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이 잠든 곳
청령포에서 장릉은 지척이었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적당히 있었고, 청령포에 비하면 매우 한산한 편이었다. 발권을 위해 매표소로 다가가니,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안내문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 드디어 왔어!'
무덤에 특별한 건 없겠지만, 역사 현장을 방문했다는 점만으로도 벅차올랐다.
조선왕릉 세계유산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출처: 안내문)
내부로 들어가니, 좌측은 전시실이었고 우측은 능이었다. 능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오전이라서 다소 쌀쌀한데, 반소매를 입은 여자 어린이가 지나갔다.
'벌써부터 저렇게 벗으면, 정작 여름에는 뭘 입으려는 걸까......?'
자녀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들이 많았다. 아버지들은 어디 있는 건지, 도통 보이지 않았다. 호젓한 오솔길을 걸어 올랐다. 소나무 한 그루에 명패가 있었는데, 안내문은 없었다. 소나무의 정체는 나중에 전시실에서 영상을 보고 알게 됐다.
정령송(정순왕후의 애달픈 사연을 지닌 소나무)
세조 3년(1475),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영월에 유배되자 정순왕후는 군부인으로 격하되었다가 관비가 되었다. 그녀는 단종을 평생 추모하다 82세로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였다.
'와, 굉장히 장수했네! 조선시대에 어떻게 저리 오래 살았지? 82세면, 요즘 시대에도 장수에 속하는데 말이야. 부인이 남편 몫까지 한참 살다 갔네. 어휴, 평생 과부 팔자가 얼마나 서러웠을까!'
전시실 안내문에 따르면, 정순왕후 선발대회라는 것이 있다. 정순왕후의 슬픈 세월을 위로하고 그 애틋한 마음을 기리고자 1998년부터 시작됐고, 이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단종제는 1516년 중중 11년에 왕명으로 단종의 기일인 10월 24일과 설, 단오, 추석, 동지에 제물을 준비해 군수로 하여금 제향을 올리게 하고, 묘지기를 둘 것을 하명한 것이 시작이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1967년부터 영월군민들이 '단종문화제'로 발전시켜 거행해 온 것이다.
영월군민의 '단종문화제'는 모두가 대동단결할 수 있는 창조의 에너지를 재생산하는 뜻깊은 문화제이다.(김의숙, 한국의 축제: 영월의 향토축제-단종문화제에 대하여, 국제아세아민속학 학술저널, 1998)
비운의 왕 단종, 국장 재현 행사
단종은 조선조 27대 임금 중에서 유일하게 국장을 치르지 못한 임금이다. 승하한 지 550년 만인 2007년에 단종문화제에서 국장을 치르는 의식을 거행했다. 1,000여 명의 영월 군민이 직접 행렬에 참여하여 장관을 이룬다.(출처: 안내문)
짧은 등산을 마치고, 단종릉에 도착했다. 남자 어린이가 귀여운 자세를 취하자, 어머니가 놓칠 세라 연신 사진을 찍었다. 불만스러웠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경건해야 할 장소에서 촬영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한 여성 관광객은 단종의 슬픈 사연을 떠올렸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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