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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국수집

by 이찬란




일 년 전 만 해도 호달은 이곳 신림동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주택가 어귀, 골목과 골목이 교차하는 모퉁이의 낡은 상가건물 1층의 88국수집, 자그마한 살림방이 딸린 그곳에서 할머니는 호달의 아버지와 호달을 연달아 키워내고 불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불같은 죽음, 불에 의한 죽음, 불타버린 할머니와 국숫집.

할머니는 일이 고될 때마다 호달에게 국숫집 이름을 짓던 날의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려주었다.

국숫집은 서울올림픽을 이 년 앞두고 문을 열었다. 오랜 노점 생활 끝에 얻은 가게인 만큼 그럴듯한 이름을 고심하느라 호달의 할머니는 간판도 올리지 못한 채 국수부터 팔기 시작했다.


이윽고 1988년 9월 17일, 제24회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개막식 장소인 잠실 주경기장에서는 삼천여 마리의 비둘기 떼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이어 비운의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가 성화를 들고 아이처럼 깡충거리며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성화는 라면만 먹고 달린 금메달 소녀 임춘애에게, 다시 일반인 주자에게로 이어져 까마득히 높은 성화대에 이르렀다. 마침내 점화의 순간,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어눌한 한국어로 그렇게 외쳤을 때 티브이를 보는 사람들은 벅찬 가슴을 부여잡았다.

어쩌면 일부는 다른 이유로 가슴을 잡았을지 모른다.

세계 평화의 염원을 담고 창공으로 뻗어나가야 할 비둘기들이 성화대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눈치가 없는 건지 갈 곳이 없었는지 불길이 바로 코앞까지 와 있는데도 비둘기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주자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눈짓을 주고받다 하는 수 없이 팔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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