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달은 남자를 끌고 언덕을 내려오다 도로와 맞붙은 큰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할머니의 88국수집이 있던 안쪽 골목에 작은 치안센터가 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골목은 모양도 쓸모도 제각각인 잡동사니가 가득한 서랍만큼이나 복잡해 자질구레한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덕분에 치안센터는 24시간 열려 있었다. 주변을 기웃대며 따라오던 그가 별안간 아는 체하며 앞으로 나섰다.
“여 봐, 저 안쪽에 있는 거 같은데.”
아차 싶었다. 호달은 이미 골목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그에게서 슬그머니 떨어졌다. 마침 횡단보도에 보행신호가 들어왔다. 발소리를 죽이며 몸을 돌려 뛰었다.
“뭐야, 너 거기 안 서!”
이내 남자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길 건너 순대타운 골목은 호객꾼과 서성이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중앙의 순대타운 건물을 지나며 힐끗 뒤를 보니 이제 막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가 보였다. 뭐라고 외치는 것 같았지만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둘 셋씩 짝을 지어 걷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웅성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호달은 나이 든 여자의 양산을 피하다 가게 앞에 내놓은 입간판에 얼굴을 부딪칠 뻔했다. 여자도 놀랐는지 휘청했다.
“이 좁은 데서 뭐 하는 거야.”
누군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호달은 그 짜증이 자신을 쫓는 남자에게로 향하길 바라며 골목을 벗어나 공영주차장 아래 개천길로 뛰어 내려갔다. 개천 중간쯤 다리 아래에 숨을만한 장소가 있었다. 이전에 하수관으로 사용되던 구멍인데 어둡고 냄새가 심했지만 웃자란 풀에 가려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중고등학생 시절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던 곳이었다.
호달이 몸을 낮춰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달리는데 갑작스럽게 힘을 쓴 탓인지 눈이며 귀, 가슴에서까지 심장이 뛰는 기분이었다. 익숙한 하수구 냄새를 코로 깊이 들이마셨다 내쉬며 휴대폰을 켰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이 화면에서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연신 미끄러지는 바람에 엉뚱한 앱을 켜고 끄기를 몇 번 되풀이한 뒤에야 갤러리의 사진을 찾아 삭제할 수 있었다. 구부린 등으로 식은땀이 쭈욱 흘러내렸다.
다행히 금방이라도 따라붙을 듯하던 남자는 아직 기척이 없었다. 개천으로 내려왔다면 뭐라고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잠잠한 걸 보니 순대타운 안에 갇혔거나 다른 길로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고개를 빼꼼 들어 밖을 살폈지만 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분 더 숨죽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후끈한 열기를 품은 바람이 맨살에 와 닿았다.
“오호, 거기 있었네. 도망쳐 봤자 잡히게 돼 있다니까.”
호달이 땀에 젖은 티셔츠를 들치며 트인 곳으로 몇 걸음 걸어나오기 무섭게 위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기다리라는 듯 손가락으로 호달을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움찔했지만 이번엔 호달도 도망갈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