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수, 금은 오전에 화, 목은 퇴근 후 저녁에 운동을 간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는 화요일이다. 칼바람에 눈물, 콧물을 찔끔대며 부지런히 자전거를 타고 집에 들어와 털썩 의자에 앉은 순간 전화가 왔다. 아직 전화 올 시간이 아닌데 싶으면서도 나는 저항 없이 냉큼 통화 버튼을 누른다.
“오이야~~내 딸~!”
“엄마아~~”
그렇게 서로를 부르고 우리는 헤헤 웃는다.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할 말이 없는 건 나뿐인지 모른다. 딸은 “나 이제 학교 끝났어, 방금 레슨 마치고 나왔어, 알바 끝났습니다, 으아 너무 추워 혹은 더워……”로 시작해 “오늘 엄청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하~너무 스트레스 받아, 어쩌고 저쩌고……” 조잘조잘 잘도 말을 한다.
사실 나는 전화 통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전화로 수다 떠는 건 최고로 싫어하는 일 중 하나이다. 뚜렷한 목적 없는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선전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시도 때도 없이 통화 가능한 휴대폰의 시대가 열린 건 좀 아쉽다. 둘러댈 핑곗거리가 없으면 걸려 오는 전화를 피할 길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누구의 전화든 잘 받지 않는다.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무자비하게 전화를 걸던 엄마도 이제는 아예 체념하고 내가 카톡에 재깍재깍 답하는 것에 만족 중이다.
직장, 가족, 친구를 통틀어 유일하게 나와 상시 통화가 되는 사람은 단 하나, 내 딸뿐이다. 그리고 절망스럽게도 내 딸은 말 그대로 상시로 내게 전화를 건다. 나는 자다가도, 화장실에 있다가도, 자전거를 타면서 혹은 오랜만에 라면을 먹으려고 끓여 놓고서도 그게 퉁퉁 불어 터질 때까지 딸과 통화를 한다. 간혹 타이밍이 애매하면 샤워하러 들어가면서도 휴대폰을 챙긴다. 그러면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 오고 나는 스피커폰으로 나의 샤워 진행 상황을 생중계하기도 한다.
“나 지금 머리 헹구니까 대답 못 할 수 있어.”
“앜ㅋㅋ 엄마 미안~”
“미안한 줄 알면 됐다. 너 이런 엄마 만나기 쉽지 않아 진짜. 이게 바로 참 어버이…와라라랄 쏴아 어푸푸.”
곤란한 상황에서는 패스해도 될 전화를 난리난리 생난리를 치면서도 굳이 받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딸아이를 아빠와 살게 두고 혼자 독립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같이 살 때도 그랬으니까. 이상하게 딸에게만은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려면 생색이나 내지 말지 또 따박따박 경우를 따져가며 감사 인사는 챙겨 받는다.
아이에게 진심인 건 나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셋째의 가게에 일을 도우러 갔을 때였다. 한참 바쁜 시간이 지난 후 셋째가 한쪽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울그락불그락하더니 분통을 터트렸다.
“아니 도대체 내가 왜 아직까지 이 사람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냐고!”
사정을 들어보니 해외로 일하러 가게 된 전남편이 필요한 서류를 좀 채워달라고 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그는 그것뿐 아니라 은행 업무, 자격증 시험 접수 같은 자질구레하고 성가신 일들을 내내 셋째에게 의존해 왔다고 한다. 자기가 조금 신경 쓰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이제는 남이 된 사람에게 당연한 듯 토스하는 상황에 나도 버럭 화가 났다. 너도 너지 왜 이런 걸 해주고 있냐고 타박했더니 셋째는 자기가 안 해주면 딸한테 전화가 갈 거라고, 그 짐을 어떻게 애한테 지우겠느냐고 가슴을 쳤다. 낮에는 회사 일에, 밤에는 야식집 운영에 잠잘 새도 없이 동동거리며 대학 다니는 두 아이를 키우는 동생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에 숨이 턱 막혔지만 아이 얘기에 할 말을 잃었다. 나 역시 딸이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지나온 세월이 이십 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서도 셋째는 딸과의 대화가 나와는 사뭇 다르다. 극 F인 딸을 배려해 조곤조곤, 사근사근-하려고 하나 자주 실패하고 T 본색을 드러내는 나와 달리 셋째는 처음부터 거침이 없다. 그녀의 딸 역시 막상막하다. 아니, 오히려 능력치가 더 높아 우리 집안에서 셋째를 제압할 수 있는 독보적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아슬아슬 스릴이 넘치고 극적 긴장감에 저절로 심장이 쫄깃해질 지경이다. 그래 놓고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는 쿨내 진동 모녀다. 그런 셋째의 딸과 내 딸이 동갑내기로 둘도 없이 친한 친구라는 건 정말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하긴, 나와 셋째도 그랬으니 뭐...
