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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Aug 20. 2018

기업은 왜 '착한 일'을 하기 어려울까?

사회 공헌 사업을 평가하기 어려운 4가지 이유


어디서 경영학 좀 공부하신 분이라면 이 금언을 반드시 한 번은 들어보셨으리라.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경영전략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Peter Drucker) 선생님께서 하셨다는 말씀이다.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숫자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백번 천 번 강조하신 이다. 당장 우리 회사만 해도 이런 금언을 따라 최근 데이터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드러커 선생님.. 참 좋은 말씀 해주셨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든 사업의 의사결정은 당연히 '숫자'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 작은 규모의 마케팅 프로모션부터 시작해서 커다란 신규 사업 투자에 이르기까지 소요 비용과 그 ROI(Return of Investment)를 철저히 계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런 의사 결정 방식이 유독 껄끄러운 사업이 하나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공헌' 분야이다. 상당수의 사회 공헌이 곧바로 매출과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사회공헌 사업은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의 사업이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얼마나 큰 공헌을 한 것인지 계산하게 된다.


나는 지난 반년 간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헌혈을 많이 할까? 혈액이 부족해 고통받는 환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주제로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수백 장의 사업 계획서를 작성했고, 회사의 의사결정자 분들을 조목조목 설득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팀이 가장 어려워한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그래서 사회적 가치가 자로  어떻게 나오는데?'라는 말이었다. 의사결정권자 분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분들은 당연히 들어가는 비용과 발생하는 효과를 비교해 보고 이 사업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질문을 던분들이 사업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고 어떻게든지 도움을 주려는 경우가 많았다.


덜덜 떨면서 임원진을 설득하고 있는 나


내가 이 질문만 나오면 중언부언 설명이 길어졌던 것은 사회 공헌 사업에서 그 '숫자'를 말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든게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사회공헌과 관련된 기획서를 몇 차례 뜯어본 경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획서를 뜯어볼 때면 언제나 '이건 좀 자의적인 것 아닌가',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따위의 의문만 잔뜩 생기게 다. 아마 전문가분들 조차 사회적 가치를 정확히 산정하는 것이 정말 어려우셨던 것이리라.


기업이 '착한 일'에 적극적일 수 없는 것은 이처럼 그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은 사회 공헌 사업의 효과, 곧 ROI(Return of Investment)를 측정하는 것이 왜 일반적인 사업보다도 훨씬 난해한지 기획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려 한다. 최근 추진했던 헌혈 증진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최대한 생생하게 녹여내 보겠다. 독자분들께서도 본인의 이야기를 댓글에 남겨주신다면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1. 어디까지를 성과라고 할지 모르겠다.


일반적인 사업에서는 성과가 정말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매출'이라는 마법의 지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공헌 사업에는 매출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지표가 활용될 수 있다. 말 그대로 사회적(으로 통틀어 발생하는) 가치 이기 때문이다.


내가 진행했던 헌혈 증진사업의 예를 한번 들어보겠다. 헌혈이 증진되면 일반적으로 공급되는 혈액 백의 양이 늘어난다. 만약 기획자 A가 '프로젝트 알파'를 진행해서 혈액 백 공급을 늘렸다면 이것은 분명히 '프로젝트 알파'의 성과일 것이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기획자 A의 성과는 이렇게 단순히 결정되지 않는다. 혈액 백 공급이 늘어난다면 병원에서 혈액이 없어 수술을 미루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이 제때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이때 환자들이 느끼는 효용도 기획자 A의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사회적 가치이다. 본래 사회적으로 발생하고 있던 고통을 기획자 A의 사업이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획자 A가 해결하고자 했던 것도 사실 혈액 백 부족 그 자체라기보다 환자들의 고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효용을 계산하는 것은 합리적인 결정이다.


문제는 이런 항목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다. 국내의 혈액 백 공급이 늘어나면 혈장 성분을 이용해서 사업을 하는 제약업체들은 해외로부터 혈장을 수입해 오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이 업체들은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건강보험 심사 평가원도 행복하다. 장기적으로 국내 의약품 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우리 국민들건강 보험료로 내야 하는 금액까지 절감되는 효과 있다. 기획자 A가 만든 결과물은 고작 혈액 백 공 증가였을 뿐인데, 파생되는 결과가 이렇게 복잡하다.


어디까지 고려해야할지 모르겠다


여기에 병원에서 혈액을 관리하시는 병리사 분들이 부족한 혈액을 찾아오기 위해 긴급 출동하는 경우, 병원 내에서 긴급 헌혈 프로그램을 시행해서 부족한 혈액을 임시방편으로 조달하는 경우 발생하는 비용을 모두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프로젝트 알파'의 사업 성과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이러면 결국 사업 성과는 의사결정자의 판단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식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2. 내가 전체 성과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1+1이 2라지만 세상사 이렇게 간단한 일절대로 없다. 오히려 모든 성과는 복잡한 변수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과외 선생님을 바꾼 뒤 학생의 성적이 올랐다.'는 예시를 사용해 보자. 성적 상승은 분명히 선생과 학생이 종합적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과외 선생님이 수업을 잘해서 학생이 쏙쏙 알아들은 것도 있겠지만 학생이 혼자 밤을 새 가며 공부한 결과가 성적에 녹아있다는 뜻이다. 이렇게만 끝낸다면 선생과 학생 모두에게 해피엔딩이겠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만약 과외 선생님의 봉급이 성적 상승 기여분으로 책정된다면 이 이야기는 상당히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게 된다. 과외 선생은 이제 학생도 아닌, 학교 선생님도 아닌, 교과서도 아닌, 부모님의 압력도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학생의 성적이 올랐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사업에도 여러 단체가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사업은 성과 분배의 기준이 비교적 명확하다. 시장에서 매출이 결정되고 사업 관계자끼리는 사전에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 정확하게 계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공헌 사업은 창출된 가치에 대해서 어떻게 나눌지 계약을 하지 않는다.


