OOO 나오면, 꼭 볼게요."

"보지 마세요."

미소를 띄며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나중에 복도에서 그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정말 OOO의 평영 경기를 쭉 지켜본 모양이었다.

"경기 봤는데, 한 분이 굉장히 느리시더라고요."

"아, 그래요? 전 다 보진 못하고, 1명 경기만 봤어요."

불확실하지만, 느린 사람은 아마 N일 거라 예상했다. 관람석에 앉아 있는데, E의 본명이 전광판에 나오길래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E는 간발의 차이로 4위를 했지만, 40초대, 4위였다.

"터치 패드가 손에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아쉽게 3위를 놓쳤네요."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야외로 향했다. 현재 평영 진행 중이니, 내 순서인 50M 자유형은 시간이 한참 지나 오후에나 시작할 것으로 예상됐다. 게다가, 남자 경기가 먼저라서 여자 순서는 훨씬 더 기다려야만 했다.

출입문을 나서자, 벤치에 앉아 대화하는 남자 참가자들이 보였다. 한 명은 컵라면을 손에 들고 있었다.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다. 남자는 이번이 4번째 참가이고, 매년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수영 잘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과거에 수영 선수였어도, 등록이 안 돼있으면 일반인이라서 이 대회에 참가 가능하거든요."

"그건 불공평하지 않나요? 부당해요. 아까 보니까,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선수보다 빠른 분도 계시던데요? 생활 체육 대회인 줄 알고 참가했는데, 이건 선수들 잔치잖아요. 과연, 전국 대회는 수준이 다르군요."

"맞아요. 그렇죠."

여러 참가자들과 대화하다 보니, 선수급인 도전자들이 너무 많아서 대회의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50M 자유형을 준비하는데, E가 다가와 영양제를 건네며 격려했다.

"완주를 목표로 다치지 말기!"

"고마워요."

긴장해서 꽁꽁 언 마음이 그녀 덕분에 조금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순서를 기다리며, 참가자들과 계속 대화했다. 고양이상 20대 여성은 웃으며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저는 엄마 따라서 초등학생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어요. 다른 운동은 땀 흘리면 찝찝한데, 수영은 수중에서 하는 거라서 그럴 일이 없어서 좋아요. 다른 운동은 따로 안 하고, 오직 수영만 해요. 기록은 30초 대요."

주근깨가 많은 30대 남성은 다소 거만했고, 졸려 보였다.

"처음엔 거절했는데, 주변에서 하도 권유해서 대회에 나오게 됐어요. 제가 수영에 소질 있대요. 기록은 30초 대 나와요. 2년간 10회 이상 대회에 참가했네요. 오늘 좀 피곤해서, 늦게 왔거든요. 기권할까 생각했어요."

한편, 기권한 참가자들도 꽤 있었다. 내가 속한 2그룹 11조는 원래 8명이 한 조인데, 6명만 참가했다. 덕분에 꼴찌인 나는 8위가 아니라, 6위가 됐다. 경적이 울리고, 다들 수중으로 뛰어들었다. 난생처음 다이빙대에 서니, 긴장됐다. 남들이 뛰는 걸 보고, 뒤늦게 나 역시 몸을 날렸다.

다행히 이번엔 수경이 벗겨지지 않았고, 깔끔하게 다이빙했다. 숨이 막히고,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갔다. 고작 50M지만, 태평양을 가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록은 평소대로 나왔다.

"꼴찌인 건 안 비밀!"

단체 대화방에 수영 대회 결과를 공유했더니, 위로의 말을 들었다.

"성적이 안 좋으시니, 정감이 가네요. 인간미 있어요."

"제 목표는 실격 안 당하기였고, 성공했어요. 만족합니다."

한 수영 동호인은 20대 시절에 대회에 나가 30초대 기록을 달성하고, 이후 대회에 흥미가 없어져서 더 이상 출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많은 수영인들이 운동선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년 대회에 도전하는 이유는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 또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 아닐까?(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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