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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명소에서 내가 본 것

by 이찬란

코로나로 발이 묶이기 직전 겨우내 웅크리고 있는게 지겨워 교외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사람들로 가득찬 도시를 떠나 겨울다운 광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고민하며 인터넷 검색을 했다.

겨울 여행지

겨울 가볼 만한 곳

서울 근교 나들이

조용한...알려지지 않은...겨울...

몇 시간에 걸쳐 인터넷을 뒤졌지만 경관이 마음에 들면 거리가 멀었고, 적당한 거리다 싶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의 후기가 줄을 이었다. 조용하고 가까우면서 알싸한 겨울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 없는 것만 같았다. 아니면 내가 못 찾고 있거나.

온종일 검색을 하다 피곤해진 나는 결국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가까운 전철역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여행 패키지 상품이었다. 소그룹 여행자를 모아 열차와 버스로 두세 군데 명소를 들른 뒤 늦은 오후에 되돌아 오는 일정이었다. 이동할 때와 식사시간을 빼고 각자 자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어찌됐든 하루 안에 모든 일정이 끝나고 운전하느라 고생할 일도 없는데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나름 괜찮은 선택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자작나무숲으로 유명하다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로 붐비는 등산로 입구에는 아이젠과 등산스틱 판매대가 줄지어 있고 송이와 표고를 교배한 버섯을 파는 판매원이 적극적으로 호객행위 중이었다. 판매원을 피해 제법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 데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앞뒤로 줄지어 걷는사람들 때문에 내 마음대로 속도 조절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행렬에 끼어들면 한동안은 쉴 수 없어 숨이 찼다. 나는 헉헉대며 걷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다.

희고 곧게 뻗은 자작나무를 제대로 보게 된 건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유명한 사진 스폿이라는 자작나무 숲은 기대했던 대로 장관이었다. 딱 한가지, 사람들만 빼고 말이다. 나 역시 수많은 관광객 중 하나였지만 그건 뭐랄까 해도 너무하다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은 자작나무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사진을 찍느라 부산했다. 숲의 갈라진 틈마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개미떼같기도 했고 좀 더 나쁜 곤충의 무리 같기도 했다. 큰 소리로 안보이는 일행을 부르는 사람 가방에 싸온 도시락과 차를 꺼내 마시는 사람,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장난치는 아이와 짜증섞인 꾸짖음. 그 모든 것들로 숲이 몸살을 앓는 것 같아보였다. 나는 자작나무 가지가 뻗은 하늘 사진을 한 장 찍고 서둘러 내려왔다.


점심은 산채 비빔밥이었다


자작나무 숲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식당에 예약이 되어있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좁은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극심한 정체가 일어난 것이다. 관광버스와 자가용이 뒤엉킨 도로는 꽉 묶인 매듭처럼 좀체 풀리지 않았다. 인솔자가 식당에서 걸려오는 독촉전화를 세 번 받는 동안 화장실이 급한 관광객 몇은 급히 내려 안보이는 곳에서 노상방뇨를 하기에 이르렀다.

예정된 시간보다 40분 늦게 시작된 점심식사는...차가웠다. 미리 테이블에 세팅되어 있던 나물이 차게 식어 밥과 잘 섞이지 않았다. 시장이 반찬이라 허겁지겁 먹기는 했지만 따뜻한 국물 생각이 간절했다.


그 후로 도착한 빙어축제장에는 사람이 많았고 며칠 따뜻했던 날씨 때문에 빙판이 녹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나와 내 일행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축제장 주변을 한바퀴 돌고 한창 마술공연 중인 무대를 구경하며 지루하게 버스 집합시간을 기다렸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다음 코스가 하나 더 있었지만 그곳은 아예 버스로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가득차 포기하기로 했다. 인솔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나는 끙끙 앓았다. 점심에 먹은 산채 비빔밥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모양이었다. 명치끝이 똘똘뭉쳐 숨 쉬기가 힘들었고 온 몸이 으슬거리며 몸살 기운까지 덮쳤다. 모처럼 계획했던 여행은 집에 돌아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내가 관광명소에서 본 것은


눈도 자작나무도 빙어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아마 앞으로 다시는 명소라 불리는 관광지에는 가지 않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집안에 묶여있는 동안 나는 또다시 몸이 근질거렸다. 가깝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인터넷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곳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자주 가는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나만의 명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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