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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는 사랑을 싣고

by 이찬란


국숫집에서 피시방까지는 십여 분 거리였다. 한시라도 빨리 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남자는 호달보다 앞서 걸으며 연신 방향을 물었다. 그러는 동안 받아야 할 돈이 얼마나 되는지, 사장 이름은 무엇인지, 매니저와 사이는 어떤지 등을 제법 꼼꼼하게 물었다. 국숫집에서의 일로 분이 안 풀린 호달은 부은 얼굴로 툴툴거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물음에 착실히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가망 없는 돈이니 일부라도 받아내기만 한다면 남자에게 고스란히 뺏긴다고 해도 속이 좀 후련할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어쩐지 그가 자기보다는 조금 더 믿음직해 보였다.


‘아버지가 살아있었으면 저 정도 나이가 되었을까.’


종잇장처럼 가볍게 팔랑거리며 걷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호달은 생각했다.

호달의 아버지이자 김 야무 여사의 소중한 외아들은 어머니의 엄격한 관리 속에서 자랐다. 알코올중독으로 객사한 남편의 전철을 밟게 하지 않고자 어머니는 아들이 친구들과 만나는 것까지 일일이 단속했다. 여느 아들이라면 그런 어머니에게 반발하며 대들었겠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무능력하고 사람만 좋은 자신의 부친이 어떻게 가정을 망가뜨렸는지,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어머니가 얼마나 피땀을 흘려 왔는지를 생생히 보며 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없어 사납고 억척스러워야만 했던 어머니에게 단 하나의 숨구멍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한강대교 위에서 아버지의 유해가 담긴 소주병을 떨어뜨리던 날, 몰래 눈물을 훔치며 좋은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 틀어박힌 채 보내던 그는 갑갑증이 날 때면 방바닥에 지도를 펼쳐 놓고 손가락으로 훑으며 쭉 뻗은 도로의 이름을 외웠다. 그러다 큰 도로 옆으로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작은 도로들과 도시의 이름까지 모조리 외웠다. 언젠가는 손으로만 가보았던 곳들을 빠짐없이 직접 볼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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