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겐 언제나 플랜B가 있다

<Don`t Look Up> 아담 맥케이 감독

by 이찬란

오랜만에 긴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 침대에 누워 귤을 까먹으며 영화를 보았다. 할 일이 없었던 게 아니고 반대로 할 게 너무 많아 미루느라 마음이 불편한 상태였기에 가볍고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를 고른다는 것이<Don`t look up>이 된 것이다. 스토리에 대한 사전 정보없이 화려한 출연진과 코미디라는 장르만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는 기대만큼 흥미진진했고 생각보다 씁쓸하기도 했다.


대학원생 케이트와(제니퍼 로렌스) 민디 교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우연히 약 6개월 후에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 중대하고 위험한 소식은 곧 지구방위 합동 본부에 전해지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백악관까지 가게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지구의, 아니 인간의 멸종을 초래할 수 있는 재난에 당장 총력을 기울여야 할 마당에 대통령이 그들을 꼬박 하루동안 기다리게 하더니 묘하게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100%에 가까운 혜성과의 충돌확률을 마트 세일하듯 70%로 깎아 버리는 것이다. 대통령 뿐 아니라 관련 정치인들과 언론 역시 같은 모양새로 두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다. 진담이 농담이 되어버리는 코미디같은 상황이다. 케이트와 민디가 초조해 할 수록 상황은 더욱 우스워진다. 마치 코미디언의 표정이 진지할 수록 더 큰 폭소를 자아내는 것 같은 원리라고 할까.

혜성은 점점 지구와 가까워지고 인류 종말 앞에서도 사욕을 채우려는 지배층과 그에 맞서는 과학자의 갈등도 격렬해진다. 그 사이에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지 못하는 대중들은 갈팡질팡하며 혼란에 빠지고 그렇게 이야기가 여차저차 흘러가다 결국 혜성과 지구가 충돌하고만다.

엥 정말? 6개월 전에 알았는데 그냥 죽는다고? 싶었지만 사실은 그게 가장 현실적인 결말이라는 걸 부정하기 어려웠다. 영화의 부제도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정말 순진하게도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지들도 지구에서 살아야 되는데 설마 다 같이 죽을 짓을 하겠어?' 라고 생각하며 0.000001%의 믿음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다. 다 같이 죽지는 않고 우리만 죽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소수의 지배계층에게는 준비된 플랜B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도 늘 솟아날 구멍이 열려있는 셈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늘 그렇게 여유있는 표정과 행동을 유지할 수 있는가 보다.

하지만 나는, 혹은 우리는 늘 대안없는 현실에 매달려야 하므로 매 순간이 간절하다. 대학에 떨어지면, 취업에 실패하면, 아파트 청약에 떨어지고 대출이 막히면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지만 간절한 사람이 어떻게 여유만만한 사람을 당해내겠나. 오히려 그들의 말에 티끌만한 희망을 걸고 이리저리 휘둘리다 영화에서처럼 꼼짝없이 망하는 수밖에...슬프긴 하지만 뭐 그건 그렇다치고 영화를 보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몇 장면이 있었다. 이를테면 '부자들의 성공하는 습관' 이랄까 아니면 '성공한 부자들의 습관'이랄까 하는, 우리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같은 것들이었는데 그게 잘 이해가 안 가면서도 영화의 씁쓸한 맛과 개인적인 울화통을 한층 북돋워주었다. 여기 나만의 명장면을 소개해 본다.


#1# 당당함의 매력

영화 초반부, 케이트와 민디교수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다들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도중 군 고위 장성이 스낵과 물을 사 들고 온다. 그는 별것도 아닌 게 엄청 비싸다고 엄살을 떨며 사람들에게 10달러씩 받고 물건을 나눠주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들은 모두 무료였다. 허허.

케이트가 '3성 장군이고 국방부에서 일하'는 그가 도대체 왜 공짜 스낵으로 사기를 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자 옆에 있던 오글소프가 말한다.

"한번은 스팅을 만난 적 있는데

신께 맹세코 내 앞에서 방귀 뀌고서 눈을 피하지도 않고 양해도 안 구했어요.

그 전략이 성공했죠. 아직도 그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이니."

앞에서 방귀를 뀌고도 당당하면 매력이 된다니...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당당함과 뻔뻔함. 잘못을 해 놓고도 오히려 상대를 부끄럽게 만드는 태도는 내가 가질 수 없으므로 분명 매력적이다.



#2# 취향은 확고하게

미국의 유력한 사업가 피터는 지구와 충돌할 혜성에 140조 달러 가치의 희귀광물이 있음을 알게 되고 혜성의 궤도를 바꾸는 대신 작게 조각 내서 지구에 떨어뜨릴 계획을 세운다. 화려한 홀로그램과 전문가의 의견(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감동적인 스토리와 BGM을 동원하여 브리핑을 하는 그.

그는 노벨과학상 및 폴론스키 상 수상자인 이네스 박사가 그들의 원대한 계획을 설명하는 동안 박사의 머리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아마 그녀의 샴푸 향에 취향을 저격당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만, 그는 당당하니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박사를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냄새를 맡는다. 좀 변태같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브리핑에 활용한 화려한 장비들로 유니크한 그만의 취향에 대한 감동스토리를 들려줄 지도 모른다.



#3# 냉정함 속의 따뜻한 마음

피터는 냉정하다. 자신의 신제품 홍보를 위해 아이들과 동물을 이용하지만 무대를 내려가자마자 홍보용 폰을 뺏어버리고 '사랑한다'는 아이의 말을 못들은 척 한다.


하지만 혜성을 분해해 큰 돈을 벌어다 줄 드론에게는 첫째라는 뜻의 '프리모' 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아낌없는 애정을 보인다. 사실 그의 내면에는 이렇게나 따뜻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단, 그 대상이 돈을 벌어다 준다는 조건이 있어야 하지만...


영화 <Don`t look up>은 나는 잘 모르고 가질 수도 없는 그들의 이러한 면면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덕분에 무척 소름돋고 짜증도 났는데 그 와중에 단연 최고로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던 장면이 있다. 카메오로 출연해주신 크리스 에반스 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로 그 장면.

어느덧 혜성이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하자 정신 차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라는 쪽과 보지 말라는 쪽의 대결이 극에 달한다. 그때. 유명 연예인으로 등장한 그가 위아래를 다 가리키는 배지를 달고 나와 "이제 우리 국민도 다툼을 멈추고 하나가 되자" 고 말한다.

HO~O~Oly ****!!!!

신이시여! 돌진해 오는 혜성 아래서 이게 할 말인가요? 아니 그보다 다툼은 체급이 비슷해야하는데 이게 다툼이라고요?

보면 볼수록 허망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래,

"어떨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한다. 시뻘겋게 피가 몰린 얼굴로 신들린 연기를 펼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씨! 그럴게요, 암 그러고 말고요. 하지만 과연 그들의 매력에 현혹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할 일도 많은데 플랜B가 없는 나는 일요일 밤이 괜히 더 심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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