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미술관과 지슬
2021년 6월 29일 화요일, 3개월 연속으로 제주에 왔다. 내가 4, 5월에 제주도에 갔더니 지인들이 다들 부러워했다. 그러던 중, J 언니가 내게 여행을 제안했다. 그녀는 시외에서 거주 중인 터라, 각자 다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우리는 둘째 날에만 함께할 수 있었다. 여행 첫째 날 아침 일찍 제주공항에 도착 예정이고, J 언니는 오후에 느지막이 당도해 호텔에 입실할 계획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설상가상으로 역류성 식도염과 기침으로 고통받는 중이었다.
그런 까닭에, 첫째 날 혼자 관광했다. 제주공항에서 서귀포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약 90분을 달렸다. 환승을 하기 위해 하차 후 버스를 기다리는데,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
첫 번째 목적지인 이중섭 미술관은 예약제로 운영 중인데, 현재 코로나 탓에 인원 제한이 있기에 예약 시간을 넘기면 남은 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겠다 예상됐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동 시간이 촉박했다. 조바심이 들어서, 버스 대신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 기사는 처음부터 내게 반말을 했다.
“어디 가?”
기분이 언짢았으나,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길래 잠자코 대답했다.
“호텔이요. 여기 주소대로 가주세요.”
버스를 타면 정류장 3개의 거리인데, 택시를 타니 과연 금방 도착했다.
“여기 맞아?”
택시 운전사가 내게 질문했다. 영어로 된 간판이 보였다.
“모르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아니, 왜 몰라?”
그는 내게 갑자기 버럭 소리를 치며 역정을 냈다. 당황해서 소리쳤다.
“초행길이니 모르죠. 아니,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막된 이 노인은 급기야 내게 욕설까지 해댔다. 하차하면서, 일부러 차 문을 닫지 않고 내렸다.
“본인이 닫으세요.”
그가 내게 언성을 높이며 고래고래 소리 지른 것은 혼자 보기 아까운 구경거리였다. 짐을 들고, 호텔 입구로 쏙 들어가 버렸다. 호텔 관리인과 대화를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고, 짐 하나를 그에게 맡겼다. 유리창 너머로 성질 고약한 할아버지가 택시를 몰고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관광을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참고한 후기에 의하면, 이중섭 미술관에는 전시물이 몇 점 없다. 2018년도에 그 당시 가장 가까웠던 이와 이곳에 올뻔했으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 방문하지 못했다. 또한, 이곳은 내가 아니라 그가 오고 싶어 했던 장소지만, 나 역시 한 번쯤 올 만한 가치는 있겠다 싶어서 3년 만에 찾은 셈이다.
다른 택시를 타고, 이중섭 미술관에 무사히 도착했다. 과연 1층에만 소수의 전시물이 있고, 대다수는 해설이었다. 천천히 글과 그림을 감상했다. 글을 읽는 도중,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이 심금을 울렸다.
이중섭은 1930년대 말 일본 문화학원 유학 중 일본인 여자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를 만나 1945년에 결혼했고, 두 아들을 얻었다. 하지만,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여기저기 피난 다녔다. 1951년에 서귀포로 피난 와서 11개월간 머물렀고,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족의 건강 문제와 장인의 별세 소식 등으로 이중섭만 홀로 한국에 남았다. 아내와 아들들은 195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줄곧 일본에서 살고 있다. 이들의 결혼 생활은 7년뿐이었다.
‘예술은 무한한 애정 표현이다’라고 이중섭이 아내에게 쓴 편지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가 가족들에게 글과 그림으로 편지를 쓰며 혼자 얼마나 쓸쓸하고 사랑이 간절했을까 상상하니,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쳤다.
1956년, 이중섭은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 결핍과 간장염으로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사망했으며, 고작 40세의 젊은 나이였다. 반면, 이남덕 여사는 2021년에 100세를 맞았다고 한다. 단명한 남편의 몫까지 아내가 대신 살아가는 걸까? 씁쓸한 일이다.
그녀는 이중섭의 유일한 유품인 팔레트를 미술관에 기증했는데, 개인의 사랑을 만인의 사랑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이중섭 미술관 2층에서 제주 4·3 사건에 대해 접했다. 많은 제주도민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다는데, 혼란한 시기에 태어나지 않은 점에 새삼 감사했다. 해설해준 선생님이 제주 4·3 공원을 추천했는데, 이로써 자연스럽게 다음번 여행의 목적지가 결정됐다. 작품 속에서 만난 제주도 여성들의 모습에서 그녀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강인함을 느꼈다. 지슬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림 속의 제주 여성들은 근면 성실함이 돋보였다. 끊임없이 노동하는 모습이 한편으론 고되게 다가오기도 했다.
이중섭 미술관에서 나와 거주지를 둘러봤다. 4인 가족이 살기엔 터무니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이런 볼품없는 방 한 칸도 지인의 도움으로 얻은 것이라니, 가난함이 눈물겨웠다.
거리를 지나 미리 알아놓은 맛집에서 꽃게 짬뽕을 먹었다. 꽃게와 채소가 약간 들어있을 뿐, 특별한 건 없어서 좀 실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해산물이 듬뿍 든 삼선 짬뽕을 시킬걸, 하고 후회했다.
인접한 거리의 카페에 들렸다. 손님은 나뿐이었다. 가져간 책을 읽으며 목을 축였다. 고맙게도 사장님께서 내게 와인 시음의 기회를 주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와 하늘이 감미로웠다.
어떵 살아 점쑤과?: 어떻게 살고 있나요(제주어)?
지슬: 감자(제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