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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Jan 23. 2019

한 달에 300만 원을 그냥 받는다면 어떨까?

‘유토피아’를 통해 읽어보는 ‘기본 소득제’


만약 당신이 아-무것도 안 해도 한 달에 300만 원을 그냥 받는다면 어떨까? 연금 복권에 당첨되었다거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SF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 제도는 최근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 속속 도입하고 있는 ‘기본 소득제’라는 정책이다. 불과 며칠 전인 2019년 1월 18일, 이탈리아 정부는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100만원(780유로)’정도의 기본 소득을 매달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이 말은 노동의 유무를 떠나서 ‘이탈리아 사람이니까’ 다달이 일정한 돈을 나라에서 호주머니로 넣어준다는 뜻이다.


100만 원의 기본 소득을 주는 2019년 예산안이 확정되자 매우 행복해하는 이탈리아 부총리 (조선 비즈)


이런 좋은 듯 나쁜 듯(?)한 정책은 이탈리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좀 더 유명한 복지국가인 핀란드는 이미 2017년 1월부터 기본 소득제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역시 2017년 7월부터 1년간 기본 소득제를 도입했었다. 2019년, 현재 해당 제도들은 ‘비용 대비 효과가 적고 일하고 싶은 의욕을 저하시킨다’며 중단되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이건 제대로 실험이 아니었다’며 제도의 부활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한층 재미있는 것은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나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와 같은 대표적인 혁신가 기본 소득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처럼 힙(?)하게 떠오르는 기본 소득제 논쟁은 의외로 꽤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이미 500년 전부터 세상 사람들은 이 ‘요상한 정책’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벌여왔던 것이다. 그 예시로 유치원생도 이름만큼은 들어봤을 희대의 영문학 고전, ‘유토피아’는 기본 소득제와 관련된 논쟁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5세기가 지나도 이름을 떨치는 이 말싸움은 유토피아의 작가이자 영국의 공무원(?)인 ‘토머스 모어’와 유토피아를 체험하고 돌아온 탐험가 ‘히슬로다에우스’ 사이에서 벌어진다. 소설에서 공무원(토마스 모어)은 탐험가(히슬로다에우스)의 주장에 별달리 반박은 하지 못하고 궁시렁(?)대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토머스 모어와 유토피아, 지금 읽어봐도 재미있는 책이다


지극한 현실주의자인 토마스 모어(이 소설의 작가이자 주인공)는 유토피아에서 시행하고 있다는 기본 소득제를 다음과 같은 논리로 비판한다.


내 생각에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잘 살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할 텐데 어떻게 물자가 풍부하겠습니까? 이익을 얻을 희망이 없으면 자극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하고 게을러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생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자기가 얻은 것을 합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한다면, (중략) 유혈과 혼란밖에 더 일어나겠습니까?


모어는 기본 소득을 인정하고 사유 재산 보장을 약화한다면 사람들이 생산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가만히 있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노동자들이 점점 게을러질 것이고, 결국 나누어 가질 재화를 만들 사람조차 없어진다는 논리다.


그러나 히슬로다에우스는 탐험가의 걸걸한 목소리로 모어의 비판을 일축한다.


생계에 대한 근심 걱정 없이 즐겁고 평화롭게 사는 것보다 더 부유한 삶이 어디 있습니까? 누구도 돈 문제 때문에 아내의 바가지 긁는 소리에 시달리지 않고(500년 전에 이런 표현을 썼다는 사실은 좀 웃기다), 아들이 극빈층으로 떨어지지 않을지, 딸의 결혼식에 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생계와 행복에 대해 안심하고 지냅니다. (중략)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 보호받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소위 정의라 부르는 것과 유토피아의 진정한 정의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중략)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내부 갈등이야 말로 겉으로 안전해 보이는 여러 나라들을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히슬로다에우스는 생산력 저하보다 갈등 해소가 훨씬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과거와 달리 기술이 발달하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이 당시는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산업혁명기였다) 빈부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사회는 부유층과 빈곤층이 끊임없이 갈등하는 아수라였던 것이다.