우리 중 가장 교양 있게 아이들을 대하는 건 언니다. 언니는 어릴 때 우리에게도 그랬다. 엄마대신 숙제를 봐주고 알림장에 싸인해 주고, 어른스럽게 조언도 해주었다. 우리 중 가장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라 그런지 세심함이 남달랐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딸 키우는 데 최적화된 사람인데 안타깝게도 언니에겐 아들만 둘이다. 둘 다 결코 쉽지 않은 상대들이다. 특히, 자유분방하고 요령 좋은 둘째에 대한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언니는 매번 “그래, 우리 아들이 그랬구나. 엄마가 아빠랑 잘 얘기해 볼게.” 하며 인자하고 차분하게 둘째와 대화를 마친다. 그러고 나서는 비밀스럽게 나와 셋째에게 호소한다.
“어떡하냐고, 나는 애가 아직도 육 학년이라고오오오.”
그 절박함이 너무 내것같아 웃음이 터진다.
“자식 귀하게 여기는 거 보면 어쩜 너희는 셋 중 하나도 나를 안 닮았구나. 정말 다행이다.”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엄마는 종종 그런 말을 한다. 젊을 적 남편을 세상의 전부로 믿고 사느라 소홀히 키운 딸들에대한 쑥스러운 사과이자 반성이다. 그럴 때면 우리는 제각기 생겨 먹은 대로 반응한다.
“엄마처럼 자식 쉽게 키운 사람이 없긴 하지.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애들을 키우는 거 아니겠수. 어릴 때 힘들었으니까 내 새끼는 그러지 않게 하려고.”
피도 눈물도 없는 말로 내가 받아치고 나면 셋째가 보탠다.
“그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 잘 큰 거 봐. 애 잘 키워, 돈 잘 벌어, 부모한테 효도해. 주변에 이런 자식 있는 사람 있어요? 없지.”
“그래그래 우리 자식들이 최고야.”
가자미 눈으로 나를 째려보던 엄마가 대답하고 이어 언니가 따뜻한 마무리를 한다.
“그래도 우리 엄마 아부지가 끝까지 가정을 지키고 성실히 생활하는 본을 보여주셔서 우리가 배운 거지요. 우리 부모님, 정말 훌륭하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콩콩 잘잘못을 따지며 엄마 옆구리를 찔러 사과를 받아내고야 만다. 그러고 돌아서선 딸의 전화 받을 만반의 준비를 한다.
안 그래도 되는 전화를 죽을둥살둥 받아놓곤 생색내는 내게 얼마 전 딸이 생일이라고 카드와 선물을 주었다. 딸이 좋아하는 일본 가수의 콘서트에 함께 간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엄마는 노재팬인거 알지? 너를 위해 희생하는 거야.”라고 생색 중이었다. 딸은 “네네, 어머니 감사합니다요.” 하면서 충격이라고는 일도 없는 웃음으로 답했다.
딸의 편지는 ‘매일매일 나랑 통화하느라 고통받는 오마니♡’로 시작되었다.
지지배 알긴 아네 어쩌고…중얼대면서도 나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래, 어쩌면 정말로 우리 세 자매의 유별난 자녀사랑은 엄마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결핍을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그러니 어찌하리오 몸과 마음을 갈아 넣을지언정 멈추는 방법을 모르는 이 지독한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