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찬란 Aug 21. 2024

부양가족 없음





회사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가족수당 운영 실태 자체 점검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 부양가족에 대한 수당을 중복으로 받고 있는 직원의 자진 신고를 요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수당 환수 및 일 년 범위 안에서 수당 지급 정치 조치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잠시 뜨악했다. 그리고 공문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았다.      

나의 경우 중복 수급은 아니지만 신고할 사항이 있었다. 이혼한 지 만 삼 년이 지나도록 배우자 수당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다. 매월 사만 원. 진작 보고하고 정정했어야 할 부분이었는데 급여 명세서를 볼 때마다 찜찜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 일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주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혼한 해 연말정산 서류에 내가 세대주로 표기된 등본을 함께 제출했기 때문이다. 정산 과정에서 배우자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자연히 수당도 빠질 거라 생각했는데 다음 해에도 계속 급여에 포함되어 나왔다. 왜 정정이 안 됐지? 따로 정정 요청을 해야 하나보다 생각하고는 미루다 삼 년이 후딱 지나버렸다.

큰 금액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고, 적으나마 공돈이니 그냥 모른 척 받아볼까 싶은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더해 회사에 이혼 사실을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부서마다 직원이 많고 담당자와 잘 아는 사이도 아니라 괜한 말이 날 확률은 적었지만 그래도 선뜻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공문은 오히려 그동안의 찜찜함을 해소할 좋은 계기였다.

     

2021년 7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사만 원이면 백사십팔만 원인데 내 급여 실수령액이 백오십오만 원이니까 빼 보면 허허...칠만 원. 애초에 내 돈이 아닌 걸 받았으니 돌려주는 게 마땅하지만 속이 쓰리다. 꽁으로 받을 때는 티도 안 나더니 막상 도로 내놓으려니 뺏기는 기분까지 들었다.

‘가족 구성원이 바뀐 걸 뻔히 알면서 신고 안내라도 해줄 것이지. 쓸데없이 업무분장이 너무 철저한 거 아니야? 하여간 조직 사회란 융통성이 없어 짜증나게…….’

괜히 억울한 마음에 애먼 담당자와 조직 사회 욕을 줄줄이 엮어내다가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재빨리 초긍정 원영적 사고회로를 돌린다.

‘그래도 마이너스는 아니네. 게다가 행운의 칠만 원. 한 달만 허리띠 졸라매면 그동안 불편했던 마음까지 깔끔하게 해결 된다구.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하하핳엉엉~’  

   

나는 인터넷으로 회계과에 보낼 혼인관계증명서를 떼고 부양가족 신고서를 작성했다.


본인은 허위의 방법으로 가족수당을 지급받은 경우 이를 변상하고 일정 기간 지급을 정지하는 관련 규정과……기본 요건 등을 숙지하고…….


뭘 또 허위의 방법까지야, 하고 구시렁거리며 부양의무자인 내 정보를 적었다. 부양가족 상황란에는 ‘없음’ 단 두 글자만 썼다. 글자 아래로 비어있는 다섯 줄이 썰렁해 보였다. 누군가는 이 칸을 다 채울 정도로 많은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다른 사람은 다 하는 책임에서 나만 얌체처럼 빠져나온 것 같았다. 잠깐 눌러놓았던 억울함이 이내 다시 머리를 든다. 독립해서 따로 살고 있기는 해도 나도 나름대로 가족들을 챙기고 있는데. 하얗게 빈 란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허위의 방법을 일부러 시도하지도 않았고, 뒤늦게 독립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고, 나도 나름대로 사회 구성원의 책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적기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그저 행정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서류일 뿐인데 그걸 앞에 두고 참 구질구질한 마음이 머릿속을 오고 갔다.      

어쩌면 내가 정정 신고를 미뤄왔던 이유는 이런 것이었나 보다. 공돈에 대한 무심함이나 알량한 욕심도 아니고 이혼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한 염려도 아닌 이런 마음. 누군가는 애써 수행하고 있는 책임에서 혼자 벗어났다는 부채감과 마주하는 순간에 대한 회피 말이다. 그건 오랜 시간 최선을 다해 가정을 돌보았고 그러느라 흐릿해졌던 나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그림자처럼 늘 발끝에 매달려있었다. 아닌 척 하면서도 나는 은연중에 전남편 m과 딸에게, 더는 내 손을 타지 않게 된 살림들, 나로 인해 비워진 집의 빈 공간에 떳떳치 못하다고 느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 물건만으로 채워진 집에 혼자 있을 때, 아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싶은 순간에 문득 멈칫하곤 했다. 마치 여전히 가족수당이 포함된 급여 명세서를 받을 때처럼 말이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감정도 저절로 깔끔하게 정리되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나는 차일피일 미루며 그저 못 본 척 회피만 해 온 셈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온전히 나 하나만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얼마 뒤 회계과에서 전화가 왔다. 환수금을 일시불로 공제할 수도 있고 남은 오 개월 동안 분할공제도 가능하다고 했다. 한달치 급여를 몽땅 털어 넣고 정리할 생각을 하니 막막해서 분할공제를 신청했다. 담당자는 앞으로 연말까지 매월 삼십만 원 정도 차감된 급여가 지급될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감사하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줄어들 급여는 둘째치고 마침내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마음의 빚을 청산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후련해졌다. 그래, 미룬다고 저절로 되는 건 없지. 대면하고 해결하는  결국 내 몫인 걸 나는 이렇게나 미련하게 깨닫는다. 이제 회사가 오 개월간 부정 수급한 수당을 꾸준히 환수해 가는 동안 나 역시 각자의 삶을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는 가족을 믿고 조금씩 마음의 부채감을 덜어내야겠다.



*한 달간의 긴 방학을 마치고 다시 연재를 시작합니다. 돌아올 때쯤엔 더위가 한풀 꺾일거라 생각했는데 열대야가 물러날 줄을 모르네요. 저를 포함해 올 여름은 유난히 힘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쉬면서 다른 작가님들의 글도 실컷 읽고 도서관에도 가고 틈틈이 가족도 돌보며 재충전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감사하게 좋은 일도 생겼습니다.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의미있는 문학상 소설부문 최종심에 올랐다는 소식들었고, 어제 아침엔  연재 브런치북에 올렸던 <그대 곁에서 잠들었으면>공직문학상 최종심에 올라 수상예정이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어떤 상을 받을지는 아직 몰라요. 대국민 심사를 거쳐 9월에 최종 결정이 날거라고 합니다. 무슨 쇼미더 머니도 아니고 떨리네요.ㅎㅎ


그래도 좋은 소식 덕에 마냥 놀기만 하다 돌아온 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독자님, 작가님들과 글로써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이전 24화 전무후무할 가족여행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