결국 살펴보니 500년 전의 싸움도 지금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 시절의 지식인들조차 2019년과 똑같이 ‘생산력 (혹은 의욕)’과 ‘빈부격차’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 이 현상을 한번 그림으로 표현해보면 지렛대(사회)에 ‘생산력 저하’와 ‘사회 갈등 격화’라는 폭탄이 양끝에 올라가 있는 시소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쪽이든 시한폭탄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시소는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올바른 사회 정책이란 폭탄 사이에 균형을 잘 유지하며 평형 이루는 기술이라고 하겠다.


받침대는 갈수록 사회 갈등 쪽으로 옮겨간다


유토피아가 등장했던 산업혁명기, 사회적 갈등이 점점 격화되고 ‘이따위 세상 굳이 지탱할 이유가 있나?’는 생각이 노동자 계층에서 점점 퍼져나가자 오른쪽에 위치한 ‘사회 갈등 폭탄’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진국 정부들은 ‘복지정책’이라는 꾀를 부려 지렛대의 균형자를 사회 갈등 쪽으로 조금 옮겨 놓는다. 바로 이곳에서 ‘복지국가’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다. 더불어 때마침 3차 산업인 서비스 업이 발달하며 일자리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이 폭탄을 그 자리에 얌전히 두는데 큰 도움을 줬다. 세상은 균형자를 약-간 옮겨 놓는 것으로 타협을 이뤘고 시소는 새로운 균형을 찾았다. 이에 따라 기본소득제 논쟁도 한동안 쏙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최근에 나오고 있는 기본 소득제 논쟁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사회의 생산력이 50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월등히 올라갔고 부의 편중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신기술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자율주행차 하나만 보더라도 상용화될 경우 우리나라에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단 한방에(!) 사라진다. (현재 택시와 시내버스 종사자는 40만 명 수준이다)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카카오 카풀 논쟁은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버릴지도. 한결 우울한 점은 이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생산력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시스템은 더 빠르고 편리하기까지 하니 부는 점점 한 사람 혹은 한 회사편중된다. (이미 2018년 세계 부자의 1%가 세계 돈의 50%를 가지고 있다.)


테슬라가 벌써 몇 년 전에 올린 영상이지만 무서울 정도로 신기한 기술


그러자 이제 한동안 잠잠했던 ‘갈등 폭탄’이 또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정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생산력 저하의 걱정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 사회 갈등은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가 된다. 사회는 또다시 균형자를 옮겨야 한다. 최근에 난다 긴다 하는 혁신가들이 500년 전 등장했던 기본소득제를 이제 와서 다시 꺼내드는 이유에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다. 그들에게는 점점 기울어가는 시소가 보이고 ‘이거 이대로 두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기본 소득제에 대한 논쟁을 할 때는 단순히 ‘재는 왜 일도 안 하는데 돈을 받아가나’,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정의롭지 못한가’라고 불평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어쨌든 그 사람이 세상을 뒤집어엎지 않고 ‘함께 살아야’ 내가 일한 것이 가치가 있고, 보람이 된다. 어떤 정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기본 제도 그 ‘정도’과 ‘중용’을 지켜 조금씩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생산성만 보고 무작정 달려가는 수많은 사회 집단들이 이제는 뒤를 살펴볼 때가 아닐지.


그렇다면 다시 500년 전 모어에게 다가가 지금의 4차 산업 혁명을 보여주고 한번 물어보고 싶다. 자 이제는 이렇게 많은 자동화가 가능하고, 일자리가 하루에도 수 천 개씩 사라지는 세상이 왔는데, 아직도 기본소득제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시느냐고 말이다. 아마 이 질문은 그 유명한 모어조차도 꽤나 골머리를 썩일 문제일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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