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둘째 날
5월에 홀로 제주 관광을 왔을 때, 옥구슬 씨는 내게 전화를 자주 했다.
“아, 오설록 티 뮤지엄에서 녹차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 제안했다.
“나랑 거기 갈래요?”
그와 함께 여행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감에 부풀었으나, 그는 애매하게 굴었다.
“생각해 볼게요.”
6월에 다시 한번 그에게 의향을 묻자, 그는 안 가겠다고 확실히 거절을 표했다.
“여자랑 오랜 시간 보내는 게 불편해요.”
여자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2021년 6월 30일 수요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J 언니와 함께 야무지게 챙겨 먹고, 시내버스를 탔다. 한참을 달려, 마침내 오설록 티 뮤지엄에 도착했다.
소수의 전시물뿐인 박물관을 한 바퀴 쓱 돌아보고, 녹음이 우거진 정원을 지나자 정돈된 녹차밭이 보였다. 오래전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전남 보성의 녹차밭을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침 식사를 마친 지 얼마 안 지났기에 배는 전혀 고프지 않았으나, 매장에서 한라산 케이크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저건 꼭 먹어야 해!’
J 언니에게 케이크를 먹자고 했더니, 그녀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 듯 보였으나 순순히 응했다.
“제가 살게요.”
그러자, 언니는 만류했다.
“아냐, 언니가 사줄게!”
카페 한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웃으며 크림을 케익 위에 뿌리고 칼로 양분하자, 언니가 말했다.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현무암을 연상케 하는 작은 초콜릿 덩어리를 그 위에 얹으며 즐거워했다. 지난 4, 5월에 한라산을 다녀온 나로서는 의미 있는 의식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건 내 생일 케이크나 다름없었다.
6월 말, 제주도의 수국은 거의 지고 있었다. 꽃을 바라보며, 2016년에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여자 셋이서 제주에 왔던 추억을 상기했다.
군것질했으니, 열량 소모도 할 겸 우리는 다음 행선 유리의 성까지 걸었다. 목과 가슴 언저리와 팔이 시원하게 드러난 오프숄더룩 블라우스와 감색의 짧은 반바지를 입었는데, J 언니는 긴 청바지 차림이었다. 무더워 보였다.
외출하기 전 화장을 할 때, 팔과 다리에도 꼼꼼히 자외선 차단제를 발랐다. 그러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가 거울을 봤을 때, 뒤늦게 후회했다. 쇄골 주변에는 미처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서, 가슴팍 피부만 빨갛게 그을려있었다.
J 언니를 살피며 천천히 걸었으나, 그녀는 상당히 힘들어했다. 언니는 운동을 싫어하고, 평소에도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낮 온도가 점점 상승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검색했다. 유리의 성과 환상 숲 곶자왈 입장권들을 미리 구매한 덕분에 두 관광지를 거의 반값에 둘러볼 수 있었다. 참 만족스러웠다.
여행 둘째 날 두 번째 목적지인 유리의 성 입구에 들어서자, 좌측의 큰 나무에 풍선처럼 매달린 알록달록한 색감들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홀린 듯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우리는 입구가 아닌 출구부터 구경했다.
실내에 들어서자, 커다란 곰 인형이 보였다.
“와, 저 여기서 사진 찍어주세요!”
내가 소리치자, J 언니는 무심히 대답했다.
“곰 인형 털 때문에 더워 보여.”
원래 관광을 마치고 기념품을 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J 언니는 유리로 만든 꽃을 보고 현혹되고 말았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었다.
“넌 안 살 거야?”
언니가 내게 구매 의향을 물었다.
“짐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아요.”
다행히도, 내 주머니를 열만큼 눈에 띄는 상품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아무래도 잘못 들어온 것 같아요. 입구에서부터 다시 들어와야겠어요. 언니는 벌써 기념품을 사면 어떻게 해요? 관람 마치고 사야죠!”
언니에게 걱정스럽게 말했으나, 그녀는 긍정적이었다.
“아냐, 하나도 안 무거워. 괜찮아!”
언니는 유리의 성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와, 여기 참 좋다. 예뻐!”
실내 전시관 화장실 벽에서 만난 날아가는 나비도, 출입구 문에 손잡이로 달라붙은 물고기도, 야외 전시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한라봉도 모두 유리로 세공된 작품들이었다.
우측에 빽빽한 숲을 발견했다. 그곳에 들리자고 제안했으나, 언니는 귀찮아했다. 그녀는 여행지의 모든 것을 반드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게다가 운동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조적으로, 부지런히 걷고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노력해서 늘 무리를 하곤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안 보고 가요? 그럼 혼자라도 다녀올게요! 언니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당차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도 별수 없다는 듯 나를 따라나섰다.
그곳에는 많은 조형물이 있었다. 만약, 안 들렸으면 분명 후회할 뻔했다. 그만큼 예술품들이 아름다웠고, 그늘진 숲 속을 산책하며 잠시나마 더위를 식혔다. 언니는 유리로 만든 꽃을 특히 좋아했고, 흡족한 눈치였다.
안에선 밖이 보이지만,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만든 야외 화장실에서 잠시 2009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 제주시 애월읍에서 근무했다. 회사에서 이용한 적이 있는 마술 같은 화장실을 재회하니,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