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달과 남자는 도림천을 빠져나와 식당을 찾아 걸었다. 멀지 않은 곳에 한 그릇에 삼천오백 원이라고 써 붙인 국숫집이 보였다. 남자는 호달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국숫집으로 들어가 자리 잡고는 잔치국수 두 그릇을 주문했다. 얇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국수와 호박, 달걀, 김 가루가 푸짐하게 얹혀 나왔다. 배는 고팠지만 식욕이 당기지 않아 호달은 젓가락으로 고명을 흩트리며 그릇 안을 휘적였다. 육수의 멸치 비린내가 연기를 타고 물씬 올라왔다. 할머니가 말아주던 국수의 구수하고 칼칼한 맛이 그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물을 연거푸 들이켰다.
“한창땐 이걸로 소주 두 병은 거뜬했는데.”
술과 음료수가 종류별로 들어찬 냉장고 쪽을 흘깃거리며 입맛을 다시던 그는 호달과 눈이 마주치자 머쓱한 듯 중얼거렸다.
“이젠 끊었어. 다 옛날 일이지 뭐.”
고시원 앞에서 만난 후 처음으로 보인 유순한 표정이었다. 호달은 그의 표정이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고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봐야 사기꾼이었다.
호달이 국수 가닥을 깨작대는 동안 남자는 국물을 그릇째 들고 마시더니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곤 테이블에 올려놓은 호달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마구 터치하기 시작했다.
“사내놈이 시원찮긴. 그러고 있으면 뭔 수가 나? 계좌번호 불러 봐.”
“계좌번호는 뭐하게요?”
“단체 문자 넣게, 돈 빌려달라고. 이거 봐, 연락처가 이렇게 많은데. 한 사람이 오만 원씩만 부쳐도 금방이잖아.”
“아 씨, 진짜 쪽팔리게.”
휴대폰을 뺏으려고 팔을 뻗는 호달을 가볍게 무시하고 남자가 단호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