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지점에서 느낀 호러

<미드 소마> 아리에스터 감독

by 이찬란

추석을 앞두고 한 일주일 제법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냉장고 안에 쌓아둔 음식들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시댁 갈 일은 없지만 본가(이제 결혼한 신분이 아니게 되었으니 친정이라는 명칭대신 본가라고 하기로 했다)에서 챙겨줄 음식을 넣으려면 필히 선행해야 할 일이었다. 먹고사는 일이 뭐라고 작디작은 1인용 냉장고에 장아찌며 채소, 과일과 냉동식품이 알차게 들어있었다. 심지어 이사하던 5월에 사서 얼려둔 식빵까지 숨어있다니. 과거의 나, 무슨 짓을 한 거야!

집에서는 출근 전 한끼만 먹기 때문에 냉장고 비우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국 다 해치우지 못 한 몇 개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그러고보니 쓰레기 봉투를 꽉 채워 버리는 게 무척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작은 2L짜리를 사용해도 늘 끝까지 채우기 힘들어 안에 담긴 쓰레기들이 금방 무르고 냄새를 풍기곤 했으므로 나는 대충 며칠을 주기로 쓰레기 봉투를 내다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전에 환경관련 기사에서 종량제 봉투가 썩지 않는다는 글을 읽은 후로는 3분의 1도 채우지 못해 가볍디 가벼운 쓰레기봉투를 내놓을 때마다 일말의 죄책감이 들었다. 먹고 많이 남기는 것도 문제, 적게 남겨 쓰레기봉투를 낭비하는 것도 문제.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지구에게 골치아픈 존재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일주일이었다.



본가에서 뒹굴거리며 애정하는 프로그램 '방구석 1열'을 시청하다 알게된 영화 <미드 소마>. 공포의 일반적인 공식을 따르지 않아 낯설고 기괴한 두려움을 주며 장면마다 복선이 무수하다는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우울증을 앓고 있던 주인공 대니의 동생이 가스로 부모님을 살해하고 자살한다. 동생으로 인해 내내 불안해하며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에게 의존해 오던 대니는 이 사건 이후 증세가 더욱 심해진다. 그러던 중 크리스티안이 친구들과 스웨덴 축제여행을 가겠다고 하자 두 사람의 갈등이 불거지고 대니도 여행에 동행하기로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들이 도착한 스웨덴의 호르가 마을에서 시작된다.

문명을 벗어나 자연 친화적 삶을 추구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호르가 마을의 여름 축제, 미드 소마. 90년에 한 번 9일동안 치러지는 축제는 그러나 점차 외지인이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의식들로 이어진다.

출처: 다음 영화


삶은 원이에요 순환하는 거죠 뛰어내리신 분 이름은 일르바예요

곧 태어날 아이가 그 이름을 잇게되죠

고통과 두려움과 수치 속에 죽는 게 아니라 생명을 주는 거예요 선의의 표시로요

필연적인 죽음을 기다리다 죽는 것은 영혼을 더럽히니까요


호르가 마을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주기가 있다. 18세까지 아이로 지내다 36세까지는 순례를 떠나며, 54세까지 일을 하고 72세까지는 스승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모든 주기를 마친 후에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축제 첫날 절벽에서 떨어진 두 노인 중 한 명이 죽는데 실패하자 주민들은 커다란 망치로 그의 얼굴을 내리쳐 산산조각 낸다. '아테스투파' 라고 하는 이 의식을 보고 충격에 빠진 대니 일행에게 마을의 지도자는 이것이 그들의 오랜 풍습이며 원처럼 순환하는 삶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선한 것인가를 설명한다. 일주일동안 자연과 인간, 쓰레기의 순환 같은 것을 생각하느라 그랬는지 엉뚱하게도 나는 바로 그 지점에 꽂혀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생명을 내놓기 위해 기존의 생명을 거두는 것이 자연의 오랜 이치였으므로 어쩌면 이를 자진해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연에 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선의가 아닐까? 그런데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모자라 지구에 얼마나 커다란 짐과 문제거리를 쏟아내고 있나. 하지만 내가 오싹했던 이유는 그런 자각이 아니라 건강한 노인의 죽음을 태연히 종용하는 기괴한 상황이 이처럼 미묘하게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숨겨진 복선이 하나 있다. 영화 초반 대니와 크리스티안이 말다툼하는 장면에 배경으로 등장한 무판(MU PAN)의 그림 <Fish Die and the Net Breaks>이다.

출처:다음 영화


그림 안에서는 공룡과 다종의 생물들이 서로 물어뜯고 있지만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평화와 상호작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호르가 마을의 잔인한 풍습 역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받아들일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흰 옷과 미소, 밝은 배경이 설득력을 더하는 가운데 영화는 점점 섬뜩하게 변한다. 장로들에게 승인 받은 여성이 좋아하는 상대의 음식에 자신의 음모와 피를 섞어 먹이는가 하면,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장애아 루빈의 그림 해석해 경전의 새로운 내용을 덧붙인다. 그저 여러 색 물감을 마구 칠해놓은 그림에서 어떤 해석을 해낼 지는 장로들의 재량이며 권한이다. 그들은 외지인에게 루빈은 보통사람들과 달라 마음이 근원에 닿아있으므로 신성한 존재라 설명한다.


루빈이 죽으면요

그런 인식에 물들지 않은 아이를 기다리는 건가요?

아니, 우리의 모든 신탁은 계획적인 근친의 산물이지


오싹했다. 신의 목소리마저 인간의 계획하에 이루어진다니. 한편 축제가 지속되는 동안 초대받은 외부인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고 이들은 나중에 각기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것 역시 우발적인 살인이 아닌 계획, 즉 미드소마 축제 의식의 일부로써 미리 짜여진 것이었다.


자연스러움과 선함을 가장한 호르가 마을의 광기어린 축제는 사실 영상만으로 무척 호러블(horrible)하다. 그러나 시작부터 엉뚱한 지점에 꽂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을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을 장로들은 남녀의 결합을 승인을 통한 공개 의식으로 진행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기들의 삶과 죽음을 계획하는가 하면 경전마저 새롭게 창조하며 자발적인 신의 위치를 점유한다. 선함으로 포장했으나 정작 자연에는 부자연스럽고 기괴할 뿐인 의식들. 그것을 행하는 동안 끊임없이 보여지는 자기 합리화와 맹신, 그리고 오만함이 마치 현시대 인류의 모습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자연에게 인간이란 품 안의 수많은 생물 중 한 종, 그중에서 조금 더 골치아프고 질기게 살아남는 존재일 뿐인데 말이다.

아, 호러영화를 보며 이 무슨 뜬금포같은 생각이람. 아리 에스터 감독의 전작 <유전>을 인상깊게 본 나로서는 영화를 다 보고 나자 그의 호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기까지 했다. 혹시 이런 엉뚱한 감상까지 포용하는 것이 아리에스터 감독의 진정한 천재성인가? 어쨌거나 엄청 오싹하긴 했으니까. 다음번엔 스토리와 영상에 집중해서 다시 보기로하며 앞으로 쓰레기를 어떻게 줄이며 살아야할 지 고민을 하게 되는 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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