누가 얼만큼의 공을 가져갈지 판단하기 어렵다


다시 헌혈 증진 사업의 예시를 들어 보겠다. 헌혈이 급격히 줄어드는 날이면 혈액관리본부에 계신 직원분들은 정말 다양한 헌혈 증진 아이디어를 쏟아내신다. 가장 간단하게는 '스타벅스 쿠폰'을 뿌리는 것부터 해서 스포츠단과 단체 헌혈 행사를 기획하기도 하신다. 올해만 하더라도 적게 잡아 50개 정도의 헌혈 프로모션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헌혈 증진을 위해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독립적으로 엄청나게 많다는 데서 출발한다. '헌혈 증진 사업 알파'의 담당자 A가 아주 기똥찬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헌혈이 10만 건 늘어났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것이 정말 '헌혈 증진사업 알파'만의 공일까? 아무도 그렇게 주장할 수 없다. 고객이 돈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의 사업이 성공적이었는지 파악하기도 애매하다.

작년(2017년)과 올해(2018년) 대한적십자사가 진행한 이벤트가 다르고, 사회적 환경이 다르고, 헌혈을 했던 사람도 다르다. 실제 세상에서는 실험실처럼 변인을 통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한 사업의 공을 나만 가져올 수가 없다. 그나마 이렇게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 담당자 A 혼자라면 '자신의 공'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헌혈 증진 사업 베타'의 담당자 B가 있는 경우 문제는 아주 아주 복잡해진다.


3. 그 성과가 돈으로 얼마인지 모르겠다.


꿈같은 가정을 한번 해보.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맡은 담당자 A는 아주 정확한 지표를 객관적으로 선정하고(1번 충족) 본인이 진행한 프로젝트의 사회적 기여도를 면밀히 계산해 냈다.(2번 충족) 이제 파랑새와 같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또 다른 난관이 열렸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무슨 '신과 함께'에서 지옥 재판을 받는 것 같다.) 이제 담당자 A는 그 지표를 돈으로 계산해야 한다. 일반적인 사업은 성과 자체가 이미 돈이다. 하지만 사회 공헌 사업은 다른 지표를 활용하기 때문에 마지막에 이런 지표들을 금액화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들어가는 돈과 나오는 가치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헌혈 증진 프로젝트'의 경우는 이랬다.


예를들어 대한민국에는 연간 1만 백의 혈액이 부족하다고 해보자. 그런데 담당자 A가 어떤 멋진 사회공헌을 진행해서 5천 백의 혈액을 추가로 공급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10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다고 가정하겠다. 이때 A가 5천 백의 혈액을 추가 공급한 것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단순히 [혈액 가격 x 혈액 백 수]로 접근할 수도 있다. 혈액 1백의 가격은 일반적으로 4만원 정도이다. 그러면 프로젝트 알파가 만든 사회적 가치는 [4만 원 x 5천 백]인걸까?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계산은 불가능하다. 혈액의 어떤 성분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혈액 백의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적혈구 제제는 얼마, 혈소판은 얼마, 혈장 성분은 얼마, 이런 식이다. 내가 단순히 5천 백의 일반 혈액을 늘리는데 기여했다고 하면 이것이 또 수많은 성분으로 분리되어 가지각색의 가격표를 붙인 채 다양한 환자에게 사용된다. 이 모든 것을 퉁쳐서 4만원으로 계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사회적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혈액처럼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경우는 양반이다. 이제 사람 목숨은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 보험사에서 책정하는 사망 보험료로 사망자를 '금액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금액이 정말 혈액이 부족해서 돌아가신 환자분의 생명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을까? 절대로 아니다. 또한 혈액부족으로 인해 환자의 건강이 '조금' 악화된 경우 이것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것인가. 질병마다 그 '조금' 악화되는 것이 생명이랑 직결되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사실 이 모든 숫자는 신이 아닌 이상 아무도 알 수 없다.


4. 아무리 잘 계산하더라도
그것은 추정일 뿐이다.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들은 이미 '와 이거 거의 말도 안 되는 일인데'하고 생각하실 수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조금 더 김 빠지는 말씀을 하나 얹어야 할 것 같다. 사회 공헌 기획자가 아무리 ROI 계산을 잘해놓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추정된 가치라는 것이다. 당장 돈으로도 상대방을 설득하기 힘든 세상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회적 가치'가 논리적으로 공격받을 여지까지 있다면 의사결정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더불어 이 글에서 4번 이후 5번 6번은 아직 나열하지도 않았지만 사회적 가치 계산의 난관은 셀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사회공헌을 포기해야 하는가


글의 서두 부분에 피터 드러커 선생님이 하셨다는 말을 인용했었다. '경영은 반드시 측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말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드러커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측정할 수 없는 것'의 가치가 정말로 중요하며, 성공하는 사업은 이 '측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경영자가 '용기 있는 판단'을 했을 때 가능하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담당자가 부족해서 사회적 가치를 정확히 계산할 수 없더라도, 세상에 필요한 일은 세상에 나와야 한다. '숫자'를 뽑지 못했다고 해서 사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 힘든 와중에 의사결정권자를 설득하는 것이 '사회공헌 담당자'가 가져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 '어떻게 사회공헌을 설득하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다. 오늘도 힘겹게 사회공헌에 매진하시는 모든 담당자분들께 마음속 깊은 경의를 표한다.



표지 이미지 출처: https://onsitemalta.com/csr/

자료 출처: 출처: http://www.druckerinstitute.com/2013/07/measurement-my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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